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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76권, 선조 29년 6월 20일 병진 5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다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대신(大臣)과 비변사의 당상(堂上)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 사신이 도해하였다는 말은 틀림없다. 박의검(朴義儉)을 내려보내는 일에 대해서 어제는 보낼 수 없다고 하였는데, 사신에게 보내는 회첩(回帖)은 그만둘 수 없는데다 또한 사정을 정탐하여 오지 않을 수 없다. 황신(黃愼)이 거느리는 역관(譯官)과 왜어 통사(倭語通事) 및 진 유격(陳遊擊) 【진운홍(陳雲鴻). 】 의 역관 김선경(金善慶) 등에게 말하여 박의검이 거느리는 자라 칭하여 들여보낸다면 마땅할 듯하다. 사신이 대마도에 오래 머무르면 왕래하는 중국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들여보내는 사람이 없으면 적의 정세를 어떻게 알겠는가."

하자, 좌의정 김응남(金應南)이 아뢰기를,

"체탐(體探)하는 것처럼 해서 들여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회첩(回帖)하는 일로 칭하여 보내는 것이 어떠한가? 또 적의 심술(心術)을 알 수 없기는 하나, 그 정상은 알 만하다. 어쩔 수 없이 예전에 변성명하여 간첩(間諜)하던 자처럼 하여 들여보내어 정탐하면 좋겠으나, 적당한 자가 없다. 적의 정상을 알기를 절실히 바란다면, 문안이라 핑계하고 아울러 게첩(揭帖)을 만들어 중국 사람과 함께 대마도에 들어가서 사신에게 문안하는 것이 의리에 어그러지지 않고 적도 반드시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무반(武班) 가운데에서 합당한 사람을 가려서 보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사신이 게첩한 뜻에 답하지 않을 수 없다."

하자, 영의정 유성룡이 아뢰기를,

"사신은 도해하였는데 박의검이 전혀 왕래하지 않으면 사세가 마치 거절하는 것 같아서 적이 반드시 의심할 것입니다. 이제 듣건대, 평조신(平調信)이 아직 저곳에 머물러 있다 하니, 말을 잘하는 자를 시켜 ‘천사가 무엇 때문에 나갔느냐.’고 묻게 하고, 통사(通使)가 양편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하며 견제하고 지연시키게 하면 괜찮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적의 정세를 탐지하고 싶다면 알맞은 사람을 가려서 보내라."

하자, 유성룡이 아뢰기를,

"장희춘(蔣希春)이겸수(李兼受)를 보낼 만합니다."

하고, 동지(同知) 윤선각(尹先覺)이 아뢰기를,

"박의검을 바로 들여보내어 근수(跟隨)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김응남이 아뢰기를,

"박의검은 중국 사신을 모시고 들어간다고 말하고, 또 무반도 가려 보내어 사신의 회첩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박의검이 전할 말이 있으면 수종인(隨從人)을 보내어 그 곡절을 알아 오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

하자, 유성룡이 아뢰기를,

"왜어(倭語)를 아는 사람을 보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고, 윤선각이 아뢰기를,

"김선경 같은 자가 합당합니다. 배천(白川)에 있을 때에 왜어를 잘 알기 때문에 공로가 많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 사신이 간 뜻을 모르겠다. 대개 사신이 조용히 들어갔다 하는데, 사신의 아랫사람을 죄다 데려갔는가?"

하자, 윤선각이 아뢰기를,

"이제 유달증(兪達曾)의 말을 들으니, 사신이 거느리는 아랫사람은 죄다 데려갔으나, 우리 나라 사람은 한 사람도 데려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이 정사(李正使)의 관하(管下)도 데려갔는가?"

하자, 윤선각이 아뢰기를,

"그 수는 6백여 명입니다."

하고, 유성룡이 아뢰기를,

"저 적의 성질은 본디 과장을 좋아하고, 중국 사신이 외이(外夷)의 나라에 가는 것은 예전에 없던 일입니다. 그러니 거느리고 가는 것이 간략하면 보기에 초라할 듯하므로 양 천사로 하여금 관하를 많이 거느려 위의(威儀)를 성대히 벌이게 하여 과시하려 하였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들어간 뜻은 무엇인가?"

하자, 유성룡이 아뢰기를,

"협박하였다면 난처한 일이 있었을 것이므로 그랬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도리에 미안하면 협박하더라도 가서는 안될 것이다. 아마 사신의 생각에는 고명(誥命)과 칙서(勑書)가 장차 올 것이라 하여 먼저 들어갔을 것이다."

