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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62권, 선조 28년 4월 11일 계축 3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대신들과 명사의 접대에 대하여 논의하다

상이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였는데, 좌의정 김응남, 우의정 정탁, 판윤 김명원, 이조 판서 이항복, 병조 참판 윤선각, 승지 박승종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만약 명사가 오랫동안 머무르게 된다면 어찌 지공할 수 있겠는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모두 전일에 사(司)129) 사신과 설(薛)130) 사신이 데리고 왔던 사람들입니다. 만약 우리 나라의 접대가 조금이라도 지난 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성을 낼 것이니 더욱 접대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점은 나도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내려간다면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경성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당인(唐人)의 말[馬]은 하루에 한 말씩 먹는다고 하는데 쌀과 콩을 지탱할 수 있겠는가?"

하니, 김명원이 아뢰기를,

"결코 지탱할 만한 형편이 못 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비록 명사라고는 하나 실상은 봉왜 명사(封倭明使)이다. 접대하기를 명사와 똑같이 하는 것은 매우 온당치 않다."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봉왜(封倭)란 두 글자는 신하의 마음에 몹시 원통하고 분합니다. 그러나 황제의 명을 가지고 온 사신이니 소홀하게 대접할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평수길(平秀吉)에게 내린 봉서(封書)에 이르기를 ‘조선이 그대를 위하여 대신 청했다.’ 하였다. 이와 같은 말을 듣고서 세상에 살아갈 수 있겠는가. 지금 비록 왕을 봉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뒷일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상이 윤근수에게 이르기를,

"석 상서가 직접 윤 배신에게 유고하여 적전으로 들어가게 했다는데 그러한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소신은 전혀 듣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임춘발(林春發)심장(沈將)을 보니 ‘윤 배신을 데리고 가려 한다.’고 하였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필시 심이 석 상서에게 청하여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군신(群臣)의 의논은 밀양(密陽)까지만 가야 한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밀양뿐만 아니라 적진이라도 신이 어찌 감히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경의 뜻은 참으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군신의 의논은 ‘유격과 밀양까지만 보내기로 약속하고 적진에 보내서는 안 된다.’ 하니, 이같이 약속하는 것이 무방하겠는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소신이 명을 받고 상국(上國)에 가서 보고 들은 일이 비록 정리(情理)에 가깝지 않은 말이라도 아뢰지 않을 수 없고 또 외지에 있으면서 입계하는 것은 번잡할 듯하므로 지금 면대를 인하여 소지(小紙)에 기록한 것을 올립니다."

【소지는 다음과 같다. "섭정국(葉靖國)은 손 시랑(孫侍郞) 막하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루는 유원관(柔遠館)으로 신을 찾아와 은밀히 하는 말이 ‘어떤 사람이 「조선은 이미 군량이 없다. 그리고 크게 쇠잔하여 구호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이 시기를 이용하여 취하는 것이 좋겠다. 」고 여러 차례 묘당(廟堂)에 건백(建白)하였다. 그리고 이여송(李如松)은 진수(鎭守)하기 위하여 조선에 나갈 것을 요구했고, 이(李)의 동생 여백(如栢)도 나가기를 요구했다. 그러니 당신 나라 문서에 자력(自力)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상황을 말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허망하고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여겼습니다. 북경에 도착하여 통보(通報)를 보니 통판(通判) 지응서(支應瑞)의 제본(題本)이 있었다 하였는데 비록 병과(兵科)의 탄핵으로 인하여 묵살되기는 하였으나 매우 괴이한 일입니다.". 】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은 나도 들은 적이 있다."

하니, 김응남(金應南)이 이르기를,

"윤근수가 올린 소지를 궁중에 두고 내리지 않는다면 사관이 볼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은 내가 들은 적이 있으니 사관이 보아도 된다. 중국인인들 어찌 악인이 없겠는가."

하고, 또 이르기를,

"비록 밀양까지만 가더라도 유격이 적영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 어쩌겠는가. 그러나 여러 사람의 의논이 이와 같으니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정탁이 아뢰기를,

"소신이 품달할 일이 있습니다. 황정욱은 죄악이 참으로 중대하여 의논할 여지가 없는데 상께서는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덕이 천지와 같이 지극하십니다. 주관(周官) 팔의(八議)에는 훈귀(勳貴)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정욱이 훈귀이니 혹 너그럽게 논의할 소지가 있습니다. 더구나 정욱은 늙고 병들어 거의 죽을 지경에 있는데 지금 형벌을 받는다면 반드시 단번에 죽을 것입니다. 대간의 논핵이 추상과 같고 부월(斧鉞)과 같으니 참으로 정직하고 분명한 논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욱은 불행하게 적중(賊中)에 빠져서 일을 잘 처신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죄가 없지 않으나 정리(情理)에 있어서는 또한 그렇지 않은 점도 있으니 죽인다면 원통함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황혁은 벌써 여섯 차례나 형장을 받았으니 만약 한 차례 더 받는다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한두 차례 후에는 반드시 은명(恩命)이 있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죄도 본정(本情)이 아닌 듯한데 죽이기까지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점이 없겠습니까. 대신에게 명하여 다시 의논하게 하는 것이 무방할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정욱과 혁 등의 일은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알 바 아니고 삼성(三省)131) 이 해야 할 일이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유격은 내일 일찍 가는가? 만약 간다면 대신이 오늘 찾아가서 보고 우리의 입장을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응남이 대답하기를,

