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에서 왜적 방비를 위해 거북선을 더 만들 것을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 왜적의 흉모(凶謀)는 헤아릴 수 없으니 강사준이 보고한 바를 기다리지 아니하고도 명년의 일이 이미 근심스럽습니다. 대저 적을 막고 나라를 보전하는 방도는 마땅히 먼저 대계(大計)를 정해야 하고 대계가 정해지고 나면 또 포치(布置)하고 조처하는 일이 있어야 하며, 포치하고 조처하는 일이 있고 나면 또 촌음(寸陰)을 아껴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점은 보강해서 한 마디 말이 한 가지 일이 되고 한 가지 일이 한가지 성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날로 계산하면 부족하나 해로 계산하면 남음이 있습니다. 옛사람이 적을 대적할 때는 반드시 적과 나의 형세를 먼저 헤아려서 싸울 만하면 싸우고 지킬 만하면 지켰습니다. 그러나 먼저 적이 이길 수 없는 방비를 하고 나서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으니, 이것이 병가(兵家)의 승산(勝算)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왜적과 겨루어서 싸우면 열 번 싸워 열 번 패전하는 형세가 있고 지키면 해볼 만한 희망이 있으니, 이는 지혜로운 자를 기다리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 김시민(金時敏)이 진주를 지키자 왜적이 감히 격파하지 못하였고, 권율(權慄)이 행주(幸州)를 지키자 우리 군사가 대첩을 거둘 수 있었으며, 이정암(李廷馣)이 연안성(延安城)을 지키자 홀로 보전할 수 있었고, 임중량(林仲樑)이 두어 자의 토루(土壘)를 수리하자 한 번 적을 이겼고, 황주(黃州)의 백성이 선산(蒜山)에 모여 있자 적이 여러 차례 공격하여도 이롭지 못하였으니, 이로써 살펴보면 지키는 것이 야전(野戰)보다는 나은 점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리의 험고함을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기 때문에 신들이 전부터 매양 험한 데에 의거하는 한 가지 일로 전후 계달(啓達)하여 사방에 알린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인심이 흩어져서 이미 성루(城壘)를 보호할 의사가 없고, 중외 사람이 적세가 큰 것만 보고 또한 험고함을 베풀어 보수(保守)할 계책을 세움에 뜻이 없는 것입니다.
또 지난해 이전에는 부상당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이 겨우 삶을 이어 갔습니다. 이 때문에 사역(使役)하고 단속(團束)하는 일에 몰아넣을 수 없었으므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면서 이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지금 사방을 돌아보면 믿을 만하고 지킬 만한 지방이 한 곳도 없습니다. 적이 침략해 올지는 기필할 수 없으나 우리에게는 씻은 듯이 공허하여 믿을 곳이 없으니 한심스러움이 어찌 한이 있겠습니까.
지금 왜적이 머뭇거리고 떠나지 아니하면서 이미 세모(歲暮)에 박두하였으되 요구하는 일이 하나도 없고 미루고 핑계하면서 시일만 보내고 있으니 강사준이 말한 바를 어찌 다 떠도는 소문으로 여겨 믿기 어려운 것으로만 돌려버릴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사려가 부족하니, 이 큰 일을 당해서 어찌 상달할 만한 변고에 대응하는 좋은 계책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미 지나간 사적에 의거하여 말씀드리면 수전(水戰)은 자못 우리 나라의 소장이요, 거북선의 제도는 더욱 승첩에 요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이 꺼리는 바가 이 거북선에 있고 강사준의 보고도 그러하였습니다. 적병이 처음 부산에 당도할 적에 만일 좌우도(左石道)의 병선(兵船) 수백여 척으로 하여금 제때에 절영도(絶影島) 이남에서 막게 하였더라면 승리를 얻을 수 있었을 듯한데, 이를 실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적세가 뒤를 돌아보는 염려가 전혀 없어서 마음대로 창궐하였던 것입니다. 옛말에 ‘전의 일을 잊지 않는 것은 뒷일의 밝은 경계이다.’ 하였으니, 지금 이 겨울철을 당하여 급급히 배와 기계를 수리하고 수군의 형세를 많이 모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북선이 부족하면 밤낮으로 더 만들어 대포·불랑기(佛狼機)·화전(火箭) 등을 많이 싣고 바닷길을 막아 끊는 계책을 하는 것이 곧 위급함을 구제하는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 평상시 경상도에 선재(船材)가 생산되는 곳은 거제(巨濟)·옥포(玉浦)·지세포(知世浦) 등처가 있을 뿐인데, 적병이 몇 년을 넘도록 섬 안에 들어가 있으니 선재가 아직도 남아 있는지의 여부를 모르겠습니다. 이 일을 도체찰사와 통제사에게 비밀히 통지하여 군기(軍機)를 노출하지 말고 유의하여 조처해서 완급(緩急)에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육지의 방어에 이르러서는, 전에 진달한 바 험고한 데에 의거하는 한 가지 일 이외에 달리 좋은 계책이 없습니다. 왜적은 진을 치는 데에 능하여 반드시 길가 요충지에서 좌우로 공제(控制)하고 장애가 없이 환히 바라보이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또 높은 산 깊은 구렁이나 암석이 험난한 곳을 구하지 않고 다만 산에 초목이 없고 그 형세가 볼록하게 나오고 사면이 민둥민둥하여 막힌 데가 없는 곳을 찾아서 진을 쳤습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항복한 왜인도 ‘파주 산성(坡州山城)은 돌을 피할 곳이 없으므로 바라보고서 감히 전진하지 못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은 실정은 토로한 말이고 헛되어 늘어놓은 말이 아닙니다.
