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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75권, 선조 29년 5월 22일 무자 3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성균관 학유 유여해가 요동 도사에 자문을 가지고 가서 일어난 일을 서계하다

요동 도사(遼東都司)에 자문(次文)을 가져간 관원인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 유여해(柳汝諧)가 요동에서 돌아와 서계(書啓)하였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신이 지난 4월 25일에 압록강을 건너 이달 1일에 도사 아문(都司衙門)에 가서 가져간 자문을 바쳤더니, 도사가 보고 나서 곧 해장리(該掌吏)에게 주었습니다. 신은 포정(布政)181) 이 들어주지 않을까 염려하여 소청(訴請)하는 것을 정문(呈文)하고 싶었으므로 한 건을 또 써서 본사(本司)에 먼저 바치고 또 이언화(李彦華)를 시켜 구두로 여쭙기를 ‘여희원(余希元)이 전에 가서 선유(宣諭)하였을 때에 6월 안에 다시 선유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는데, 이 시기를 어기면 아마 노추(奴酋)가 다시 방자하여 재난이 불원간에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양 포정(楊布政)에게 정소(呈訴)할 것인데, 노야(老爺)에게 여쭙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감히 번거로이 소청한다.’ 하니, 도사가 말하기를 ‘호 유격(胡遊擊)182) 은 군사를 훈련하는 임무만을 받았고 건이(建夷)183) 는 그가 맡은 것이 아닌데 감히 직분을 넘어서 행동하였으므로, 상사(上司)와 본아(本衙)가 다 온당하지 못하게 여긴다.’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지난해에 우리 나라의 변신(邊臣)이 여러 번 위급한 상황에 몰려 사세가 급박하였으므로, 호 유격이 편의에 따라 처치하여 그 위급을 구제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포정사 아문(布政司衙門)에 갔더니, 포정이 소리를 돋우어 말하기를 ‘여희원의 공을 포상하는 일은, 호대수는 군대를 통섭하고 훈련시키는 임무만을 받았는데 자신이 외국에 있으면서 중국의 명령도 없이 마음대로 여희원을 보내어 사사로이 교통하였다. 그대 국왕과 대신이 이런 간사한 정상을 모르고 도리어 공을 포상하기를 바라니, 이 일은 결코 행할 수 없다. 북변(北邊) 일대에 지금 달로(㺚虜)184) 의 소식이 있으므로 우리 자신을 구제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남을 돌보겠는가. 그대 나라는 병마를 훈련하게 하여도 듣지 않고 양초(糧草)를 준비하게 하여도 듣지 않아서 스스로 힘쓰지 않았다. 중국 군사로 하여금 그대들을 위하여 왜노(倭奴)를 정벌하게 하였는데, 다시 그대들을 위하여 건이를 물리쳐야 하는가?’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명조에서 병마를 움직여서 건이를 물리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선유를 하여서 6월의 약속을 실현시켜 간사함을 부리려는 계책을 막으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하니, 포정이 성내어 말하기를 ‘가령 이 일을 행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어찌 한낱 여희원의 말을 실현시키겠는가. 다시 말하지 말라.’ 하고는, 신을 나가게 하여 사기(辭氣)를 더욱 돋우고 조금도 뜻을 돌리지 않으므로 다시 정소하고 싶기는 하였으나 더욱 노할까 염려되어 하지 않았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75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712면
  • 【분류】
    외교-명(明)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군사-군정(軍政)

  • [註 181]
    포정(布政) : 양호(楊鎬).
  • [註 182]
    호 유격(胡遊擊) : 호대수(胡大受).
  • [註 183]
    건이(建夷) : 건주위(建州衛)의 오랑캐.
  • [註 184]
    달로(㺚虜) : 조선과 중국의 북방에 살던 종족으로, 그 계통은 분명하지 않으나 시대에 따라 달단(韃靼)·몽고(蒙古)·거란(契丹) 등으로 불리던 종족의 일부이며, 이때의 달로는 원(元)이 망한 뒤에 북으로 달아나 흩어져 살던 이들을 말하는데, 명(明)의 북부와 조선의 평안도 북변에서 자주 말썽을 일으켰다. 노(虜)자에 갈음하여 자(子)·노(奴)를 붙여 부르기도 하며, 앞에 건이(建夷:건주위(建州衛)의 오랑캐)라 한 것도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遼東都司處咨文齎去官成均館學諭柳汝諧, 還自遼東, 書啓。 略曰: "臣於去四月二十五日越江, 本月初一日, 詣都司衙門, 呈所齎咨, 則都司覽訖, 卽付該掌吏矣。 臣私慮布政不聽, 將欲呈文所訴, 故又書一件, 先呈本司, 而且令李彦華, 口稟曰: "余希元前往宣論時, 以六月內, 再行宣諭爲約。 若愆此期, 則恐奴酋更肆, 而患在朝夕, 玆將呈訴於楊布政, 而不可不稟於老爺。 故敢用煩訴耳, 都司曰 ‘遊擊, 只受鍊兵之任。 建夷, 非渠所管。 乃敢越職而爲之, 上司及本衙, 皆以爲未穩。’ 臣答曰: ‘上年, 小邦邊臣, 屢被警急, 以事勢之已迫, 胡遊擊隨便處之, 以救其急。’ 又詣布政司衙門, 則布政厲聲曰: ‘余希元敍功事, 胡大受只領統鍊之任, 而身在外國, 非有天朝命令, 擅差余希元, 私相交通, 爾國王及大臣, 不知這等奸僞情狀, 而反欲敍功, 此事決不可行。 北邊一帶, 方有㺚虜聲息, 自救不暇, 遑恤他乎? 爾國, 則使鍊兵馬而不肯, 使備糧草而亦不肯。 不能自强, 使天(使)〔兵〕 爲价而征倭奴, 又爲爾而却建夷耶?’ 臣答曰: ‘非欲使天朝動兵馬, 以却建夷, 只冀蒙一遭宣諭, 以實六月之約, 以枉逞奸之計耳。’ 布政怫然曰: ‘設使此事爲可行, 而豈敢實一希元之言哉? 勿爲再言。’ 因令臣出去, 而辭氣益厲, 少無回意, 雖欲再呈, 祗恐益怒, 故不復爲矣。 敢啓。"


  • 【태백산사고본】 46책 75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712면
  • 【분류】
    외교-명(明)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