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가 동궁의 복식에 대하여 아뢰다
예조가 아뢰기기를,
"동궁(東宮)의 복색을 대신에게 물으니, 영의정 유성룡은 말하기를 ‘동궁의 복색은 극히 중대한 일이라, 반드시 전에 이미 시행한 규례를 보아 정해야 한다. 《오례의(五禮儀)》 및 유신(儒臣)이 널리 고증한 고사(古事)를 가지고 보면, 흑색을 사용했다는 문구는 별로 없고, 인묘(仁廟)의 복장은 옥대(玉帶)에 흑정(黑裎)을 썼다. 순회 세자(順懷世子) 때의 일을 보아도 또한 흑포(黑袍)를 사용하였다고 말하였으며, 이기(李墍)·김위(金偉) 등의 말은 홍포(紅袍)로 궁료(宮僚)를 접견하였다고 하니, 어느 말이 옳은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중대한 일을 소홀히 정할 수 없으니,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조용히 널리 상고하여 귀일(歸一)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심수경(沈守慶)은 말하기를 ‘동궁의 복색은 흑색이 마땅할 것 같다.’ 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윤두수(尹斗壽), 【사람됨이 경박하고 음험하여 재상의 지위에 맞지 않으므로 청의(淸議)에 용납되지 않은 지 오래이다. 】 좌의정 김응남(金應南), 【사람됨이 그 포부를 숨기며 진중하여 성색(聲色)을 드러내지 않으나 교악(喬岳)처럼 우뚝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으므로 뭇 사람들이 중히 여기는 존재가 되었다. 】 행 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정탁(鄭琢)은 말하기를, ‘동궁의 복색을 어의(御衣)와 같게 하는 것은 극히 미안하다. 다만 《오례의》로 보면 곤룡적포(袞龍赤袍)를 입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그러나 예관으로 하여금 고례(古禮)를 널리 상고하고 근래의 규례로 참작하여 정하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습니다. 동궁의 복색에 대하여 신들이 고례에 박식하지 못하고 또 전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에게 의논하였으나 역시 합일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오례의》를 상고하니 전하와 세자가 모두 익선관(翼善冠)·곤룡포(袞龍袍)로 행례(行禮)한 때가 많았고, 특별히 세자의 복색을 흑색으로 썼다는 글은 없습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을 상고해보니, 황제(皇帝)와 황태자(皇太子)의 면복(冕服)은 다 현의(玄衣)·훈상(纁裳)을 사용하였고, 피변복(皮弁服)의 경우는 천자로부터 친왕(親王)·(世子)에 이르기까지 모두 강사포(絳紗袍)를 입었습니다. 상복(常服)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도포는 황색이며, 태자 이하는 모두 적색으로 하여 현연히 등급의 차별이 있었습니다. 신들은 ‘순회 세자(順懷世子)는 서연(書筵)에서 항상 흑포(黑袍)를 입었고, 인묘(仁廟)가 동궁에 있을 때 입은 흉배(胸背)는 흑색 바탕이었으니, 세자가 흑포를 사용하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하교(下敎)로 인하여 이미 대신과 의논하였으나 그 의논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공조 판서(工曹判書) 구사맹(具思孟)이 【지위는 높으나 덕이 박하여 인망이 없었으니, 이른바 나이 들어 지각이 나자 망녕이 든다는 것이다. 】 순회 세자 때 서연관(書筵官)이 되었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일찍이 궁료(宮僚)로 있을 때 서연(書筵) 및 빈사(賓師)가 서로 회견하는 예석에서 세자가 아청단령(鴉靑團領)을 입었고, 어려서 구경할 때에도 인묘가 동궁으로 있으면서 흑포를 입고 대가(大駕)를 수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 이기(李墍)·김위(金偉) 등이 말한 것과는 다릅니다. 또 항간의 연로한 사족 부인들의 말이 ‘인묘가 동궁으로 있으면서 대가를 수행하여 출입할 때 흑포를 입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예문에 분명한 증거가 없고 또 논한 것과 목격한 것의 차이가 이와 같습니다. 성상께서 재량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뜻은 전에 이미 말하였다. 참작해서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74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679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의생활-관복(官服)
○禮曹啓曰: "東宮服色, 議于大臣, 則領議政柳成龍以爲: 東宮服色, 事極關重, 必須得前古已行規例而定之。 以《五禮儀》及儒臣博考古事者觀之, 則別無可用黑色之文, 而仁廟所御玉帶, 用黑裎。 曾見順懷世子時事者, 亦言用黑袍, 而李墍、金偉等所言則以爲, 紅袍接見宮僚云。 未知何說爲是。 關重之事, 不可草草而定, 令禮官, 從容博考, 歸一爲當。’ 領中樞府事沈守慶以爲: ‘東宮服色, 黑色似當。’ 判中樞府事尹斗壽,【爲人輕詖, 邪險行 〔己〕, 相業無所稱, 不容於淸議者, 久矣。】 左議政金應南、 【爲人韜晦簡重, 不露聲色。 然如喬岳, 屹然不動, 爲衆所倚重焉。】 行知中樞府事鄭琢以爲: ‘東宮服色, 與御衣同, 至爲未安, 而但以《五禮儀》觀之, 似當服衮龍赤袍。 然令禮官, 博考古禮, 參以近規, 定奪何如?’ 云。 東宮服色, 臣等不能博識古禮, 又未諳典故, 議于大臣, 亦未得歸一。 考諸《五禮儀》, 則殿下、世子, 多有俱以翼善冠、袞龍袍行禮之時, 而別無世子所服用黑之文。 參以《大明會典》, 皇帝、皇太子冕服, 皆用玄衣纁裳, 皮弁服, 則自天子至於親王世子皆服。 絳紗袍, 其間雖有章數及物色之差, 而其色則一也。 至於常服, 皇帝袍黃色, 太子以下皆赤色, 顯有等別矣。 臣等因順懷世子書筵, 恒服黑袍, 仁廟在東宮, 所御胸背, 其質黑色, 世子之用黑袍, 少無可疑之敎, 旣議于大臣, 而所論不一。 聞工曹判書具思孟,【位隆德細, 人望甚輕。 所謂老將(知) 〔至〕而髦及者歟?】 於順懷世子時, 爲書筵官, 問之, 以爲: ‘曾忝宮僚, 果見書筵及賓師相會禮, 服鴉靑團領, 少日觀光時, 亦見仁廟在東宮, 御黑袍隨駕’ 云, 與李墍、金偉等所言有異。 且閭巷間, 年老士族婦人, 亦有言: ‘仁廟在東宮, 隨大駕出入時, 見其服黑袍’ 云。 禮文旣無明據, 而所論所見, 異同如此, 伏惟睿裁何如?" 上曰: "予意則前已言之, 參酌施行。"
- 【태백산사고본】 45책 74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679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의생활-관복(官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