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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70권, 선조 28년 12월 24일 임술 1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하계조가 유계조와 마대공의 폐해를 지적하는 품첩의 초고

접대 도감이 아뢰기를,

"도사(都司) 하계조(何繼祖)가 낭청(郞廳) 유달증(兪達曾)을 불러 비밀히 말하기를 ‘내가 유광조(劉光祖)·마대공(馬大功) 등의 탐잔(貪殘)하여 폐해를 끼치는 정상을 목도하고서 통분함을 견딜 수 없어 신 도사(愼都司)·호 도사(胡都司)와 연명(聯名)으로 양 포정(楊布政)의 아문에 그저께 이미 파발(擺撥)을 시켜 품첩(稟帖)을 발송하였으니, 오는 정월 10일경이면 회보가 있을 것이다.’ 하고 이어서 그 품첩의 초고를 내어 보이며 말하기를 ‘이 초고는 비록 우리 가정(家丁)이라도 내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알고서 저곳에 뇌물을 쓰면 내 말이 헛 것이 되고 마니 그대는 이를 아주 비밀로 하라.’ 하였습니다. 그 품첩의 사연을 살펴보았더니, 유계조와 마대공의 폐해를 극력 말하였습니다. 이 말이 다행히 성공하게 되면 수탈당하는 근심을 면할 수 있고 중국 장수가 폐해를 끼치는 일도 조금 중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 도사가 우리 나라를 위하여 폐해를 진술하는 뜻이 지극합니다. 그 초고를 아울러 입계(入啓)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속을까 두려우니 신중하게 대응하라."

하였다.

