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밖에서 봉왜 명사(封倭明使)의 전별 잔치를 베풀다
먼동이 틀 무렵에 상이 숭례문(崇禮門) 밖에 나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봉왜 명사(封倭明使)의 전별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세 순배 돌자, 중국 사신이 말하기를,
"아침도 이미 늦었고 길도 백 리나 되니 이만 작별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제 당신의 말씀을 어기기 어려워서 예를 행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또 이와 같이하니 서운한 마음 견딜 수 없오."
하였다. 이어 이광정(李光庭)에게 【예방 승지(禮房承旨)이다. 】 명하여 예단(禮單)을 올리게 하고, 이르기를,
"변변찮은 물품으로 하찮은 성의를 표합니다."
하니, 중국 사신이 말하기를,
"다른 물품은 감히 받을 수 없으나 지금 해외로 가므로 약용이 긴절하니, 인삼만은 받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옛날에 노자를 주는 예가 있었습니다. 물품으로서가 아니고 이것으로 정을 표하는 것이니 감히 받기를 청합니다."
하니, 중국 사신이 말하기를,
"귀국이 잔파(殘破)됨이 이미 극심하고 침해로 인한 소요도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더구나 정이 어찌 물품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감히 받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가 만일 성천자(聖天子)께서 시종 구제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대인(大人)은 우리의 일을 위해 멀리 해외 이역(海外異域)으로 가시니 미안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 잘 갔다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니, 중국 사신이 말하기를,
"모두 황상의 지극한 덕이니, 내가 어찌 감히 수고로움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드디어 절하고 하직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천자의 명을 받아 해외에 선전하는 것은 국가의 경중(輕重)과 사기(事機)의 완급(緩急)이 달려 있는 것이다. 진실로 시례(詩禮)를 귀중히 여기는 충신(忠信)하고 독경(篤敬)한 사람이 아니면 재앙을 전가하고 욕을 사는 것을 면하기 어려우니, 어찌 중대하지 않겠는가. 지금 이종성(李宗城)의 【사신의 성명. 】 사람됨을 살펴보건대, 설사 전대(專對)하여 빼앗기 어려운 절개와 오랑캐 땅에서도 행할 수 있는 도가 있다 하더라도 중국을 가볍게 하고 오랑캐 나라에 업신여김을 당할 것이 깊이 염려되니 남조(南朝)에 인재가 없다는 비평이 불행하게도 사실이구나. 아, 수길(秀吉)은 성화(聖化) 밖의 한 추물(醜物)로서 그 임금을 축출하여 시해하고 간사한 계책으로 경내를 평정하였으니, 이미 천지와 신인(神人)에게 죄를 지었다. 그런데도 옛 죄악을 고치지 아니하고 전쟁을 일으켜 우리 생령(生靈)을 참살(斬殺)하고 우리 종묘 사직을 불태웠을 뿐만 아니라 역모(逆謀)와 패설(悖說)로 욕됨이 상국(上國)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므로 살아서 움직이는 자는 다 분원(憤怨)의 기운을 품어 그들과 한 하늘 아래에 함께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었다. 그런대 사의(邪議)가 멋대로 나오자 대의는 사라져 없어지고 빛나는 용절(龍節)251) 이 멀리 험한 바다 밖에 임하여서는 5 등의 관작252) 이 갑자기 흉적의 몸에 내려졌다. 당당한 중국이 도리어 저 간사한 적의 술책에 떨어져서 《춘추(春秋)》에서도 말하지 않은 바의 일을 행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40책 6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50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역사-편사(編史)
○癸酉/昧爽, 上出崇禮門外, 餞享封倭天使南下。 酒三行, 天使曰: "朝日已晩, 路亦百里, 只此相別。" 上曰: "昨者重違尊敎, 不能行禮, 今又如是, 不勝缺然。" 因命李光庭, 【禮房承旨也。】 呈禮單曰: "將薄物, 以表微忱耳。" 天使曰: "他物不敢受, 而今往海外, 切於藥用, 只受人(參)〔蔘〕 。" 上曰: "古有贐行之禮, 非爲物也。 情在乎此, 敢請。" 天使曰: "貴國殘破已極, 而侵擾必多。 況情不在物者乎? 玆不敢受。" 上曰: "小邦, 若非聖天子終始拯濟, 安能保有今日乎? 且大人爲小邦事, 遠征海外異域, 不勝未安。 好爲往來, 惟此之望。" 天使曰: "無非皇上至德, 俺豈敢言勞?" 遂拜而辭。
【史臣曰: "銜天子命, 宣傳海外者, 係國家之輕重, 關事機之緩急。 苟非敦說討禮, 忠信篤敬之人, 難乎免於嫁禍沾辱, 顧不重且大哉? 今觀李宗誠 【天使姓名。】 爲人, 設有專對難奪之節, 蠻貊可行之道, 深恐貽輕中國, 取侮夷邦, 南朝無人之譏, 不幸而近之矣。 嗚呼! 秀吉, 聖化外一醜物也。 放弑其主, 僞定一域, 已得罪於天地神人, 而不悛舊惡, 謀動干戈, 非徒魚肉我生靈, 灰燼我廟社, 逆謀悖說, 辱及上國, 含生蠢動者, 皆懷憤怨之氣, 恥與之俱生於一天之下。 邪議橫生, 大義滅絶, 煌煌龍節, 遠臨於鯨海之外, 五等之爵, 遄加於兇賊之身。 曾謂堂堂天朝, 反墮於彼賊譎詐中, 行《春秋》所不道之擧乎?"】
- 【태백산사고본】 40책 6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50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