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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60권, 선조 28년 2월 29일 임신 6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가등청정을 암살하는 계책에 대한 경상 좌병사 고언백의 치계와 비변사의 회계

경상 좌병사 고언백(高彦伯)이 치계하기를,

"신이 이달 20일에 사졸(士卒)들과 더불어 무술을 겨루고 있을 때 항왜(降倭) 주질지(酒叱只)·학사이(鶴沙伊) 등이 신의 좌석 앞으로 돌진하여 좌우를 물리치고 은밀히 말하기를 ‘우리들은 이미 본국을 등졌으니, 조선 사람이 된 것이다. 이미 조선 사람이 되어 조선에서 옷도 입고 밥도 먹으니 무슨 일을 해야 하겠는가. 우리들은 마땅히 적의 괴수를 베어서 우리들의 뜻을 보이려고 한다. 우리들이 임랑장(林郞將)의 군관(軍官)으로 있을 때 청정(淸正)의 출입하는 상태를 보니, 청정은 매번 우리 장군과 만날 때는 거느리는 군사가 10여 인에 불과하였고, 매번 단기(單騎)로 와서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해가 저물면 돌아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또 그 군졸과 더불어 사냥할 때에도 단기로 뒤를 따라가 혼자 높은 봉우리에 서 있었는데 이런 일도 자주 있었다. 이때에 내응하는 사람과 살해를 도모한다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울 터인데, 사또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기에, 신이 거짓으로 답하기를 ‘이처럼 중대한 일을 어찌 쉽게 할 수 있겠느냐. 단, 명(明)나라가 이미 강화를 허락해서 중국 사신이 머지 않아 나올 것인데, 우리 조선이 명나라의 속국으로서 어찌 그 사이에 어길 수 있겠느냐. 또 너희들은 투항해 온 지 오래지 않은데, 입 밖에 이런 말을 내는 것은 반드시 나를 시험해 보려는 허위이지, 어찌 심중에 있는 말을 한 것이겠느냐. 또 내응할 자는 누구냐?’ 하였더니, 항왜들은 답하기를 ‘사또의 말씀이 이러하니, 안 하면 그만이거니와, 한다면 우리들과 같이 온 왜인 구질기(仇叱己)의 종형인 고로비(古老非)라는 자가 지금 청정의 가장 가까운 군관으로 있는데, 그 사람 역시 청정과 틈이 있어 매번 그 아우와 더불어 공모하여 투항해 오려고 하였는데, 지금은 뒤떨어져서 현재 청정의 막하에 있다. 우리들이 그 왜인과 통사(通事) 금고은손(金古隱孫)으로 하여금 몰래 서생포(西生浦)에 들어가서 그 내응하는 왜인과 상의하여 혈서(血誓)를 한다면 도모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이 기회를 잃으면 3월 20일 사이에 응고사마(應古沙馬)가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서 처음처럼 다시 침범할 것인데 어떻게 지탱할 수 있겠는가. 또 청정은 여러 적 중에서 원망이 집중된 대상이며, 매번 관백에게 군사를 더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오도록 청하는 자도 역시 청정이다. 청정을 죽이지 않으면 행장과 강화를 정한다 하더라도 관백은 반드시 이 적의 말을 따를 것이니, 어찌 쉽게 철수해 가겠는가. 사또가 만일 불가한 일이라고 여긴다면 우리가 처치하도록 허락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또 명나라의 말을 가지고 그들의 심정을 떠보고 또 도모하려는 방법을 물었더니, 답하기를 ‘우리들 10여 인이 다 조총을 가지고 서생(西生)·임랑(林郞) 등처의 험한 지대에 숨어 있고, 그 다음 조선의 정병을 전후 도로의 곁에 매복시켜 놓은 다음, 날이 저물어 청정임랑에서 돌아갈 때에 먼저 조총을 동시에 발사하고 사격에 능한 자가 좌우에서 쏘아 댄다면 청정이 아무리 용감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우리들의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그 내응자들은 서생포로 달려가서 그곳의 군중을 경동시키기를 「우리 장수는 이미 피살되고 조선의 대군이 포위를 하였으니, 우리들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 하고, 밤을 틈타 진중에 마구 불을 지르면 군중은 반드시 독촉해서 배를 탈 것이니, 그 다음날 조선의 좌우 수군과 더불어 식량이 조달되는 길을 끊으면 여러 진영에서 군사를 철수하는 것을 당장에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청정으로 하여금 이 땅에 편안히 있게 하면 비록 10년이 되어도 군사를 철수해 돌아갈 기약이 없을 것이다. 또 전일 우도 거제(巨濟)의 싸움에서 조선의 수군이 만일 물러서지 않았더라면 여러 진영은 배를 타고 돌아가려 하였는데, 끝내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그것이 한이다. 또 3월 3일에 청정이 반드시 임랑에 갈 것이니, 그때가 거사할 만한 기회다.’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만일 일이 성취되면 마땅히 전하에게 주달해서 너희에게 높은 벼슬을 제수하여 자자손손이 영화와 복록을 길이 누리게 할 것인데, 모든 말이 어찌 너희들의 진정이겠느냐.’ 하고, 또 거짓으로 ‘조선은 본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며 이익될 방향을 타일렀더니, 그 항왜들은 스스로 피를 내어 혈서로 맹세하는 글을 써서 바쳤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를 비변사에 내렸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기회는 잠깐 동안에 변하는 것이니 천리 밖에서 계책을 결정하는 것은 병가(兵家)의 어려운 바입니다. 이 같은 일은 다만 주장(主將)이 기회에 임하여 처치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인데, 하물며 3월 3일은 단지 며칠 남아 있지 않은데이겠습니까. 지금 비록 지시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더구나 도모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의 노기만을 격발시키게 된다면, 우도의 적이 이 소식을 듣고 또한 ‘중국은 실제로 강화할 뜻이 없다.’ 하고서, 반드시 이 일을 기화로 기망(欺罔)을 부리고 허점을 틈타 도모하고자 하여 다시 서로 경동(驚動)하면 이 화창한 시절에 화를 부를 걱정이 없지 않으니, 매우 염려됩니다. 그러나 도모할 만한 형세가 있음을 분명히 알고서도 잔뜩 겁을 내어 기회가 되어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또한 변을 대처함에 방법을 따지지 않는 처사가 아닙니다. 그 일을 꼭 하려고 한다면, 항왜를 후대하여 심복으로 삼은 다음 그들로 하여금 적중을 드나들면서 그들 중에서 내응하려고 하는 자를 몰래 결속하여, 광적(狂賊)이 몸을 일으켜 혼자 나가는 틈을 타서 즉각 제거해 버리게 하되, 변이 그들 내부에서 일어난 것 같이 하여 우리 나라를 의심치 않게 한다면, 성사를 하건 성사를 못하건 모두가 흔단을 일으키는 데 큰 관계가 없을 것이고, 복심(腹心)이 안에서 열어젖히고 지당(支黨)이 밖에서 이끌어내는 등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한다면 장차 그들 소굴이 안정될 수 없어 독을 부리는 기세가 조금은 감소될 것입니다.