이로써 논하면 곳곳마다 모두 험고함을 설치할 만하고 곳곳마다 모두 보수(保守)할 만하니, 마땅히 적절하게 지시하고 간편하게 조치하여 가까운 백성에게 약속해서 그들로 하여금 들어가 보수(保守)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계와 화포를 많이 구비하여 때때로 백성을 모아 성 지키는 규식을 조련하여 백성으로서 보는 자로 하여금 모두 이곳에 들어가면 참으로 삶을 찾고 죽음을 면할 수 있음을 환히 다 알게 하면 백성의 뜻이 저절로 안정되어 창졸에 이산하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공사(公私)의 곡식을 거두어 모아 그 안에 다 저장해 두면 이른바 청야(淸野)의 계책도 또한 함께 시행하는 것이 됩니다. 지금 먼저 들어가 보호할 곳을 만들지 아니하고 청야를 권하면 사세상 행하지 못할 바가 있고, 임시에 도적에게 양식을 주지 않으려 한들 될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 수원(水原) 독성(禿城)은 성첩(城堞)이 대충 성취되었고 또 포루(砲樓)를 설치하였으므로 와서 보는 백성들은 자못 성을 지킬 의사가 있다 합니다. 여기에서 또한 민심이 믿을 바를 보게 되면 조금은 안정된다는 하나의 징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지 4년 동안에 이러한 계책을 강구한 것이 또한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모양을 이루지 못한 것은 기강이 해이하여 서로 유지하지 못한 데에 있었으니, 이른바 ‘종신토록 의논만 하고 끝내 하루 동안이나마 몸소 실행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 불행하게도 이에 가깝습니다. 하삼도(下三道)는 도체찰사가 반드시 조처함이 있을 것입니다. 신들이 또 염려되는 바는, 제주가 해중(海中)의 절도(絶島)에 있으므로 적이 이곳을 엿보면서 연(燕)·제(齊)·계요(薊遼) 등을 침범하고자 하여 잠시도 잊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망쳐 돌아온 사로잡혔던 사람 및 항복한 왜인이 말한 바도 가끔 이러하였으니 방비에 관한 일이 더욱 긴요합니다. 듣건대, 지난해와 금년은 농사가 흉년이 들고 여역(癘疫)이 흥행하여 사람과 가축이 많이 죽었다 하니 또한 염려스럽습니다. 이 한 주(州) 및 진도(珍島)도 반드시 각별히 경리(經理)한 뒤에야 가합니다.
