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64권, 선조 28년 6월 11일 임자 12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정원에 지난 5월에 윤두수가 동궁을 배종하고 올린 차자

상이 정원에 전교하기를,

"동궁 일기(東宮日記)를 당초 봉하여 들이면 혹은 본 뒤에 도로 내려주거나 혹은 당분간 그대로 두었었다. 오늘 열어보니 한 봉함 중에 이 차자가 있었으나 당초에는 알 길이 없었으니 일이 매우 온당치 않게 되었다. 비변사에 내린다."

하였다. 차자는 지난해 5월에 윤두수가 좌의정으로 동궁을 배종(陪從)하고 홍주(洪州)로 내려가서 올린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적을 막는 데에 귀히 여기는 것은 먼저 크고 작은 형세를 정탐함에 있고 제승(制勝)의 방략은 완급을 잘 살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소적(小敵)을 맞이하여 급히 서두르면 기의(機宜)를 잃을까 두렵고, 대적(大敵)을 만나 완만하면 성공할 수 없는 법입니다.

흉적이 변경에 둔치고 있으면서 매양 화의로써 유도하는데 중국 장수는 군중(軍中)을 억제하니 다시 출전할 날이 없습니다. 군량은 먼 길의 수송에서 고갈되고 군사는 앉아 지키는 데에서 피로해지니, 의기(義氣)는 꺾이어 남음이 없고 국세는 사그라들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노중련(魯仲連)은 몇 번이나 바다에 투신하려 했고 원안(袁安)은 스스로 눈물만을 흘렸습니다. 부모의 질환이 매우 위독하니 약을 드릴 마음이 급했는데 천촉(川蜀)의 길이 아득하나165) 이제 멀리 구원병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북쪽 변방의 군대는 유독 출정할 수 없단 말입니까? 2, 3백 명 뽑아오는 것이 어찌 육진(六鎭)에 손상이 가겠습니까. 대개 북쪽 변방의 강경(强勁)한 기운을 받아 어릴 때부터 종군하였고, 일찍이 전진에 출입하는 노고를 겪어 오랑캐의 실정을 두루 압니다. 총병(總兵)이 전날 간곡히 타이름에 청정(淸正)이 두려워 하며 꺼린 것도 바로 이들입니다. 하물며 이제 여름 장마로 물이 크게 불어 북방의 방비는 조금 풀리게 되었고 계림(鷄林)의 군대는 외로워 남방의 급보가 답지하는 때이겠습니까. 크고 작은 형편이 이미 판가름되었고 완급의 형세를 쉽게 분변할 수 있습니다.

전날 소신이 영유(永柔)의 행궁에서 처음 이 뜻을 개진했는데, 이어서 신씨(申氏)라는 선비가 【신격(申格)을 말한다. 】 또한 이런 청을 드리었다는 말을 듣고는 신이 망령되이 확고한 자신감을 오래도록 갖게 되었습니다. 옛날 북제 세조(北齊世祖)가 낙양(洛陽)이 북주(北周)의 침략을 받아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구원병을 보내려고 하였는데, 돌궐(突厥)이 때를 틈타 북에서 쳐내려올까 염려하였습니다. 이때 단소(段韶)가 ‘북쪽 오랑캐가 변방을 침노하는 것은 부스럼 정도이지만 서쪽의 가까운 나라가 기회를 엿보는 것은 복심(腹心)의 병이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형세가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호종(扈從)의 쇠잔한 목숨으로 정신이 다 나갔으나 이 간절한 심정을 부둥켜 안고 감히 다시 호소합니다. 성명(聖明)은 재택(裁擇)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38책 64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0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군사-군정(軍政)

  • [註 165]
    천촉(川蜀)의 길이 아득하나 : 천촉은 지금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지방. 서기 755년 안녹산(安祿山)이 범양(范陽), 곧 지금의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쳐내려오자 당 현종(唐玄宗)이 수도 장안(長安)을 버리고 촉으로 파천했던 일로, 여기서는 선조 임금이 임진란으로 인해 서울을 버리고 의주로 몽진한 것을 가리킨다.

○上敎政院曰: "《東宮日記》, 當初封入, 或覽後還下, 或姑仍置。 今日開見, 則一封中有此箚子。 當初無由得知, 事甚未安。 下備邊司。"

箚子, 則前年五月, 尹斗壽以左議政, 陪東宮下去〈洪〉州所上者也。

其辭曰:

伏以禦敵所貴, 先探大小制勝之方, 尤重審察緩急。 當小而急, 尙恐失宜; 遇大而緩, 其何有濟? 兇賊留屯境上, 每以和議啗之, 天將戢飭軍中, 更無出戰之日。 糧匱於飛輓, 師疲於坐守, 義氣摧盡而無餘, 國勢暗鑠而莫爲。 魯連幾番蹈海, 袁安自然流涕。 父母疾殆急, 有進藥之心, 川蜀路逈, 今見遠救之兵, 而我北邊之軍, 獨不可以出征歟? 二三百之抄, 亦何有損於六鎭乎? 蓋稟北鄙强勁之氣, 結髮從(成)〔戎〕 , 曾嘗戰陣出入之勞, (編)〔徧〕情。 總兵諄復於前時, 賊畏憚者, 在此。 況今夏潦方漲, 北備少弛, 鷄林軍孤, 南報沓至? 大小之形已判, 緩急之勢易辨。 前日小臣於永柔行宮, 始陳此意, 繼聞有申姓士人, 【謂申格也。】 亦進此請云。 臣妄自信久而不(拾)〔捨〕 。 昔主, 以洛南師危急, 欲爲遣救, 又慮突厥乘時作亂, 段韶謂曰: "北虜侵邊, 事等疥癬, 西隣闚逼, 腹心之病。" 今之形勢, 何以異此? 羈的餘息, 精神都喪, 抱此耿耿, 敢再籲呼, 聖明裁擇焉。


  • 【태백산사고본】 38책 64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0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