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의 첩문
첩문(帖文)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예전의 교제하는 예(禮)는 사양하고 받는 데에 다 의리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공자(孔子)가 여기에서는 받고 저기에서는 받지 않으며 어제는 받았으되 오늘은 받지 않은 것이 어찌 그 뜻이 없겠습니까. 모르는 자는, 어제 받은 것이 옳다면 오늘 받지 않는 것이 그르고 여기에서 받은 것이 옳다면 저기에서 받지 않는 것은 그르다고 하나, 이는 사양하고 받는 데에 각각 의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찌 저기와 여기, 옛날과 오늘을 정론(定論)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내가 명을 받들고 와서 번방(藩邦)의 변경에 있은지가 이미 한 해가 되었는데, 현왕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 여러 번입니다. 처음에는 연도(沿道)에서 맞이하여 위로하고 이어서 절(節)을 멈추었을 때도 위로하면서 다 멀리 사신을 보냈기에 의리에 있어서 참으로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바다 모퉁이에 오래 머물러 있는데도 선물을 자주 보내주시니, 천릿길에 선물을 가져오는 예를 어찌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번방이 병화를 겪은 끝에 상마(桑麻)가 많이 황폐하여 명주와 모시베 따위는 백성이 바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니, 마음이 참으로 편안하지 않습니다. 뒤에 안부를 물을 때에는 글만으로도 정의를 알 수 있으니, 다시 예물을 주시면 감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마음을 알아주시면 그 감사함은 많은 재물을 받은 것과 같을 것입니다. 겉치레로 하찮은 물건을 갖추어 그런대로 작은 뜻을 바치니, 웃으며 받아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양방형의 사람됨을 보면, 그 서첩(書帖) 가운데에 자만한 뜻이 있기는 하나, 그 처사가 부드럽고 거동이 망령되지 않으니, 이종성(李宗城)이 적의 영문에서 밤에 달아나 명을 욕되게 하고 절조를 잃은 것과는 단연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 【태백산사고본】 46책 75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706면
- 【분류】외교-왜(倭) / 어문학-문학(文學)
○帖略曰: "古者, 交際之禮, 亂受皆有義也。 昔, 孔子在此受, 或在彼不受; 昨日受, 或今日不受, 豈無謂也? 不知者, 以謂昨日之受是, 則今日之不受非; 在此之受是, 則在彼之不受非, 殊不知辭受, 各有義耳。 胡可以彼此ㆍ今昔, 爲定論哉? 顧不侫, 奉命以來, 履藩邦境上, 已歷年, 所辱賢王貺者, 疊疊矣。 始以沿途迎慰, 繼以駐節問慰, 皆迢遞遣使, 於義, 誠不可却, 今不侫, 海隅久駐, 腆惠頻仍, 千里筐儀, 詎爲易致? 藩邦兵燹之餘, 桑麻多廢, 而紬苧之類, 民賦甚艱, 於心, 良不自安也。 後有枉問, 惟以尺一, 足見雅情, 若再惠禮儀, 必不敢欽領。 願心諒之, 其感與受百朋均矣。 外具菲物, 聊將鄙私, 惟莞(內)〔納〕 , 幸甚。"
【○竊觀楊方亨爲人, 雖其書帖中, (以) 〔似〕有自多之意。 然, 其處事壅容, 擧止不妄, 其與宗城之宵遁賊營, 辱命失節者, 斷不得同年而語也。】
- 【태백산사고본】 46책 75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706면
- 【분류】외교-왜(倭)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