하자, 유성룡이 아뢰기를,

"왜적은 중국군이 나오게 되면 평양(平壤) 싸움처럼 될까 두려워서 협박하여 도해시킨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윤선각이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병부(兵部)의 차부(箚付)에 ‘적이 죄다 철수하지 않았더라도 도해하도록 하라.’ 하였으니, 부사(副使)가 간 것은 이 때문일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 왜적도 부산(釜山)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말이 본디 성지(聖旨)에 있었는데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하자, 도승지(都承旨) 오억령(吳億齡) 【처심(處心)과 행사(行事)에 모난 것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험잡을 것이 없었다. 】 아뢰기를,

"그런 말이 있었다면 중국의 과도관(科道官)이 반드시 의논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였다. 유성룡이 말하기를,

"용절(龍節)이 왔는가? 고명(誥命)이 왔는가?"

하자, 윤선각이 말하기를,

"고책(誥冊)이 나왔다 하는데 확실히 알 수 없으므로 도감(都監)이 아뢰지 않았습니다. 유달증이 듣기로는, 콩과 쌀의 짐바리와 복물(卜物)이 빗물에 젖으므로 쉽게 전진하지 못한다 합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양덕(楊德)이 제본(題本)을 가지고 갔는데, 그 행차가 조용하여 바쁘지 않은 듯하니,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하고, 김응남이 아뢰기를,

"이곳 사람이 양덕에게 묻기를 ‘사신이 도해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답하기를 ‘이곳에서도 의심스럽게 여겨지는데, 더구나 중국 조정에서이겠는가.’ 하였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죽도(竹島)의 적이 매우 성하고 안골(安骨)·가덕(加德)·부산 등에도 영진(營陣)이 있다 하는데, 그러한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죽도의 적이 가장 많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찌하여 중국 사신을 빨리 데려가는 것인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적추의 영이 엄하여 그 아랫사람이 감히 어길 수 없으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가 불행한 탓이다. 상천사(上天使)는 달아나서는 안되는데 달아나고 부사(副使)는 들어가서는 안되는데 들어갔으니, 다 우리 나라의 불행이다. 주문(奏聞)하는 일은 다만 이 일에 의거하여 할 것인가, 아니면 따로 다른 뜻이 있는가?"

하자, 윤선각이 아뢰기를,

"우선 황신(黃愼)의 장계(狀啓)가 오기를 기다려서 적의 정세를 탐지해서 주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호군(護軍) 유영경(柳永慶)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의 사명을 받든 신하는 으레 지체하여 쉽게 나아가지 못하니, 이제는 파발아(擺撥兒)를 시켜 황급히 치송(馳送)해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유성룡이 말하기를,

"손 군문(孫軍門)이 이 뜻을 안다면 갑자기 군사를 보내어 오겠는가?"

하자, 윤선각이 말하기를,

"전혀 무리한 일은 아닙니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이로 인하여 군사를 보내준다면, 한편으로 형세를 보면서 군량을 미리 조치해 두고 기다리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양 사신의 주문(奏聞)의 초고를 보지 못하였는가?"

하니, 유영경이 아뢰기를,

"단단히 봉하여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신이 무엇 때문에 들어갔는지 물은 데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하던가?"

하자, 유영경이 아뢰기를,

"전일 병부의 영(令)에 ‘왜가 아직 가지 않았더라도 도해하도록 하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찌 고명이 없는데 지레 가는 경우가 있겠는가."

하였다. 유영경이 아뢰기를,

"지금의 적세(賊勢)는 어느 때에나 정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유성룡이 아뢰기를,

"근일에는 동란이 일어날 근심이 없을 듯하나 2∼3년 동안 쉰 뒤에는 조치가 있을 듯하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전쟁으로 끝맺을 듯합니다. 중국군은 청하여 오게 할 수도 있으나, 나온다면 싸움이 잇따르고 화(禍)가 이어져서 사세가 반드시 어려워질 것이고, 저 적은 반드시 승세(勝勢)를 기필할 것이니, 그들이 서로 여러 해 동안 지구전을 한다면 우리 나라는 자연히 그 사이에 얼음이 녹아 없어지듯이 멸망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제독(李提督)이 전에 ‘부산의 적이 물러가고 나면 절강(浙江)의 포수(砲手)를 부산에서 훈련시킨 다음에 돌아가겠다.’ 하였는데, 이 말이 매우 좋다. 그러나 지금 경상도는 다 분탕(焚蕩)되어 함안(咸安) 이하는 빈 땅으로 버려져서 지킬 방책이 전혀 없으니, 어쩌겠는가. 밤낮으로 생각하여도 묘책이 떠오르지 않으니 마침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저 적의 말에는 ‘양 사신을 모시고 대마도에 이른 뒤에 배가 곧 돌아와서 부산에 남은 왜를 싣고 건너갈 것이다.’ 하였으나, 요즈음 사세를 보면 그 진위(眞僞)를 알 수 있다."