이것이 비록 기이한 꾀이나, 우리 나라 사수(射手)는 그 일을 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 항왜가 단독으로 도모하기 어려워서 강요해 마지않는다면 마땅히 왜적의 옷으로 위장하고 항왜에 섞여서 어둠을 틈타 잠복하여, 적으로 하여금 우리 나라 사람임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책입니다. 대개 적국 사람을 이용해서 적국을 도모하는 것은 병가의 승산(勝算)입니다. 우리 나라는 꼭 왜노(倭奴)가 사휼(詐譎)함을 의심하여 그들과 몰래 약속을 해서 우리의 쓰임이 되게 하지 못하니, 이것 또한 대단히 졸렬한 처사입니다.

지금 이 투항해 온 왜적은 이미 졸개가 아니고 또 계책을 내어서 스스로 힘쓸 뜻을 보이니, 그들을 원만히 대접하여 의구심을 모두 털어 버리고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만들고, 성사한 뒤에는 작상(爵賞)을 후하게 주겠다고 약속한다면 소문을 듣고 부러워서 연달아 나오는 자가 필시 한두 사람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은 움직이는 데서 생기는 것이니, 움직이는 일을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멀리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자고로 그러한 것이니, 다시 사세를 살펴 참작 선처하여, 어설프게 해서 그릇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비밀히 행이(行移)하고, 또 별도로 선전관 한 사람을 파견하여 고언백이 있는 곳에 달려가서 적의 정세를 세밀히 탐지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답하기를,

