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잡이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여 국사를 논의하고 서무에 관심을 두라고 건의하다
정오(正午)에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주역(周易)》을 강하였다. 강이 끝나자 특진관(特進官) 신잡(申磼)이 아뢰기를,
"국사의 간위(艱危)가 하루하루 심해가는데 민심은 태만해져서 점점 전과 같지 않습니다. 지금 일기가 조금 따뜻해지니 옥체가 강녕하시거든 비변사 당상(備邊司堂上)을 인견하여 탑전에서 국사를 논의하시면서 날로 서무(庶務)에 관심을 두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은 말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하자, 신잡이 아뢰기를,
"평시에 있어서는 양남(兩南)이 근본이 되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는 양남이 관방(關防)이 되고 이서(二西)가 【해서(海西)와 관서(關西). 】 근본이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지(城池)와 기계(器械)를 급히 수축해야 합니다. 수양 산성(首陽山城)은 【해주(海州)에 있다. 】 이미 수선하게 하였으나 관서 한 도는 파수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성천(成川)·영변(寧邊)·평양(平壤)은 모두 요해처로서, 성천은 앞에 긴 내가 있고 또 12봉(峯)이 좌우를 둘렀으며 그 안에 창고가 있으니, 이는 옛 사람들이 설치한 것입니다. 이미 산성을 쌓고 또 웅번(雄藩)을 설치하였으니, 조종조(祖宗朝)의 진관(鎭管)하는 법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성천 산성(成川山城)은 그 산에 악석(惡石)이 많고 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할 수가 없으며, 형세가 아주 웅장하고 견고하다. 만약 중진(重鎭)을 설치하고 강한 군사를 배치하여 수비하면 적이 어떻게 함부로 침입할 수 있겠는가. 또 여섯 고을은 바로 바닷가에 위치한 곳으로서 이를 각기 분할하는 것은 또한 온당치 못하다. 내 생각에는, 3∼4고을로 합치고 여섯 고을로 나누지 않는다면 평양이 오른쪽 어깨가 될 것이라고 본다."
하였다. 신잡이 아뢰기를,
"대개 중진(重鎭)은 그 요역(徭役)을 감하고 사람을 선택하여 수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결같이 탕패할 것이니, 어떻게 창졸간에 난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모든 일은 인재를 얻는 데 있다. 평안도의 새 병사 이경준이 어떠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배사(拜辭)할 때 내가 한 번 보니 조용한 선비였다."
하자, 신잡이 아뢰기를,
"경준은 치민(治民)에 능숙하고 여력(膂力)이 한창 강성하니, 절도(節度)의 직임으로서 원야(原野)에서 교전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열진(列鎭)을 호령할 것입니다. 경준은 이처럼 용건(勇健)의 명성이 있으나 연소한 것이 흠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진실로 재지(才智)가 있다면 연소한 것이 무슨 흠이겠는가. 다만 재지가 없을까 걱정될 뿐이다. 서적(西賊)이 2년째 호시탐탐 엿보고 있으니, 걱정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호인(胡人)의 욕심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곧 강계(江界)를 점거하고 삼(蔘)을 채취하는 이권을 독점하려는 것이다. 이 때의 변장(邊將)을 더욱 엄선해야 할 것이니, 경들이 장수가 될 만한 자를 천거하기 바란다."