하자, 유성룡이 아뢰기를,

"그 말은 거짓입니다. 요시라(要時羅)가 말하기를 ‘삼영(三營)의 왜는 머물러 있고 가지 않는다.’ 하였으니, 한 말이 옳으면 다른 한 말은 그른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초 성지(聖旨)로 약조한 세 가지에는 ‘조선을 침범하지 말라.’ 하였으나, 지금에 와서 보면 중국 조정에서 약속한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자, 유성룡이 아뢰기를,

"이적(夷狄)의 우환은 예전부터 다 그러합니다. 한(漢)나라 때에 묵특(冒頓)이 말하기를 ‘나는 애송이니 어떻게 감히 한나라의 천자와 적대하겠는가.’ 하였으나, 들어와 본 뒤에는 도리어 한나라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옛사람의 말에 ‘머리가 도리어 아래에 있고 발이 도리어 위에 있다.’ 하였는데, 이 말이 옳습니다. 대단히 분통합니다."

하고, 윤선각이 아뢰기를,

"손 군문에게 보낸 접반사(接伴使) 유근(柳根) 【재주가 덕(德)보다 승(勝)한 자이다. 글 솜씨는 혹 취할 수 있으나, 처신이 일정하지 않아 방(榜)에 게시된 간인(奸人)과 상종하였는데 여러 사람의 안목은 엄정한 것이다. 】 은 이미 접반사로 호칭하였으나, 군문이 오지 않으므로 위에서 윤허하지 않으시니, 그렇다면 문안(問安)이라 칭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생각에는 접반할 일이 별로 없는데 그곳에 오래 머무르면 폐단을 끼칠 것이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하자, 윤선각이 아뢰기를,

"문안사(問安使)라 칭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유영경이 아뢰기를,

"사후 배신(伺候陪臣)이라 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후 배신이라 칭하면 형세상 반드시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신(黃愼)은 부사(副使)의 접반인데, 부사가 이미 도해하였으면 황신은 별로 할 일이 없을 것이니, 불러올 수 있겠다."

하자. 윤선각이 아뢰기를,

"사신이 없으면 담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진 유격(陳遊擊)과 의논하고 머물러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진 유격은 무엇 때문에 오래 머무르는가?"

하자, 윤선각이 아뢰기를,

"적의 정세를 탐지하려고 그렇게 오래 머무르는 것입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대규모의 군사가 나온다면 군량을 거두어 모으는 방책도 서둘러야 할 것이나, 마초(馬草)를 장만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을 신이 의주(義州)에 갔을 때에 보았습니다. 이제 미리 농사일이 뜸할 각도(各道)의 각역(各驛) 사람들을 시켜 때에 맞게 베어들여 대비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마땅하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군량은 중국 장수의 【섭 유격(葉遊擊). 】 권려가(勸勵歌)를 인출하여 각도에 나누어 주고 중국 장수가 지은 뜻을 일러서 각각 쌀을 내게 하여 각역과 각참(各站)에 미리 쌓아 두게 하였습니다. 다만 이러한 탁지(度支)234) 에 관계되는 일은 판서(判書) 【김수(金睟). 】 가 전적으로 맡았는데, 아직 올라오지 않았으니, 언제 들어올지 모르겠습니다. 또 섭 유격의 게첩(揭帖)에 ‘각처의 추량(芻糧)을 점열(點閱)하려 한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주문(奏聞)은 매양 더디니, 빨리 보내야 하겠다."

하자, 윤선각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가 주문하는 일은, 요즈음 대제학(大提學)이 없으므로 일마다 다 비변사에서 마감하기 때문에 매우 답답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제학(提學)도 없는가?"