"나의 뜻은 그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긴다. 그리하면 국사가 반드시 패할 것이니, 깊이 생각해서 잘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52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慶尙左兵使高彦伯馳啓曰: "臣於今月二十日, 與士卒較兵之際, 降 酒叱只鶴沙伊等, 突進于臣之座前, 辟左右, 潛言曰: ‘我等旣背本國, 則爲朝鮮之人也。 旣爲朝鮮之人, 則衣食於朝鮮, 而所爲者何事乎? 我等當圖賊魁, 欲效我等之志矣。 我等爲林郞將軍官, 見淸正出入之狀, 則淸正每於吾將期會時, 所率不過十餘人, 每以單騎來會, 飮酒(樂酣)〔酣樂〕 , 日暮馳還者屢矣。 又與其卒畋獵時, 則單騎隨後, 獨立高峯者, 亦有素矣。 當此時, 與內應人圖之, 則易如反掌, 使道之意, 如何?’ 臣佯答曰: ‘如此機關重事, 豈可容易爲之? 但大明曾已許和, 天使未久當來, 我朝鮮, 以大明屬國, 豈可違忤於其間哉? 且爾等投來未久, 口發此言, 必欲驗我虛僞, 豈發中情? 且內應者誰?’ 等答曰: ‘使道之言如是, 不爲則已, 爲之則我等同來, 仇叱已從兄古老非, 方爲淸正軍官。 最近者, 其人亦與淸正有隙, 每與其弟, 同謀欲來, 而今則落後, 時在淸正幕下。 我等使其及通事金古隱孫, 潛入西生, 與其內應相議, 取血成誓, 則圖之甚易。 失此機關, 則三月二十日間, 其應古沙馬, 領兵渡海, 復犯如初, 則何可支也? 且淸正, 諸賊中衆怨所叢。 每請於關白, 加兵渡海者, 亦淸正也。 不圖淸正, 則雖定和於行長, 關白必從此賊之言, 豈輕易撤去也? 使道若以爲不可, 則只望許我處置耳。 臣抑以大明之言, 以釣其情, 又問圖之之術, 則答曰: ‘我等十餘人, 皆持鳥銃, 隱伏于西生林郞等處阻阨地, 次設朝鮮精銳於前後路傍, 期以日暮, 淸正林郞還歸時, 先以鳥銃俱發, 善射左右翼而擊之, 則淸正雖曰勇敢, 必隕首於我等之手矣。 然後, 其內應者, 則奔往西生, 驚惑其衆曰: 「吾將已爲被殺。 朝鮮大軍, 亦爲圍抱, 我等何歸?」 乘夜橫生(陳)〔陣〕 中放火, 則諸衆必督乘舟。 其明日, 與朝鮮左右舟師, 佯截於糧路, 則諸鎭撤兵, 可立而待。 不然, 使淸正晏然於此土, 則雖久十年, 返兵無期。 且前日右道巨濟之役, 若不退兵, 則諸鎭皆以乘舟欲回, 終不果, 是可恨也。 又於三月初三日, 淸正必往林郞, 其時可爲耳。’ 臣答曰: ‘若事成則當奏于殿下, 當授汝高官, 子子孫孫, 永享榮祿, 而凡諸話言, 豈汝中情?’ 又佯抑以朝鮮, 本不負約之言, 一以諭之以利, 則等自觸出血, 成誓書以納矣。" 上下備邊司。 備邊司回啓曰: "機會變於斯須, 而決策於千里之外, 兵家所難。 如此之事, 只在主將臨機處置。 況三月三日, 只隔數日, 今雖指授, 必已無及。 又況圖之不成, 激發其哮怒之勢, 則右道之賊聞之, 亦以爲天朝實無講和之意, 必以此事欺誑, 而欲乘虛圖之, 更相驚動, 則當此風汛時月, 不無速禍之患, 甚爲可慮。 然明知其有可圖之勢, 而畏首畏尾, 臨機不發, 亦非運變無方之道。 無已則厚待降, 結以心腹, 使之出入賊中, 陰結其類之欲爲內應者, 乘狂賊挺身獨出之際, 登時剪除, 似若變自其類而起, 而不疑我國, 則成與不成, 皆無大關於起釁, 而腹心內披, 支黨外携, 將不得安其窟穴, 肆毒之勢少息。 此雖奇謀, 而我國射手, 似不可得行。 萬一降難於獨圖, 强要不已, 則當扮作衣, 混於降, 乘昏潛伏, 勿令賊知其爲我人, 亦一策也。 大抵因敵國之人, 以圖敵國, 此兵家之勝算也。 我國必疑倭奴譎詐, 而不能潛布約束, 使爲我用, 此亦大拙也。 今此來降之, 旣非卒, 而且有獻策自效之意, 十分款待, 坦去疑阻之心, 而樂於致死, 成事之後, 約以重加爵賞, 則聞風歆羡, 而相繼出來者, 必不至一二人, 而吉凶悔吝, 生於動, 動不可不愼也。 遙度之難, 自古而然。 更觀事勢, 參酌善處, 母致踈虞事, 秘密行移。 且別遣宣傳官一人, 馳往高彦伯處, 細探賊情, 何如?" 上答曰: "予意, 此事決不可爲。 爲則國事必敗, 不可不深思而善處之。"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52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