하였다. 신잡이 아뢰기를,
"변방에 경보가 있으면 하졸(下卒)들은 갑옷과 양식 전대를 갖추고 변고에 대비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박명현(朴名賢)이 밤중에 성을 순행하면서 진법을 익히다가 하졸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자 명현은 곧 그를 참수하여 조리돌렸습니다. 그가 비록 살인(殺人)의 죄가 있으나 무고히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곧 군율(軍律)을 쓴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전진(戰陣)에 임하여 사람을 죽였다면 그래도 괜찮지만, 습진(習陣)할 때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하자, 신잡이 아뢰기를,
"명현은 전공이 있습니다. 그에게 죄를 준다면 그 재기가 아깝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동강(大同江)에 얕은 여울이 있는데, 비단 이곳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모든 얕은 여울에 혹은 열보(列保)를 축조하고 혹은 포루(砲樓)를 설치할 수 있겠는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평양에 청은탄(靑銀灘)과 백은탄(白銀灘)이 있는데 임진년에 왜적이 모두 이곳으로 왕래하였습니다. 만약 토성(土城)을 쌓고 포루를 설치한다면 적이 어떻게 함부로 진격해 오겠습니까. 다만 민력이 고갈되어 토공(土功)을 일으키기 어려울 뿐입니다. 또 양주읍(楊州邑)은 인가가 없고 부락이 모두 비었으며, 광주(廣州)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연혁(沿革)은 중대한 일이라 비록 경홀히 의논할 수 없으나, 신의 생각에는 광주는 광진(廣津)으로 옮기고 양주는 누원(樓院)으로 옮겨 경성(京城)을 호위하는 것이 매우 편리하며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종조가 기전(畿甸)에 큰 읍을 포치한 것이 역시 이러한 연유에서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7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5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행정(行政) / 군사-관방(關防)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정(軍政) / 건설-토목(土木)
○午正, 上御別殿, 講《周易》。 講畢, 特進官申磼啓曰: "國事艱危, 日甚一日, 而人心懈怠, 漸不如前。 目今日氣稍暖, 玉體若康, 則宜引備邊司堂上, 榻前論事, 日以庶務關心矣。" 上曰: "卿有欲言者歟?" 申磼啓曰: "在平時, 則兩南爲根本, 而在於今, 則兩南爲關防, 二西 【海西、關西。】 爲根本。 凡諸城、器械, 所當汲汲修築。 首陽 【在海州。】 山城, 已令繕治, 而關西一路蕩然, 無把守之所。
成川、寧邊、平壤, 俱係要害。 成川, 則前有長川, 又有十二峯, 回環左右, 城中有倉, 此古人所設也。 旣築山城, 又置雄藩, 祖宗朝鎭管之法, 豈偶然哉?" 上曰: "成川山城, 山多惡石, 四面峻急, 人不敢攀躋, 形勢壯固。 若設重鎭, 置勁兵以守之, 賊安能闌然(冞)〔深〕 入乎? 且六縣, 乃濱海之地, 處處分割, 亦爲未穩。 予意, 但當合爲三四, 不必分爲六縣, 則可作平壤右臂也。" 申磼啓曰: "凡重鎭, 則當減其徭役, 擇人以守。 不然則一樣蕩敗, 何以禦亂於倉卒也?" 上曰: "凡事在得人。 平安道新兵使李慶濬, 不知何許人也, 拜辭時, 予一見之, 乃從容士人也。" 申磼啓曰: "慶濬善於治民, 膂力方剛。 第以節度之任, 非但交鋒於原野之間, 必須號令於列鎭。 慶濬雖有勇健之名, 而年少是其欠也。" 上曰: "苟有才智, 何妨年少? 但患無其材耳。 西賊覬覦, 于今二年, 可虞之端, 不一而足。 此胡所欲, 不在乎他, 乃欲據有江界, 而專採(參)〔蔘〕 之利也。 此時邊將, 尤當極擇。 願諸卿, 爲薦可將者。" 申磼啓曰: "邊上有警, 則下卒着甲、具(橐)〔櫜〕 , 以待生變, 例也。 朴名賢, 夜半巡城、習陣, 下卒有不用命者, 名賢卽斬首以徇。 渠雖有殺人之罪, 非無故刃人之類, 乃用軍律也。" 上曰: "臨陣殺人, 猶之可也, 習陣之際, 焉用殺也?" 申磼啓曰: "名賢素有戰功, 若加之罪, 其才可惜。" 上曰: "大同江有淺灘, 非但此地爲然。 凡諸淺灘, 或築列堡, 或設砲樓, 可乎?" 申磼啓曰: "平壤有靑銀灘、白銀灘, 壬辰之賊, 皆由於此。 若築土城設砲樓, 則賊豈敢輕進哉? 但民力已竭, 土功難擧。 且楊州邑居, 絶無人家, 閭落空虛, 廣州亦如是。 沿革重事, 雖不可輕議, 而臣意以爲, 廣州則移於廣津, 楊州則移於樓院, 以衛京城, 甚爲便益。 祖宗朝畿甸大邑之碁置, 亦由於此也。"
- 【태백산사고본】 44책 7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5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행정(行政) / 군사-관방(關防)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정(軍政) / 건설-토목(土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