하니, 윤선각이 아뢰기를,

"제학이 있기는 하나 중대한 문서는 스스로 결단해서 할 수 없으므로 이렇게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저 적이 책봉을 받고나서 중국 사신을 내보낸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니, 윤선각이 아뢰기를,

"어찌 그렇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 사이의 곡절이 매우 많은데, 어찌 빨리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유성룡이 아뢰기를,

"양 천사가 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요시라의 말에 ‘관백이 반드시 개시(開市)를 청할 것이다.’ 한 것은 삼포(三浦) 등의 일일 것이다. 개시라는 것은 머물러 살려는 것인가, 왕래하며 무역하려는 것인가?"

하고, 유성룡이 말하기를,

"평시에도 관백이 번번이 ‘제포(薺浦)에 길을 트기를 청한다.’ 하였는데, 기어이 제포로 길을 트려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하니, 윤선각이 말하기를,

"제포의 수로(水路)는 배를 이용하기에 편리하고 고기를 잡는 이익도 있으므로 그러는 것입니다. 부산은 길이 곧고 막힌 데가 없으며 고기를 잡기에도 좋지 않으므로 길을 트려 하지 않습니다. 전조(前朝)에서는 태안(泰安)·홍주(洪州) 등이 13년 동안 적에게 점거되었는데, 우리 태조(太祖)께서 비로소 평정하셨습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전조에서 침범당한 일은 많았습니다. 혹 황간(黃澗)·영동(永同)에 들어오거나 선산(善山)·인동(仁同)에 들어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에 어사(御史) 배모(裵某)라는 이가 사람을 보내어 타일렀더니, 왜인이 죽이려 하다가 예전부터 적국이 사자(使者)를 죽인 일이 없으므로 다행히 죽음을 면해 주었습니다."

하고, 김응남이 아뢰기를,

"전조 때에는 늘 왜적의 우환이 있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왜적의 우환이 있었더라도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총을 쏘고 진(陣)을 설치하는 것이 범상한 적과 비교가 안된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저 적이 부산에서 살려 한다면, 그들 소원대로 살게 할 것인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꼬투리를 열어서는 안됩니다. 부산에서 살면 그 번짐이 그치지 않아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고, 유영경이 아뢰기를,

"저 적에게는 반드시 정해진 계책이 있을 것으로 부산에서 사는 데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정해진 계책이란 어떤 것인가?"

하자, 윤선각이 아뢰기를,

"정해진 계책이란, 큰 것은 곧바로 상국(上國)으로 가는 것이고 그 다음은 우리 나라를 침범하는 것인데, 근일에는 중국에 교통하기를 요구하려는 것이 더욱 분명합니다."

하고, 유영경이 아뢰기를,

"우리의 도리는 주문하는 일을 다할 뿐입니다."

하였다. 유성룡이 말하기를,

"황신의 장계가 금명간에 올 것인데 오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일이오?"

