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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67권, 선조 28년 9월 15일 갑신 1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유성룡과 함께 심유경이 양포정을 청한 의도와 적의 정세 등에 대해 문답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周易)》을 강하였다. 강이 끝나자, 김택룡(金澤龍)이 아뢰기를,

"능에 참배하는 일을 이미 날짜를 정하였으니 성효(聖孝)가 망극(罔極)하십니다. 그러나 서울을 떠나 파천하신 뒤에 종묘 사직이 폐허가 되었는데 위안하는 한 가지 일을 아직까지 거행하지 못하였으니 신은 실로 미안하게 여깁니다. 지난날 중국 사신이 서울에 있을 때에는 사세가 편리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니, 반드시 위안하는 일을 먼저 거행하고 잇따라 능에 참배하는 예를 거행하는 것이 진실로 편당하겠습니다. 조정 의논은, 혹 장소가 협착한 것을 미안하게 여기기도 하나, 신의 의견으로는 번거로운 형식은 제거하고 행하는 것이 좋다고 여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태묘(太廟)에 친제(親祭)하는 일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죄인이 태묘에 들어가 친제(親祭)할 수 없다. 능에 참배하는 일이라면 한번 곡하고 성묘(省墓)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

하고, 소패(小牌)를 내어 유성룡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심유경(沈惟敬)양포정(楊布政)을 청했다는 말을 외간에서 들었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그런 말이 일찍이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또한 우리 나라에 해로움이 있다. 심유경양포정을 청하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를 답험(踏驗)하기 위해서 청한 듯합니다."

하였다. 윤담무(尹覃茂)가 아뢰기를,

"미리 사람을 보내어 글을 올려 정지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포정에게 정문(呈文)하여야겠는가?"

하자, 담무가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중국 조정에서 심유경을 믿지 못하여 포정사를 내보낸 것이라면 정지하게 할 수 없을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일이 비록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정문(呈文)하는 것이 옳으니, 비변사에게 의논하여 처리 하라."

하였다. 이희득(李希得)이 아뢰기를,

"백관의 산료(散料) 및 잡용(雜用)의 한달 통계가 3천 8백여 석이나 되는데, 현재 있는 곡식은 1만 9천 석뿐이니 반드시 계속 실어온 뒤에야 접제(接濟)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라도·충청도·황해도 등에서 미수(未收)한 작미(作米)를 받아서 겨울전에 재촉하여 운반할 일로 조도 어사(調度御史)에게 하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해사(該司)에 말하라."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근래에 빈청(賓廳)의 대신들이 다 모이지 못하여 이처럼 중대한 일을 회의도 하지 못합니다. 조종조(祖宗朝) 때에는 시임 대신(時任大臣) 외에 빈청에 모인 이가 10여인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근래에는 김응남(金應南) 【사람됨이 근신(謹愼)하고 청검(淸儉)함으로 자신을 지켰으며 천성 또한 침후(沈厚)하고 국량이 있어 선류(善類)의 종주(宗主)가 되었고 태보(台輔)의 중망(重望)을 지니고 있다. 】 정병(呈病)하고서 출사(出仕)하지 않으므로 오직 소신 1인만 있을 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좌상의 병은 어떠한가?"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풍현(風眩)279) 으로 출사하지 못한다 합니다. 근래 증경 대신(曾經大臣)이 다 출사하지 않고 있는데 그 중에 이산해(李山海)정탁(鄭琢) 【어려서 매우 명예가 있었고 청현(淸顯)한 벼슬을 두루 지냈으나 천성이 본디 소활하고 재주가 천단(淺短)하였다. 처세에 능하여 시의(時議)만을 쫓고 별로 건백(建白)한 일이 없었으니 대개 공보(公輔)의 그릇은 아니다. 】 와서 벼슬할 수 있으니, 상께서 특명으로 출사토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 대신을 명초(命招)하여 같이 의논하여 처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체로 적의 정세가 어떠한가? 전후 수개월 동안 배회하며 가지 아니하니 그들의 사술(邪術)로써 보면 내년 봄에 모종의 일이 있을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하여 가지 않는 것인가.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신의 의견으로는, 당초 유정(劉綎)이 들어간 뒤에 행장(行長)이 중원과 통호하려 하였으나 청정(淸正)은 싸움을 주장하고 행장은 화의를 주장하여 두 왜적의 뜻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대개 평양에서 패배당한 뒤로 행장은 관백의 주벌(誅罰)을 받게 될까 두려워하여 중국 사신이 나오도록 힘껏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관백이 행장을 죽이려는 의사가 전혀 없고 편의에 따라 종사(從事)할 권한을 주었으므로 그의 생각도 느슨해졌습니다. 그리고 또 혹 평양에서 와 같은 일이 생겨 포로들이 또한 잡란(雜亂)하여 공동(恐動)시킬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돌아가지 않고 머뭇거리며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만약 올 겨울이 지나 중국 사신이 철수하여 돌아가면 아마 큰 기관(機關)이 있을 듯합니다. 주사불(朱沙不)이 고한 것으로 【항복한 왜인 주사불(朱沙不)이 말하기를 ‘평수길이 행장(行長)에게 이르기를 「대명(大明)이 만약 공주를 보내지 아니하면 명년 봄에 내 자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바로 쳐부수겠다. 」하였다.’ 했다. 】 살펴보면 그 뜻이 극히 흉참(兇慘)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난번에 적이 여전히 둔거(屯據)해 있는데도 중국의 장관(將官)들이 ‘적이 다 철수했다.’고 주본(奏本)을 올렸는데, 지금도 심유경이 이렇게 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적이 비록 들어간다 하더라도 전부 철수한다고는 기대할 수는 없다."

