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총부 도사 김의직이 왜영으로부터 돌아와 서계를 올리다
장 도사(章都司) 【장응룡(章應龍). 】 와 신 도사(愼都司) 【신무룡(愼懋龍). 】 의 접반관 도총부 도사 김의직(金義直)이 왜영(倭營)으로부터 서울로 돌아왔다. 일로의 사정과 왜영에서 문답한 것을 서계(書啓)했는데, 그 대강은 이러했다.
"지난 2월 28일 경주에 도착하였는데, 두 도사가 신을 경주에 머물러 있게 하였습니다. 3월 2일 한어 통사(漢語通事)인 이희인(李希仁)과 왜어 통사(倭語通事) 황경호(黃慶豪) 등 세 사람과 병사(兵使)의 군관 한 사람을 거느리고 떠나 전탄(箭灘) 가에 이르니, 청정(淸正)이 부장(副將) 희팔(喜八)과 한어 통사 강종인(康宗麟)을 보내어 말 19필과 왜병 50여 명을 이끌고 먼저 여울가에 도착하여 장막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술 세 순배를 나눈 뒤 왜영(倭營)으로 들어가니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희팔이 그의 집으로 들어가기를 청하여 들어갔는데 밤 일경이 지나도록 아무도 와서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밤중이 되자 가등청정이 왜승(倭僧)을 보냈는데, 와서 말하기를 ‘청정이 사냥을 나갔다가 막 돌아왔는데 매우 피곤해 있다. 상관(上官)도 먼 길을 오느라 고초가 많았을 것이니 내일 서로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 했습니다.
이튿날 당관(唐官)이 청정의 하처로 가서 예를 마치자 청정은 ‘오시느라 수고하였다. 또한 귀한 물건을 보내 주니 황공스럽기 그지없다.’ 하고는 곧바로 일어나 침방(寢房)으로 들어갔습니다. 당관이 그 뜻을 몰라 물으려고 하는데 청정이 일진을 시켜서 청하기를 ‘면의(面議)할 일이 있으니, 내방(內房)으로 들라.’ 하여 당관이 그 방으로 들어가자, 청정은 안석에 기대앉아 ‘심 유격(沈遊擊)은 화친을 어떻게 하려 하는가?’ 하고 물었는데 대답하기를 ‘지금 봉(封)하는 것을 의논하고 있으니 사신이 나올 것이다.’ 하였습니다. 청정이 또 묻기를 ‘소서비(小西飛)는 일개 왜놈인데 상관(上官)이라고 속였으므로 유격이 중국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서비(西飛)가 무슨 말을 하던가? 화친은 어떤 일을 주(主)로 삼는 것인가?’ 하였습니다. 당관이 글로 써 보이기를 ‘손 노야(孫老耶)118) 가 새로 요동에 도착하여 그전부터 선봉이 정직(正直)하여 다른 장수와는 다르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 두 도사(都司)를 보내어 채단(綵段)을 가져다 상으로 주는 것이다. 심 유격과 소서비는 북경에 있고, 중국 조정에서는 이미 관백(關白)을 봉하여 왕(王)으로 삼을 것을 의논하였을 것이다. 요동에서 북경은 2천 리 길이라 사신이 오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니 청정이 묻기를 ‘소서비와 심 유격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므로 ‘지금 북경에 있다.’고 하니 ‘어째 놓아 돌려보내지 않는가?’ 하였습니다. 다시 ‘지금 한창 봉하는 일을 의논하고 있기 때문에 북경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고 대답하니, 청정이 말하기를, ‘평행장(平行長)과 심 유격의 일은 모두 간사한 거짓이다. 손 시랑(孫侍郞)은 어째서 황제에게 아뢰어 알게 하지 않는가?’ 하므로 답하기를 ‘지금 우리가 이곳에 와서 선봉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거짓임을 알았는데 시랑이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당관들은 그의 말이 많을 것을 싫어해 청정에게 ‘날도 이미 저물었고 심기도 불평하니 물러가겠다.’ 하였으나, 청정은 들었으면서도 못 들은 체하고 글로 써 보이기를 ‘대명(大明)은 조선을 일본에 부속시킬 수 없느냐?’고 하였습니다. 당관들은 발끈하여 얼굴빛을 변하여 일어나 자리를 파하고 하처로 돌아왔습니다. 청정은 희팔을 시켜 다섯 가지 일을 제시하면서 ‘행장이 평양에서 패전하자 관백이 죽이려 했는데, 행장은 「내가 이 다섯 가지 일을 맡아 성공시키겠다. 」 하였으므로 관백이 살려 주고 그의 주선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행장은 이 다섯 가지 일은 도모하지 않고 피차가 서로 속이고 있다.’ 하였는데, 그 다섯 가지 일은, 첫째 대명(大明)과 일본(日本)은 혼인을 할 것, 둘째 조선의 4개 도(道)를 일본에 부속시킬 것, 세째 조선 왕자를 일본에 볼모로 보낼 것, 네째 조선의 대관 노인(大官老人)을 일본에 볼모로 보낼 것, 다섯째 조선의 대관 가로(大官家老)는 화의를 함께 서약할 것 등이었습니다.