"오늘 미리 결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오늘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밀양으로 들여보내는 일은 무방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6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7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전쟁(戰爭) / 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사법-탄핵(彈劾)

    [註 129] 사(司) : 사헌(司憲). [註 130] 설(薛) : 설정총(薛廷寵). [註 131] 삼성(三省) : 의정부·사헌부·의금부.

○上引見備邊司堂上, 左議政金應南、右議政鄭琢、判尹金命元、吏曹判書李恒福、兵曹參判尹先覺、承旨朴承宗入侍。 上曰: "華使若久留, 則何能支對乎?" 恒福曰: "所率之人, 皆前司天使薛天使率來之人。 我國接待, 若小異於前, 則彼必生怒, 待之尤難矣。" 上曰: "此則予亦料之。 若下去, 則當直下釜山, 而留連京城者, 何意乎? 唐人之馬, 日食一斗云, 米、太可支乎?" 金命元曰: "決無可支之勢矣。" 上曰: "雖云天使, 實乃封天使也。 接待之事, 一如天使, 甚爲未便。" 金應南曰: "封二字, 在臣下心, 極爲痛憤。 然皇命使臣, 不可慢忽待之。" 上曰: "平秀吉封書云, ‘朝鮮爲爾代請矣。’ 得如此之名, 而可以立於天地間乎? 今雖封王, 必有後尾。" 上謂尹根壽曰: "石尙書面諭尹陪臣, 使之入去云, 然耶?" 根壽曰: "小臣專不聞知。 但林春發沈將則曰: ‘尹陪臣欲率去。’ 云矣。" 上曰: "然則沈必請於石尙書而爲之矣。 群臣之議以爲, 只往密陽云, 卿意如何?" 根壽曰: "非特密陽, 雖賊營, 臣何敢辭之?" 上曰: "卿意則固然矣, 群議以爲, 與遊擊約曰: ‘只送密陽, 而不可送賊營。’ 如是相約無妨乎?" 根壽曰: "小臣奉使上國, 一路聞見之事, 雖不近情理之言, 而不可不達。 且在外入啓, 似涉於煩, 故今因面對, 呈上小紙之錄矣。"【小紙曰: ‘葉靖國, 在孫侍郞幕下。 一日, 來見臣於(惟遠館) 〔柔遠館〕 , 密語曰: 「有人說, 朝鮮, 旣稱無糧, 殘破已甚, 將難救護。 可因此時取之。」, 屢白廟堂。 且李如松, 要作鎭守, 出去朝鮮, 李之弟如栢, 亦要出去。 爾國文書, 不須每言不能自力之狀。’ 臣聞此語, 以爲誕妄。 及到北京, 得見通報, 則有通判支應瑞題本, 雖因兵科之參, 抄出寢之, 而殊爲可怪。"】 上曰: "此言, 予曾聞之。" 金應南曰: "尹根壽所呈小紙, 若留中不下, 則史官不得見。" 上曰: "此言, 予曾聞之, 史官可以見之。 中原, 豈無惡人乎?" 上曰: "雖只往密陽, 遊擊以爲不可不入, 則如之何哉? 然群議如此, 則議爲之。" 鄭琢啓曰: "小臣有所達之事矣。 黃廷彧罪惡固重, 不容議爲, 而自上天地好生之德至矣。 《周官》(入)〔八〕 議, 勳貴亦在其中, 廷彧勳貴, 容有可議者。 況廷彧, 老病垂死, 今若受刑, 則一次必死矣。 臺諫之論, 秋霜也, 斧鉞也, 固是直截之論也。 然, 廷彧不幸陷於賊中, 不能善處, 罪固有之, 而其情理亦有不然者矣, 殺之得無冤乎? 且黃赫, 已受六次, 若加一次, 則必死無疑矣。 小臣之意, 一、二次之後, 必有恩命, 故企待而已。 此亦似非本情, 至於殺之則無乃過乎? 命大臣更議, 恐或無妨。" 上曰: "廷彧等事, 予亦以爲然。 但非予所知, 三省當爲之。" 上曰: "遊擊, 明日早往乎? 若往, 則今日大臣往見, 決言可也。" 應南曰: "今日, 不可不早定。" 上曰: "今日定之可也。 密陽入送事, 則無妨矣。"


  • 【태백산사고본】 37책 6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7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전쟁(戰爭) / 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