이 뜻을 아울러 도체찰사 및 본도 순찰사 등에게 통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들이 앉아서 하는 말, 멀리서 헤아린 의견이 이 정도에 불과하며 인용하여 신장하고 유추하여 좋게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금 도체찰사의 종사관(從事官) 김시헌(金時獻)이 내려가려 하니, 이 사연으로 비밀히 말해 보내어 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68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586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備邊司啓曰: "此賊, 兇謀難測, 不待姜士俊所報, 而明年之事, 已爲可憂矣。 大抵禦敵、保國之道, 當先定大計; 大計旣定, 則又有布置、措畫之事; 旣有布置、措畫之事, 則又當愛惜寸陰, 分寸補綴, 要使一言爲一事, 一事爲一效。 若是則雖日計不足, 而歲計有餘。 古人臨敵, 必先量彼我之勢, 可戰則戰, 可守則守。 然先爲不可勝, 以待敵之可勝, 此尤兵家之勝算也。 今日我國, 與倭賊相角, 戰則有十敗之勢, 守則有可爲之望, 此不待智者而知也。 往日, 金時敏守晋州, 則倭賊不敢破; 權慄守幸州, 則我軍得以大捷; 李廷馣守延安城, 而獨得保全; 林仲樑修葺數尺土壘, 而一番勝敵; 黃州之民, 保聚蒜山, 而賊屢攻, 不得利。 以此觀之, 守之有異於野戰明矣, 而地利之險, 焉可誣也? 惟其如此, 故臣等自前, 每以據險一事, 前後啓達, 而知委四方者, 不可勝計矣。 只恨人心渙散, 旣無意於團保城壘, 而中外之人, 徒見賊勢浩大, 亦無意於設險保守之計。 且以前年以上, 則瘡痍、飢饉之民, 生理僅續, 故不可驅之於役使團束之事, 悠悠玩愒, 以至於此, 環顧四方, 無一處可恃可守之地。 賊之來否, 雖不可必, 而在我則蕩然空虛, 無可依賴, 其爲寒心, 庸有極乎? 今倭賊徘徊不去, 已迫歲暮, 一無要索之事, 遷延推托, 坐度時日, 姜土俊所謂, 亦豈盡委於漫浪難信而已哉? 臣等思慮短淺, 當此大事, 豈有應變良圖, 可以上達者乎? 但據已然之迹言之, 則水戰, 頗爲我國所長, 龜船之制, 尤爲要捷, 故賊之所憚在此, 姜士俊之報亦然。 當賊兵之始到釜山也, 若使左右道兵船數百餘艘, 及時要截於絶影以南, 則似當得利, 而不能爲之。 以是賊勢, 無復有後顧之慮, 而任意猖獗。 古云: ‘前事之不忘, 後事之明戒。’ 今者亦當乘此冬月, 汲汲修整船隻、器械, 厚集水軍之勢, 龜船不足, 則晝夜加造, 多載大砲、佛狼機、火箭器具, 以爲遮截海道之計, 此乃最爲救急之良策也。 常時慶尙道船材所産處, 只有巨濟 玉浦、知世浦等處, 賊兵經年入處島內, 未知船材尙有餘存與否。 此事密通於都體察使、統制使, 勿露軍機, 留意措置, 以備緩急可也。 至於陸地防禦, 則前所陳據險一事外, 他無善策。 倭賊善於置陣, 必爲於路邊要衝, 左右控制, 通望無礙之處。 又不深求於高山絶壑、巖石險阻之處, 只是尋討山無草木, 其勢凸出, 四面童童, 無所遮障之地爲陣, 故往日降倭亦言: ‘坡州山城, 無避石之處, 故望之而不敢前’ 云。 此是吐實之言, 非虛設之語也。 以此論之, 則處處皆可設險, 處處皆可保守。 要當指授得宜, 措置簡便, 約束傍近之民, 使之入保, 而多備器械、火砲, 時時聚民, 操練、守城之規, 使民之見者, 曉然皆知入此, 眞可以求生而免死, 則民志自定, 而倉卒無離散之憂。 因爲收聚公、私之穀, 盡置其中, 則所謂淸野之謀, 亦在其中矣。 今不先爲入保之地, 而勸之淸野, 則事勢有所不行, 臨時, 雖不欲齎盜, 不可得也。 近日水原 禿城, 城堞粗就, 而又設砲樓, 民之來見者, 頗有守城之意云。 此亦民心, 見其所恃, 則稍定之一驗也。 兵興四年, 講求此等之策, 亦非一二, 而無以成形者, 患在於紀綱解弛, 不相維持。 所謂: ‘徒有終身之議論, 竟無一日之躬行者’, 不幸近之矣。 下三道, 則都體察使, 必有處置矣, 臣等又有所慮, 濟州在海中絶島, 賊之窺覦此處, 欲以爲侵犯燕、齊、遼、薊, 必不暫忘, 而走回被擄人及降倭所言, 往往如此, 防備之事, 尤爲關緊。 聞去年、今年, 年穀不登, 癘疫興行, 人畜多死云, 亦爲可慮。 此一州及珍島, 必須各別經理, 然後可也。 此意竝通於都體察使及本道巡察使等官爲當。 臣等坐談遙度之言, 不過如此, 至於引而伸、觸類而長, 在於當事之地。 今者都體察使從事官金時獻, 將下去, 以此辭緣, 秘密言送知委, 何如?" 上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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