하니, 담무가 아뢰기를,

"일찍이 황신(黃愼)의 장계를 보건대, 왜적 2백∼3백 명이 부산에 머무르고자 한다 하였으니 그들이 다 철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하였다. 이르기를,

"2백∼3백 명만이 머무를 뿐이라면 그래도 괜찮지만, 어찌 그렇겠는가."

하고, 상이 또 이르기를,

"중국 사신이 설사 일본에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신이 우리 나라에 있을 때에는 적이 반드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만일 약속을 배반하고자 하면 반드시 혼단(釁端)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를테면 구혼(求婚) 등과 같은 일로 요구하여 중국 사신을 노하여 돌아가게 한 뒤에 다시 흉계를 부릴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하니, 김홍미(金弘微)가 아뢰기를,

"형세로는 들어갈 것 같습니다."

하자, 성룡이 아뢰기를,

"적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는 바로 이때에 방어의 계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근일 중국 교사(敎師)의 무리가 곳곳에서 횡포를 부리고 있으니, 대개 조련에 관한 일은 반드시 영솔자가 맡아 다스린 뒤에야 될 수 있는데, 이제 이러하니 성취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67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555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행행(行幸) / 군사-통신(通信) /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甲申/上御別殿, 講《周易》。 講畢, 金澤龍曰: "拜陵事, 已爲定日, 聖孝罔極, 而去之後, 廟社丘墟, 慰安一節, 猶未擧行, 臣實未安。 頃日天使在京時, 事勢非便, 而今則異於是, 必先慰安之節, 繼擧拜陵之禮, 允爲便當。 廷議或以狹窄爲未安, 而臣則以爲, 除去煩文, 而行之可矣。" 上曰: "太廟親祭之事, 非不知之, 但罪人不可入太廟親祭。 若其拜陵, 則一哭展省, 在所不已。" 上以小牌, 出示柳成龍曰: "沈惟敬楊布政之說, 外間聞之乎?" 成龍曰: "此言, 曾有之矣。" 上曰: "此亦於我國有害。 之請, 何意乎?" 成龍曰: "似爲踏驗我國而請也。" 尹覃茂曰: "預爲送人呈文, 止之可矣。" 上曰: "呈文于布政處乎?" 覃茂曰: "然。" 成龍曰: "朝不信沈惟敬, 使布政出來, 則似不可止。" 上曰: "事雖不成, 呈文可矣。 備邊司議處。" 李希得曰: "百官散料及雜用, 通計一朔, 三千八百餘石, 而時存之穀, 只一萬九千石。 必須連絡輸致, 然後庶可接濟。 全羅道忠淸黃海等道, 作米未收, 冬前催運事, 調度御史處下書, 何如?" 上曰: "言于該司。" 成龍曰: "近來賓廳大臣不齊, 如此重事, 不能會議。 祖宗朝時, 時任大臣外, 會于賓廳者, 多至十餘人云, 近者金應南 【爲人謹愼, 淸儉自持。 性且沈厚, 兼有局量, 爲善類宗主, 負台輔重望焉。】 呈病不仕, 只有小臣一人耳。" 上曰: "左相病, 何如?" 成龍曰: "以風眩, 不能出云。 近來, 曾經大臣, 皆不仕。 其中如李山海鄭琢 【少時甚有名譽, 歷敭淸顯。 然性本迂疎, 才分短淺。 巧於涉世, 只逐時議, 別無建白之事, 蓋非公輔之器。】 可以來仕, 自上特命出仕可矣。 今日命招大臣, 同議處置何如?" 上曰: "宜當。" 上曰: "大槪賊情何如? 首尾數月, 徘徊不去。 以其詐術觀之, 明春恐有某事。 不然則何以不去? 各陳所見。" 成龍曰: "臣意, 當初劉綎入去之後, 行長欲通中原, 而淸正主戰, 行長主和, 二賊之意, 岐而爲二。 蓋平壤見敗之後, 行長恐被關白誅罰, 力請天使, 而今則關白, 頓無欲殺行長之意, 而授以便宜之權, 故其意解緩。 且恐或有平壤時事, 被虜人等, 亦雜亂恐動之故, 遲回至此。 若過今冬, 天使撤還, 則恐有大機關也。 以朱沙不所告之事 【降倭 朱沙不說稱: "平秀吉謂行長曰: ‘大明者不送公主, 明春當自將直擣’ 云。"】 觀之, 則志極爲兇慘。" 上曰: "前者, 屯據如前, 而天朝將官, 以盡撤上本。 沈惟敬無乃今亦如是乎? 賊雖入歸, 盡數撤去, 則未可必也。" 覃茂曰: "曾見黃愼狀啓, 則賊二三百, 欲留釜山云, 此亦可知。" 上曰: "止留二三百, 猶之可也, 豈其然乎?" 上曰: "天使設使不往日本, 在我國時, 則賊必不動矣。" 成龍曰: "若欲背約, 則必生釁端。 以如求婚等事要之, 使天使怒而撤還, 然後更逞兇計矣。" 上曰: "必如是矣。" 金弘微曰: "其勢則似當入去。" 成龍曰: "賊情豈可測? 我國當及是時, 以爲防備之計可矣, 而近日敎師輩, 處處橫挐。 大槪操鍊之事, 似須率領者句管, 然後可也, 而今乃如是, 似難成就矣。"


  • 【태백산사고본】 40책 67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555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행행(行幸) / 군사-통신(通信) /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