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수비·창곡 저장 등 달로의 방어책에 대해 비변사에서 회계하다
비망기로 전교하기를,
"지금 오랑캐의 형세가 필시 심상하지 않으니 우리 나라가 무슨 병력으로 그들을 방어하겠는가. 군현에 성이 없는 곳이나 성이 있더라도 튼튼하지 않은 곳이 창곡(倉穀)을 유치(留置)해서는 안 된다. 만일 한 두 고을을 함락하여 그 양곡으로 의뢰하게 되면 근심됨이 작지 않다. 강변 근처에는 산성이 없는가? 헤아려서 지휘하라. 또 방비하지 않는 데가 없으면 나뉘어지지 않는 바가 없다. 군사가 나뉘어지면 힘이 나뉘어지는 것인데, 하물며 군사는 본디 적어서 나눌 수 없는 데있겠는가. 적이 어느 곳으로 돌발하여 올지 모르니 두서너 곳의 큰 진영(鎭營)에 군사를 머물러 두었다가 적이 향하는 바를 들어가면서 방어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또 우리 나라는 변진(邊鎭)은 대강 갖추었으나 내지는 유의하지 않아서 씻은 듯이 보장(保障)이 없으니 변성(邊城)이 한번 격파되면 소문만 듣고는 붕괴되는 것은 괴이할 것도 없다. 지금 관서 중도(中道)로서 정주(定州) 등처 같은 곳에 군사를 모아 둔수(屯守)하여 성원(聲援)으로 삼게 하는 것이 좋겠다. 단 정주성의 형세를 살펴보면 지킬 만한 곳이 못 되는데, 이밖에 지킬 만한 다른 곳이 없는지 살펴서 조처하라. 안주(安州)는 조호익(曺好益)이 있으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사 몇 사람을 가려 보내어 조호익의 군관이라 부르기도 하고 다른 명칭으로 부르기도 하여 조호익과 협력해서 조치, 수비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병사(兵使)는 군관을 몇 사람이나 거느리고 갔는지 모르겠거니와 이런 때에는 정한(定限)을 두어서는 안된다. 용맹스럽고 싸움 잘 하는 무사 약간 명을 정밀히 뽑아 군관으로 가정(加定)하여 내려 보내도록 하라.
또 옛날에는 큰일이 있으면 반드시 신명(神明)에게 제사하여 기고(祈告)하였고 정벌에도 그렇게 하였다. 옛날에 부견(苻堅)이 입구(入寇)하자 진(晉)나라에서는 명산에 제고(祭告)하였다. 지금도 달로(㺚虜)가 입구하는 성식(聲息)을 가지고 사전(祀典)에 기록되어 있는 서방의 각처와 전대 명장의 신에게 기고(祈告)하게 하는 것이 어떠할지 모르겠다. 감응(感應)하는 이치는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모두 살펴서 회계(回啓)하도록 비변사에 이르라."
하였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삼가 성교(聖敎)를 보건대, 서방의 일에 대해 빠뜨린 계책이 없으니, 진실로 준봉하여 시행해야 합니다. 이 달로(㺚虜)는 병세(兵勢)가 매우 강성하므로 우리 국경을 침범하면 우리 나라 병력으로는 결코 당해낼 기세가 없으니 매우 답답합니다. 위로 강계로부터 아래로 의주에 이르기까지 적이 들어오는 길은 대개 5∼6개 처입니다. 그러나 벽동(碧潼) 이상은 산세가 극히 험하고 얼음과 눈으로 막혀 있으니, 내지로 충돌하여 오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창주(昌州)에서 삭주(朔州)·구성(龜城)에 이르기까지는 곧 통행하는 큰 길이니, 이것이 몽고와 거란(契丹)이 고려 때에 뜻을 얻게 된 이유인 것입니다.