【품첩의 초고는 다음과 같다. "비직(卑職)이 조선에 차견(差遣)되어 국왕과 회동하여 포화(布花)를 나누어 주고 남은 것은 변매(變賣)하려 하였는데 뜻하지 않게도 본국 지방은 원래 은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쌀·베·무명·명주만으로 호시(互市)할 뿐입니다. 이미 본국의 실정을 가지고 사실대로 구품(具稟)하였으나 여태까지 분명한 회시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무진(撫鎭)의 차관(差官) 유광조(劉光祖)·마대공(馬大功)과 야역(夜役) 손득공(孫得功)이 조선에 차견된 것은 왜정을 염탐하려는 것인데, 권세를 믿고 악을 자행하여 법을 어기고 온갖 좋지 못한 일을 일으킬 줄을 어찌 요량하였겠습니까. 투충아호(投充衙虎) 20여 명을 거느리고서 쌀·생선·닭을 지공받으면서 토색질만 일삼아 취함이 한이 없습니다. 또 지응관(支應館) 안에 호피(狐皮) 20여 장과 무수한 녹비와 장피(獐皮) 및 홍동(紅銅)·황동(黃銅) 수십 근을 강제로 요구하고서 조금만 차관의 영을 받들지 않으면 군사 및 데리고 다니는 여러 아호(衙虎)를 풀어 놓아 낭관(郞官)을 잡아오게 하고 이역(吏役)을 다 잡아다가 괴롭힙니다. 그리고 시장 거리를 지날 적마다 상인을 약탈하여 명주·삼베·피물(皮物) 등을 모두 거두었으므로 서울에 시장을 파한 지가 1개월이나 되었습니다. 또 목장(木匠)·철장(鐵匠)·피장(皮匠) 및 각색 장인(匠人)을 잡아다가 온갖 물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조선이 왜란을 만나 잔파(殘破)된 뒤로 인심이 흉흉하여 마치 병을 앓는 사람이 호흡이 안정되지 못하고 서는 것이 견고하지 못한 것과 같은데 불행하게도 또 사나운 호랑이의 해독을 만났으니 겨우 살아남은 백성이 어떻게 생존하겠습니까. 또 시가(市價)가 1필당 10냥 나가는 말을 다만 한두 냥만 주고 빼앗은 것이 10마리도 넘습니다. 조금이라도 따르지 않으면 마구 곤장을 치는데 생민이 거리와 시장에서 울부짖는 것을 비직이 차마 보고 듣지 못하겠습니다. 더구나 조선은 임금과 신하가 모두 예의를 지키는 나라인데, 무슨 까닭으로 이런 탐잔(貪殘)하고 비악(鄙惡)한 사람을 차견하여 요구함이 한이 없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외국에 비웃음을 산단 말입니까. 만일 갖추 품고하여 다스리지 않으면 어떻게 장래의 일을 경계하겠습니까. 또 비직이 길에서 각 아문이 차견한 관원을 만난 것이 연락 부절이었으니, 지방이 폐해를 받는 것이 어찌 만단(萬端)뿐이겠습니까. 조선 관원이 오직 천조(天朝)를 준수할 줄만 알 뿐이니 어찌 그 진위(眞僞)를 알겠습니까. 바라건대, 노야(老爺)께서는 이방(異邦)을 특별히 유념하여 군문과 양원(兩院)에 전달(轉達)해서 청렴하고 능력 있으며 인망이 중한 두 사람을 뽑아 차견하여 하나는 의주진(義州鎭)에 주재하고 하나는 서울에 주재하게 해서, 왕래하는 패표(牌票)를 살펴 많이 기류(羈留)하거나 말을 많이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원래 기류하는 사람을 해당 관할 아문에 신보(申報)하여 통렬히 책벌을 가하소서. 비직은 마음에 몹시 통분하므로 감히 무릅쓰고 상진(上陳)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70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16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壬戌/接待都監啓曰: "何都司繼祖〔河都司繼祖〕 , 招郞廳兪達曾, 密言曰: ‘俺目見等貪殘作弊之狀, 不勝痛憤, 與愼都司胡都司, 聯名稟帖于楊布政衙門, 昨昨, 已令擺撥兒傳送。 來正月初十日間, 當有回下矣。’ 仍出視其草藁曰: ‘此草, 雖俺家丁, 亦不出示。 渠若先知, 而行賂於彼處, 則吾言歸於虛地。 爾須十分秘之。’ 云。 觀其稟帖之辭, 極陳之弊, 此言幸若得成, 則可免割剝之患, 而天將作弊之事, 亦或少戢。 (何都司)〔河都司〕 爲我國陳弊之意至矣。 其草藁竝入 啓。"【其藁曰: "照得卑職, 奉差朝鮮, 會同國王, 給散布(花) 〔貨〕, 餘者變價, 不意本國地方, 原不行使銀兩, 止米、布、綿、紬互市。 已將本國心情, 從實具稟, 至今未蒙明示。 今有撫鎭差官劉光祖馬大功、夜役孫得功, 奉差朝鮮, 止係探聽情, 豈料特惡違法, 百端生事? 帶領投充衙虎二十餘名, 支食米、魚雞, 只索取無厭。 又逼要支應館內狐皮廿餘張, 鹿皮、獐皮不計其數, 紅銅ㆍ黃銅數十斤, 稍不奉承, 差令撥軍及所帶群虎, 檢鎖郞官, 綑打吏役。 每遇徑行街市, 搶奪商人紬布皮物, 罄然一空, 王京罷市者一月。 又拘挐木匠、鐵匠、皮匠及各色匠人, 營造百物。 竊思朝鮮, 遭殘破之後, 人情洶洶, 如尫羸患病之人, 喘息未安, 培立未堅。 不幸又遭惡虎之害, 遺民何以存生? 且又搶市馬, 每價直十兩者, 止(如)〔爲〕 一二兩, 如此者十數。 稍有不從, 肆行棍打, 生民街市呼哭者, 卑職不忍見聞。 況朝鮮君臣, 皆禮義之邦。 何故差此貪殘鄙惡之人, 不惟貪求無厭, 抑亦貽笑外國? 若不具稟法治, 何以警戒將來? 且卑職在路, 迎遇各衙門差遣人員, 絡繹不絶。 地方受害, 何止萬端? 朝鮮官, 只知遵守, 天朝何以知其眞僞? 伏乞老爺, 特念異邦, 轉達軍門、兩院, 選差廉能望重二員, 一住義州鎭, 一住王京, 驗察往來牌票, 禁革多羈馬匹多索者, 將原人羈留, 申該管衙門, 痛加責罰。 卑職憤切於衷, 故敢冒昧上陳矣。" 云云。】 上曰: "恐爲所賣, 詳愼應之。"


  • 【태백산사고본】 42책 70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16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