하니, 윤선각이 말하기를,

"빗물이 이렇게 불어서 필시 길이 막혀 못오는 것으로 오늘은 들어올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76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16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上御別殿, 引見大臣及備邊司堂上。 上曰: "天使渡海之說, 無疑矣。 朴義儉下送事, 昨日則曰不可送也, 天使前回帖, 不可廢, 而亦不可不探其事情而來矣。 黃愼所率譯官及語通事, 【雲鴻。】 遊擊譯官金善慶等處言之, 稱以義儉帶率而入送, 則似爲宜矣。 天使若久留于對馬島, (而)〔則〕 必有往來唐人。 若無此處入送之人, 則賊情何以知之?" 左議政金應南曰: "如體探者然而入送可矣。" 上曰: "稱以回帖一事而送之如何? 且賊之心術, 雖不可知, 而其情狀則可見矣。 不得已如古之變姓名間諜者入送, 而偵探則好矣, 而如此人者今無矣。 切欲知賊之情形, 則托以問安兼爲揭帖, 與唐人入于對馬島, 爲天使問安, 於義不悖, 賊亦必不拒之矣。 擇其武班中可合人, 送之似可矣。 天使揭帖之意, 不可不答矣。" 領議政柳成龍曰: "天使渡海, 而朴義儉絶不往來, 則事勢如拒絶, 而賊必疑之矣。 今聞平調信尙留在彼處云云。 若使能言者問曰: ‘天使緣何出去乎’, 而通使兩間往來不絶, 使之羈縻遲延則可矣。" 上曰: "如欲探知賊情, 則擇得好人而送之。" 成龍曰: "蔣希春李兼受之爲人, 可以送之。" 同知尹先覺曰: "朴義儉則直入送之, 使之跟隨可矣。" 應南曰: "朴義儉則以陪天使入去爲辭, 而又擇送武班, 捧天使回帖而來, 似爲宜矣。" 上曰: "朴義儉若有通辭之事, 則宜遣隨從人, 知其曲折而來, 亦可矣。" 成龍曰: "知語之人, 不可不送。" 先覺曰: "如金善慶者可合矣。 在白川時, 能解語, 故其功多矣。" 上曰: "天使(之)〔入〕 去之意未可知, 大槪天使從容入去云。 天使之下人, 盡爲率去乎?" 先覺曰: "今聞兪達曾之言, 則天使率下, 盡爲帶行, 而我國之人, 則無一人帶行者也。" 上曰: "然則李正使管下, 亦帶去乎?" 先覺曰: "其數則六百餘名矣。" 成龍曰: "彼賊之性, 本好誇張, 而天使往外夷之國, 前古所未有之事。 若管行草率, 則於所見, 似爲埋沒, 故必使楊使, 多率管下, 盛陳威儀, 欲爲誇示也。" 上曰: "入去之意何也?" 成龍曰: "若有脅迫, 則事有難處者, 故如是也。" 上曰: "道理未安, 則雖脅迫, 不可去矣。 大槪天使之意, 謂誥勑將來而先自入去也。" 成龍曰: "倭賊無乃懼天兵出來, 如平壤之戰, 故迫而渡海乎?" 先覺曰: "然矣。" 成龍曰: "兵部箚付云: ‘賊雖不盡撤, 而亦可渡海云云。’ 副使之去, 必因此而發也。" 上曰: "一不留釜山, 自有聖旨, 豈有此哉?" 都承旨吳億齡 【處心行事, 不見圭角, 人莫能疵焉。】 曰: "若有此言, 則中朝科道官必多議論矣。" 成龍曰: "龍節來乎? 誥命來乎?" 先覺曰: " 誥冊出來云, 而未能的知, 故都監不爲啓知矣。 兪達曾曾聞其太米駄及卜物, 爲雨水所霑, 故未易前進云。" 成龍曰: "楊德持題本而去, 其行似從容, 不爲忙迫, 其由未可知也。" 應南曰: "此處人問于楊德曰: ‘天使渡海何故也?’ 答曰: ‘此處猶致疑訝, 況其天朝乎?’ 云云。" 上曰: "竹島之賊甚盛, 安骨加德釜山等處, 亦有營陣云。 然耶?" 成龍曰: "竹島之賊, 最爲多數。" 上曰: "何以速率天使去乎?" 成龍曰: "渠賊令嚴, 其下莫敢違越, 故不得不然也。" 上曰: "我國蹉跎所致也。 上天使不可逃而逃, 副使不入而入, 皆我國之不幸也。 奏聞事, 但據此事而爲之耶? 抑有別樣他意耶?" 先覺曰: "姑待黃愼狀啓之來, 探得賊情, 可以奏聞矣。" 護軍柳永慶曰: "我國奉使之臣, 例爲遲緩, 未易前去。 今則以擺撥兒, 急急馳送可矣。" 成龍曰: "孫軍門若知此意, 則遽爾發兵以來乎?" 先覺曰: "不無是理。" 成龍曰: "若因此出兵, 則一邊觀勢, 兵糧預措以待何如?" 上曰: "天使奏聞草, 不得見乎?" 永慶曰: "緘封堅固, 未可得見云矣。" 上曰: "問天使緣何入去之意, 則何以答之?" 永慶曰: "前日兵部令內, 雖未去, 亦可渡海云, 故如是云云矣。" 