5일날 당관들이 돌아왔는데, 청정은 왜승 일진과 그의 부장 희팔에게 중로(中路)에서 전별케 했습니다. 청정이 손 시랑의 글에 답한 것119) 은 베껴오지 못한 것이 많고 또 해석하지 못하였으므로 서계하지 못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61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68면
- 【분류】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
○章都司、 【應龍。】 愼都司 【懋龍。】 接伴官都摠府都事金義直, 自倭營入京, 書啓一路事情及倭營答問。 其略曰:
去二月二十八日, 到慶州, 兩都司留臣於慶州。 三月初二日, 率漢通事李希仁、倭通事黃慶豪等三人、兵使軍官一人, 發行到箭灘邊, 則淸正差副將喜八及唐通事康宗麟, 率馬十九匹, 率倭五十餘名, 先到岸上, 打起小帳。 酒三行後, 進入倭營, 日已暮矣。 喜八請入其家, 過夜一更, 無人來問。 至夜半, 淸正使僧倭 一眞來曰: "淸正出獵始回, 氣甚不平。 上官涉遠來臨, 想多辛苦, 明日可相見。" 翌日, 唐官往淸正下處, 禮畢, 淸正曰: "旣勞來臨, 且送貴物, 惶恐惶恐。" 卽起入寢房。 唐官莫知其意, 將欲問之, 淸正使一眞來請曰: "有面議事, 請入內房。" 唐官入其房, 則淸正(隱)〔憑〕 几問曰: "沈遊擊和親, 何以爲之?" 答曰: "方爲議封, 天使將爲出來。" 淸正又問曰: "小西飛一介奴倭, 假稱上官, 遊擊帶去 中原。 西飛說何言乎? 和親以何事爲主乎?" 唐官書示曰: "孫老爺新到遼東, 久聞先鋒正直, 比他將不同, 故差我二都司, 持綵叚來賞矣。 沈遊擊與小西飛在北京, 天朝已議封關白爲王, 而遼東去北京二千里, 天使之行, 未能的知。" 淸正曰: "小西飛、沈遊擊, 今在何處?" 曰: "時在北京。" 曰: "何不放回?" 曰: "今方議封, 故留在北京。" 淸正曰: "平行長、沈遊擊之事, 皆是奸僞。 孫侍郞何不奏知皇帝耶?" 曰: "今我來此, 聽先鋒之言, 始知其僞。 侍郞何以知之?" 唐官厭其多言, 言于淸正曰: "日已曛黑, 氣且不平, 請退。" 淸正聽而不聞, 因書示曰: "大明、朝鮮, 不可屬于日本乎?" 唐官勃然變色而起, 罷回下處。 淸正使喜八, 書示五件事曰: "行長見敗平壤, 關白欲殺之, 行長曰: ‘我當成此五事’, 故關白饒之, 以待其斡事。 今行長不圖此五事, 彼此相欺。" 其五事, 一曰, 大明與日本婚姻; 二曰, 朝鮮四箇道, 屬于日本; 三曰, 朝鮮王子, 質于日本; 四曰, 朝鮮大官老人, 入質日本; 五曰, 同大官家老, 共誓議和等事也。 初五日, 唐官回還, 淸正使僧倭 一眞, 與其副將喜八, 餞別於中路。 淸正所答孫侍郞書, 文多不載, 且未解見, 故不得書啓矣。
- 【태백산사고본】 37책 61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68면
- 【분류】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