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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64권, 선조 28년 6월 26일 정묘 3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접대 도감이 김가유의 품첩을 보고 정사가 내건 방문을 보고하다

접대 도감이 아뢰었다.

"소서비(小西飛)를 거느린 중국 통사 주원(朱元)김가유(金嘉猷)가 보낸 품첩(稟帖)을 가져왔는데 정사(正使)가 보고는 별로 분부하는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방문(榜文)을 써서 대문 밖 벽 위에다 게시했기에 그 방문을 베껴서 들입니다. 이것은 전후(前後) 보고의 요점을 뽑아 쓴 것 같은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방문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행장이 현소(玄蘇)에게 보낸 편지를 보건대, 행장이 17일에 복견신성(伏見新城)에 도착하여 관백에게 아뢰니, 관백이 크게 기뻐하며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 하며 재삼 행장의 큰 공을 칭찬하였고, 철병과 진영 소각 등의 일은 중국 사신의 분부대로 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관백은 중국 사신이 속히 바다를 건너오기를 학수 고대하면서 행장의 진영이 협소하므로 영접하는 장소를 부산에 정하도록 했다. 관백이 여안(如安)의 3년간에 걸친 고생을 재삼 말하면서 ‘여안은 안심해도 좋다.’고 했는데, 여안은 곧 소서비이다. 관백이 기뻐하는 마음은 다 진술할 수 없는데, 이 서면의 내용으로 중국 사신에게 아뢰어 속히 출발을 재촉하라고 하였다. ○행장이 미리 보낸 왜관(倭官)의 편지를 보건대, 그가 전일 수도에 도착한 것이 행장보다 5일 앞섰는데 관백은 크게 기뻐하면서 재삼 행장과 여안의 공로를 칭찬했고 ‘지금 내가 여안을 부러워하는 것은 그가 중국 북경(北京)을 본 것이다.’고 하였다. 또 사택지마수(寺澤志摩守)가 다시 차출되어 온 것은 중국 사신을 영접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현소가 소서비에게 보낸 편지를 보건대 ‘행장에게서 온 편지를 즉시 족하(足下)에게 부치니 보고 나서 즉시 중국 사신에게 아뢰어 속히 출발하라고 재촉하라. 관백이 「군병 철수와 진영 소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 했으니, 어찌 중국 조정의 명을 어기겠는가.’라고 하였다. 】


  • 【태백산사고본】 38책 64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18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接待都監啓曰: "領小西飛天朝通事朱元, 持來金嘉猷所送稟帖, 正使開見, 別無分付之言。 只書榜文, 揭示于大門外壁上, 故其榜文謄書以入。 似是前後之報, 撮略書出, 而亦未能的知矣。【榜文內大槪, 行長與玄蘇書曰: "行長, 十七日, 到伏見新城, 稟上關白。 關白大喜云, ‘何榮如之?’ 關白再二 [三]稱道行長之大功, 退兵燒房等事, 可任天使老爺分付。" 云云。 且關白, 甚要天使老爺快快過海, 行長營裏狹小, 因玆迎候地方, 定於釜山。 關白再三云: "如安三年之辛苦, 如安可安心云云。’ 如安, 卽小西飛也。 關白歡喜之心, 不能盡述, 以此書面之說話, 稟上于天使老爺, 可催起行云云。" 行長前差倭官書曰: "前日, 到國先行長五日, 關白大喜, 再三稱行長如安之功勞。 ‘今我羡如安, 着見天朝北京’ 云。 且寺澤志摩守, 再差來要接迎天使老爺。" 云。 玄蘇小西飛書曰: "行長來書, 卽付足下過看, 卽稟上天使老爺, 可快催起行。 關白曰: ‘退兵燒房, 自然。 豈違天朝之命’ 云。"】


    • 【태백산사고본】 38책 64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18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