오늘날 염려할 것은 오직 이 길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웅거할 만한 산성이 별로 없고 오직 창주·창성(昌城) 두 진영(鎭營)의 성이 튼튼하지는 않으나 이는 적로의 요충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곳입니다. 감사와 병사도 이미 헤아리고 있으니 반드시 방수의 계책을 세울 것입니다. 대군이 이곳에 모이면 두 곳의 창곡(倉穀)은 옮겨 둘 필요가 없습니다. 삭주·구성으로 말하면 군량의 저축이 다른 고을보다 조금 넉넉하지만 삭주는 성이 엉성하고 구성은 원래 성이 없으니, 이 두 고을은 아마도 보장(保障)이 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삭주에 연평(延平)·계반(溪畔)이 있고 남령(南嶺)이 험절(險絶)하여 적병을 막을 수 있으니, 이곳에다 창곡을 또한 유치(留置)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주도 내지의 큰 고을이지만 성이 낮고 미약할 뿐만 아니라 형세 또한 웅거할 만한 곳이 못됩니다. 본주(本州)의 서쪽 30리에 곽산 산성(郭山山城)이 있는데, 참으로 천연 요새지로 그 안에 군사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또 본군의 창곡이 있는데 변란을 당하면 옮겨올 수 있습니다. 안주의 성은 정주보다 낫고 또 조호익이 수령으로 있으니 조금은 믿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사람은 말을 타고 돌격하여 치고 찌르는 일을 하기는 어려우니 용맹스럽고 건장한 무사 약간 명을 가려 보내어 군관으로 칭하여 협력하여 막게 하는 것이 극히 합당합니다. 병사(兵使) 군관의 숫자에 대해서 신잡(申磼)에게 물어보았더니, 데리고 있는 사람이 20명이 차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양곡이 부족하여 많이 거느리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들이 일찍이 계청(啓請)하여, 죄로 쫓겨나고 파직된 사람이나 상중에 있는 사람을 따지지 말고 뽑아서 서계하려 하였습니다만, 그 중 연소하고 무용이 있는 사람을 약간 뽑아내어 내려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본도의 산천 및 전대 명장의 신(神)으로서 사전(祀典)에 실려 있어 제고(祭告)할 만한 곳에는 예조로 하여금 달로(㺚虜)의 성식(聲息)을 가지고 제문을 짓게 하고 향과 폐백을 아울러 마련하여 감사에게 보내어 기고(祈告)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들이 보고 들은 바로 말씀드리자면, 반드시 삭주·구성·영변·안주·곽산에 마땅히 대진(大鎭)을 만들어 군사를 유치하는 곳으로 삼고 적이 향해 가는 소식을 듣고 그를 방어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다만 멀리서 헤아리기는 어려운 것이어서 실지로 사의(事宜)에 합당한지 모르겠습니다. 적과 대치하였을 적에 형세를 헤아려 변을 제어하는 것은 오직 순찰사와 병사의 처치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뜻으로 아울러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곽산에 이미 산성이 있으니, 우려스러운 인근 고을의 창곡을 이곳에 옮겨 두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변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하려 한다면 창황하여 어찌할 길이 없게 될 것인데 무슨 인력으로 옮겨 둘 수 있겠는가. 반드시 될 수 없을 것이니, 다시 의논하여 지휘하라.