上曰: "豈有無誥命而徑去者乎?" 永慶曰: "今之賊勢, 何時定乎?" 成龍曰: "近日則似無變動之患, 而數三年休息之後, 似爲及措, 而厥終則必以戰爭之事, 結之也。 天兵猶可請來, 而若出來, 則兵連禍結, 事勢必難, 而彼賊必以勝勢爲期, 與之曠年持久, 則我國自然澌盡於其間也。" 上曰: "李提督前者以爲, 釜山賊退之後, 浙江砲手, 留置釜山, 敎訓操鍊, 然後回還云。 此說甚善, 而今者慶尙一道, 皆爲焚蕩, 咸安以下, 棄爲空虛之地, 頓無可守之策, 奈何? 晝夜思量, 計無所出, 未知終何以爲之耶。 且彼賊言內, 陪天使, 到對馬島後, 船子卽當還來, 釜山, 亦爲乘渡云, 而近觀事勢, 則可知其眞僞矣。" 成龍曰: "此言詐也。 要時羅曰: ‘三營之, 留而不去云’。 一言是則一言非也。" 上曰: "當初聖旨, 約條三事曰: ‘勿侵犯朝鮮云, 而到此觀之, 則天朝約(速)〔束〕 之意, 果安在哉?" 成龍曰: "夷狄之患, 自古皆然。 冒頓曰: ‘我兒子何敢望天子乎?’ 及其入見, 則非所敢望也。 古人曰: ‘首顧居下, 足反居上。’ 此說是矣。 極爲可痛。" 先覺曰: "軍門處接伴使, 柳根 【才勝德者也。 文墨之技, 雖或可取, 而立脚不定, 趨附於榜示之奸。 十目所視, 其嚴乎!】 旣已稱號, 軍門不來, 故自上不允。 然則稱以問安, 入送如何?" 上曰: "予意以爲別無接伴之事, 而若久留其處, 則必有貽弊, 故不允矣。" 先覺曰: "稱之以問安使如何?" 永慶曰: "以伺候陪臣, 稱之可矣。" 上曰: "以伺候陪臣稱之, 則其勢必久留矣。" 上曰: "黃愼爲副使接伴, 而副使若已渡海, 則黃愼別無所事, 又可以招來矣。" 先覺曰: "若無天使, 則必無拘管之事。 當使與陳遊擊, 共爲議論而留住可矣。" 上曰: "陳遊擊何爲久留耶?" 先覺曰: "欲探賊情而如是久留矣。" 成龍曰: "大兵出來, 則軍糧收聚之策, 在所急急, 而馬草爲甚難備。 臣往義州時見之矣。 今則預於農隙之時, 令各道各驛之人, 趁時刈取以待之如何?" 上曰: "宜矣。" 成龍曰: "軍糧則以唐將 【葉遊擊。】 勸勵歌, 印頒于各道, 諭以唐將所製之意, 使之各出米石, 各驛各站處, 預爲積置, 而但如此度支之事, 判書 【金睟。】 專掌, 而時未上來。 未知何時入來耶? 且葉遊擊揭帖內, 各處芻糧, 欲爲點閱云云矣。" 上曰: "我國奏聞, 每爲遲延, 當速馳送可矣。" 先覺曰: "我國奏聞事, 近無大提學, 故事事皆爲磨勘於備邊司故極悶。" 上曰: "無提學乎?" 先覺曰: "雖有提學, 而重大文書, 不能自斷爲之, 故如是也。" 上曰: "彼賊若受封, 然後出送天使, 則何以爲之?" 先覺曰: "豈其然乎? 必無此理。 其間曲折甚多, 豈可速決乎?" 成龍曰: "使之來, 必不易矣。" 上曰: "要時羅言內, 關白必請開市云云者, 必三浦等事也。 開市云者, 欲爲居生乎? 欲爲往來貿易乎?" 成龍曰: "平時關白每云, 請薺浦開路。 必欲以薺浦開路者, 何也?" 先覺曰: "薺浦水路, 便於行舟, 而且有捉魚之利故然也。 釜山之路, 直而無礙, 且不好捉魚之事, 故不欲開路矣。 前朝, 泰安洪州等地, 十三年爲賊所據, 而我太祖始蕩平矣。" 成龍曰: "前朝之被侵者多矣。 或入於黃澗永同, 或入於善山仁同者, 非一二。 其時御史某者, 遣人開諭, 倭人欲殺之, 而自古敵國無殺使者, 故幸而免死矣。" 應南曰: "前朝之時, 每有倭賊之患。" 上曰: "雖有倭賊之患, 未有如此之甚者也。 放銃置陣, 似非如凡賊之比也。" 上曰: "設使彼賊以爲欲居釜山, 則從其所願, 使之仍居乎?" 成龍曰: "不可開端。 若居釜山, 則其漸未已, 有不可遏矣。" 永慶曰: "彼賊必有定計矣, 不止於居生釜山也。" 上曰: "定計云者, 何事乎?" 先覺曰: "定計云者, 大則直向上國, 次則侵犯我國, 而近日則其欲求通於中國也, 益明矣。" 永慶曰: "在我之道, 當盡奏聞之事而已。" 成龍曰: "黃愼狀啓, 今明當到, 而不來者何事?" 先覺曰: "雨水如此, 必爲阻隔而不來矣。 今日當入來矣。"


  • 【태백산사고본】 47책 76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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