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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74권, 선조 29년 4월 18일 갑인 3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김명원 등이 정사와 나눈 이야기를 보고하다. 정사가 각 아문에 보낸 게첩

접대 별도감 낭청(接待別都監郞廳)이 아뢰기를,

"중국 사신이 신 김명원(金命元)과 신 김수(金睟)에게 ‘귀국은 장차 어찌하려는가. 속히 제본(題本)을 올려 군사를 청하여 적을 몰아내 소탕하라.’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원병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소국에 양식이 없으니, 걱정을 견딜 수 없다.’ 하였더니, 사신이 말하기를 ‘군사가 동원되면 군량은 자연 따르는 법이니, 반드시 군량을 마련하는 계책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다시 사신이 왜영에서 나온 까닭을 물었더니, 그의 말이 ‘관백이 어디 책봉을 요구한 적이 있었던가. 그들의 요구는 모두 들어줄 수 없는 일인데, 그 중 하나는 신자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바다를 건넌 후 우리를 잡아 볼모로 삼고 자기들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여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나를 죽일 것이다. 그럴 경우 나는 분의상 의당 적을 꾸짖으면서 죽을 따름이겠지만 내가 굽히지 않다가 죽은 줄을 그 누가 알겠는가. 지금 내가 두 가지 죄를 졌으니, 전일에 그릇 왜정(倭情)이 공순하다고 믿은 것이 첫번째 잘못이고, 지금 경솔히 왜영을 탈출한 것이 두 번째 잘못이다. 이 두 가지 죄를 져서 그 죄가 일신에 있어서 끝나더라도 오히려 왜노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므로 결심하고 나왔다.’ 하고, 또 말하기를 ‘양 노야(楊老爺)가 이에 앞서 늘 나와 더불어 이 일이 정당하지 못함을 말하였으니, 만약 상사(上司)가 바로 부사에게 물었으면 그 보고 들은 사실을 모두 자세히 진술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사신이 지난 16일에 병부 등 각 아문에 게첩을 【*. 】 보냈는데, 지금 그 게첩을 등서해 동봉하여 입계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알았다. 게첩의 말이 옳다."

하였다.

【*게첩은 다음과 같다. "생각건대, 동봉(東封)의 일은 처음에는 책봉을 강정하고, 이어 맹약을 확증하고, 끝으로 군사를 물러가게 하는 것으로서 모두 책임이 있는 일이니, 본관이 마음대로 처리할 바가 아닙니다. 본관은 오직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책봉하되 순응하면 시행하고 거역하면 그대로 환조(還朝)할 뿐입니다. 사명을 띠고 온 지 지금 14개월이나 되었습니다. 경사(京師)를 떠난 뒤로 봉하는 일을 일찍 마쳐서 위로는 우러러 성상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아래로는 속국(屬國)을 편안하게 해주기를 바라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곧 우매한 본관의 집념으로써 왜정의 불측함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실제로 듣기 싫었습니다. 외의(外議)가 분분하였지만 지난해 왜영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그 모든 정황에 대해 본관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앞서 왜영에 들어갔을 때, 행장(行長)이 8일 만에야 비로서 보러 왔으므로 단지 사체를 알지 못하는 때문이라고만 생각하였었는데 지금은 오만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소서비(小西飛)가 머리를 깎은 왜장이 되었기에 단지 행장에게 참람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만 여겼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가 한관(漢官)을 중히 여기지 않아서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 관방(關防)이 엄밀하고 거동할 때 왜인을 수행시키므로 단지 호위하기 위해 따르는 것이라고만 생각 하였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감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관곡(館穀)이 박하기에 단지 타국에 와 있으므로 조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였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경멸히 대접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관백(關白)은 전연 만나볼 수도 없고, 도로에서는 납공(納貢)한다고만 소리치는 등 그 온갖 정상을 다 들어 밝히기 어려웠었는데, 사융(謝隆)과 곽찬우(郭纉禹)를 본 후에야 비로소 그들의 요구 조건이 차마 듣고 볼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았으니, 마치 취기가 처음 깨고 꿈이 처음 깨인 것 같았습니다. 또 3월 사이에 병부의 차부 제사(箚付題事)를 받아보니 ‘왜노(倭奴)가 만약 굳이 배신(陪臣)을 요구한다면 이는 곧 맹약을 어기는 일에 해당되니 파봉(罷封)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하였고, 또 심 유격(沈遊擊)의 품첩(稟帖)에 의하면 ‘배신은 반드시 소홀히 여길 일이 아닌데 신으로 하여금 남과애(南戈崖)에서 기다리게 하면서 세월만 허비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이를 살펴볼 때 협박·강압·억류 등의 정상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공순한 자가 실로 이와 같습니까. 본관이 왜영을 빠져나온 뒤로 회로를 끊긴 수행자가 수십 명이며, 죽음을 당한 자가 2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머리를 숙이고 책봉을 구하는 자의 행동이겠습니까. 다시 살피건대, 심유경(沈惟敬)은 시정의 무뢰배로서 집도 처자도 없으며 앞서 왜적을 추종하던 패역한 정상을 이루 다 들어 셀 수 없습니다만 음란하고 추악하여 왜장 아리마(阿里馬)의 양녀(養女)를 취해 아내로 삼아 벌써 자식까지 둔 일은 온 영내의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다 아는 바입니다. 처자가 일본에 있는데 그가 무슨 미련이 있어 고국으로 돌아오겠습니까? 훗날 왜노가 침입할 때에는 반드시 유경이 향도가 될 것입니다. 왜인이 아직까지 집결되지 않았으니 속히 병마를 징발하여 왜인의 소굴을 소탕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면 부사(副使)도 이를 틈타 탈출할 수 있고 속국도 이를 힘입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니, 불세(不世)의 공로가 이 한 거사에 달려 있습니다. 본관이 경솔히 왜영을 탈출한 데 대해서는 그 죄를 실제로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본관은 군부(君父)의 앞에서 죽는 것이 왜노의 손에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굽어살펴 시행하소서. 글을 봉함에 임하여 몹시 비통하고 두려운 심정을 참을 수 없습니다.". 】