소요를 미리 염려해서는 안 될 듯하나 이런 때는 사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근래 관서의 수령을 전조(銓曹)에서 가려 차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사람들도 서방을 몸을 편안히 하는 곳으로 삼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수령으로서 합당하지 않은 자는 모두 개차(改差)하고 정밀히 가려 제수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함경도는 지금 하는 일이 없으니, 평안도에서 가까운 남도(南道)의 고을에서 정병을 미리 뽑아 행장을 꾸리고 있다가 적세가 치성할 경우에 평안 감사가 그곳의 수령을 부르면 곧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가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평안 감사의 호령이 함경도에 행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68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576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以備忘記, 傳曰: "今此虜勢, 定非尋常。 我國, 以何兵力禦之? 郡縣無城子處, 雖有城而不堅處, 不可留置倉穀。 若拔一二邑, 得資其糧, 爲患非細。 江邊近處, 無山城乎? 商量指揮。 且無所不備, 則無所不分, 兵分則力分。 況兵素少, 而不可分者乎? 未知賊發於何處, 似當留兵於數三大鎭, 聞賊所向而禦之。 且我國, 惟粗備邊鎭, 而內地則曾不留意, 蕩無保障, 邊城一破, 望風崩潰, 非怪矣。 今於關西中道, 如定州等處, 可聚兵屯守, 以爲聲援, 但觀定州城子形勢, 非可守之地。 未知此外, 有他可守處否? 察處。 安州有曺好益, 可以守之, 然擇遣武士數人, 或稱曺好益軍官, 或稱他名, 與好益協力措備似當。 兵使軍官, 未知已帶率幾人? 此時不可有定限。 若精抄勇悍善戰若干人, 加定軍官下送。 且古者有大事, 則必祭神明祈告, 於征伐亦然。 昔, (符堅)〔苻堅〕 入寇, 晋祭告名山。 今宜以㺚虜入寇聲息, 祈告于西方祀典所載及前代名將之神, 未知如何? 感應之理, 不可誣也。 竝察而回啓, 言于備邊司。" 備邊司回啓曰: "伏覩聖敎, 其於西方之事, 算無遺策, 固當遵奉施行矣。 此虜兵勢甚盛, 若犯我境, 則以我國兵力, 決無抵當之勢, 極爲悶慮。 上自江界下至義州, 賊來之路, 槪五六處, 而碧潼以上, 則山勢極險, 氷雪又塞, 則似難衝突於內地。 自昌洲至朔州、龜城, 乃是通行之大路, 此蒙古、契丹之所以得志於前朝者也。 今日所慮, 唯在於此路, 而其間別無山城可據之處, 惟是昌洲、昌城兩鎭城子, 雖不牢固, 而此乃賊路要衝, 當爲必守之地。 想監司、兵使, 亦已料理, 必爲防守之計。 大軍聚集于此, 則兩處倉穀, 不須移置也。 如朔州、龜城, 則軍餉所儲, 視他邑稍優, 而朔州則城子齟齬, 龜城則元無城子, 此兩邑, 恐難爲保障之地。 然朔州有延平、溪畔, 南嶺險絶, 可以遮截賊兵, 此處倉穀, 亦不可不留置也。 定州亦內地之雄邑, 而非但城子低微, 形勢亦非可據之處。 本州之西三十里, 有郭山山城, 眞天險之地, 其中可容萬兵。 又有本郡倉穀, 臨變可以移守也。 安州之城, 勝於定州, 而又有曺好益爲之倅, 稍可恃也, 而第以此人, 難爲馳突擊刺之事。 擇遣武士勇健若干人, 稱爲軍官, 使之協力拒截, 極爲允當。 兵使軍官多少, 問申磼, 則所帶者, 未滿二十云。 蓋以糧餉不足, 難於多率也。 臣等曾已啓請, 不計罪斥、罷散、在喪之人, 欲抄擇書啓, 其中年少武勇之人, 抽出若干, 下送爲當。 本道山川及前代名將之神, 祀典所載可以祭告之處, 令禮曹, 將㺚虜聲息, 祭文製述, 香幣竝備, 送于監司處, 祈告宜當。 以臣等所見聞言之, 必朔州、龜城、寧邊、安州、郭山, 當爲大鎭留兵之地。 聞賊所向, 而禦之爲當。 但遙度爲難, 未知實合於事宜否也。 量度形勢, 臨敵制變, 唯在於巡察使、兵使處置之如何耳。 以此意, 竝爲下諭何如?" 答曰: "依啓。 郭山, 旣有山城, 則隣近邑倉穀之可慮者, 不可不移置於此處。 若待變作, 則蒼黃失措, 以何人力移置? 必不能矣。 更議指揮, 似不可預慮騷擾。 此時得人爲最。 近來關西守令, 銓曹多不擇差, 而人亦以西方爲穩身地, 豈不寒心? 守令之不合者, 皆改差, 極擇除授, 最先之務。 咸鏡道, 今無所爲, 若於平安道相近南道之郡, 預抄精兵裝束, 賊勢萬一鴟張, 平安監司檄召其處守令, 卽領兵馳赴如何? 且恐平安監司號令, 不能行於咸鏡道也。"
- 【태백산사고본】 41책 68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57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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