  • 【태백산사고본】 45책 74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90면
  • 【분류】
    외교-명(明)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接待別都監郞廳啓曰: "天使謂臣命元、臣金睟曰: ‘貴國, 將欲何爲? 可速上本, 請兵驅勦矣。’ 臣等對曰: ‘兵雖出來, 而小國一路無糧, 不勝悶慮。’ 天使曰: ‘兵行, 糧自隨之, 必有措糧之策。’ 臣等問老爺出來之由, 則曰: ‘關白何曾要封? 其所要求, 皆不可爲之事。 其中有一件, 臣子所不能忍聞者, 而過海之後, 執我等爲質, 求其所欲, 不從則必殺我。 我分當罵賊而死已矣, 孰知我不屈而死乎? 今我負二罪。 前日枉負情恭順, 一也; 卽今輕率出營, 二也。 負此二罪, 罪在一身而止, 猶勝死於倭奴之手。 以故決意出來。’ 又曰: ‘楊老爺, 前此每與我, 言此事不停當。 若上司直問于副使, 則凡所聞見, 當終始詳陳’ 云云。 且天使去十六日, 兵部等各衙門揭帖稿,【"切念東封之役, 始而講封, 繼而證約, 終而退兵, 皆有責, 非職所得而與也。 職惟, 持節往封, 順則行, 逆則還朝而已。 奉命以來, 蓋十四月于玆矣。 自出都之後, 無一念一日, 不冀封早竣, 上以仰(紵) 〔紓〕聖懷, 下以奠安屬國, 惟是愚性執固。 凡有談情叵測者, 實惡聞之。 雖外議紛紜, 而爰自去歲入營, 一切情形, 職惟以恕心待之。 前之入營, 行長八日方見, 止以爲不解事體, 今則悟其傲慢矣。 小西飛削髮爲, 止以爲不敢僭越行長, 今則悟其爲不重漢官矣。 聞防嚴密, 行動, 有衆跟隨, 止以爲儀從護衛, 今則悟其爲監守矣。 館穀涼薄, 止以爲客居無措, 今則悟其爲輕褻矣。 關白絶不相聞, 道路呼爲納貢, 種種情節, 難以悉數。 從見謝隆郭纉禹之後, 始(所)〔知〕 要有不能忍聞見者, 如醉之初醒, 夢之初覺也。 又三月間, 接得兵部箚付題事欽依, 倭奴如强索陪臣, 卽係渝盟, 隨當罷封。 尋據沈惟敬稟帖內, 稱陪臣, 必不可少。 然則使臣于南戈崖守候, 又費時日。 審此則, 要(狹)〔挾〕 强索、羈留等項情形, 悉以張露。 恭順, 固如是乎? 自職出營截回, 隨行者數十人, 殺死二人, 又豈俛首求封者哉? 再照, 沈惟敬市井無賴, 絶無身家妻子, 向來從賊逆狀, 不能枚擧。 獨其淫穢, 如娶阿里馬養女爲妻, 業已有孥, 此闔營夷夏, 所共知者。 妻子在日本, 伊家何所顧戀, 而復故土也? 他日倭奴入犯, 必惟敬爲之向導矣。 今衆未集, 萬乞速發兵馬, 直掃巢。 副使可以乘此而出, 屬國可以仗此而安。 此不世之功, 在此一擧。 如職輕率出營, 罪固難逃, 職卽死于君父之前, 尤勝死于倭奴之手也。 伏惟垂鑑施行。 臨緘, 曷任悲痛戰慄之至?"】 求得謄書, 同封入啓矣。" 上曰: "知道。 揭帖之詞, 是矣。"


  • 【태백산사고본】 45책 74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90면
  • 【분류】
    외교-명(明)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