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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60권, 선조 28년 2월 11일 갑인 3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진 유격을 접견하여 적의 형세 등에 대하여 문답하다

상이 남별궁(南別宮)에 나아가 진 유격을 만나 보았다.

사신은 논한다. 이 별궁은 소공주(小公主)의 집이었는데 그 뒤에 국적(國籍)으로 환속되었다. 계미 연간에 궁실을 크게 지어 사치를 극도로 하여 법도 없이 참월하였다. 이 집은 왕자 의안군(義安君)에게 하사하였다. 그 당시 이 집과 서로 백중을 겨룰 만한 것이 5∼6구(區)나 되어 생민의 고혈이 여기에서 다한 것이니, 국조(國祚)가 전복된 것은 당연하다. 병화가 스쳐간 뒤에 오직 이 궁실만이 우람하게 남아 있어 손님을 맞이하고 조회하는 장소로 쓰고 있다. 아, 하늘은 필시 우리 성상으로 하여금 오늘날에 참회하고 경계하도록 한 것이리라.

왕세자는 대궐문 밖의 길에서 배송하였고, 유격(遊擊) 진금홍(陳金鴻)과 수비(守備) 낙일룡(駱一龍)은 문 밖에 나와서 맞이하였다. 좌정한 다음, 상이 말하기를,

"대인이 중도에 몸이 편치 못하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염려하였는데, 지금은 어떠하오이까?"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지금은 이미 다 나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대인이 우리 나라를 위하여 갔다 오느라 수고하였는데, 연로가 탕패하여 대접이 부실하였으므로 매우 미안하외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저는 평소 담박함을 좋아하는데 어찌 괴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한편으로는 귀국을 위하고 한편으로는 조정의 명령을 봉행한 것인데 이처럼 위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였다. 상이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대인이 적의 진영을 가 보니, 적의 형세가 어떠하더이까?"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행장이 극히 공순하고 다른 뜻이 없었으니, 천사(天使)가 만일 나온다면 반드시 갈 것입니다. 그들의 군사 1만 5천 명을 36척의 배에 실어 들여보내는 것을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반드시 사신이 속히 나와서 저 적이 빨리 물러가도록 한다면 매우 좋겠습니다. 저 적은 귀국에게 불공대천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속히 들여보낸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일은 마치 한판의 바둑과 같으니, 반드시 판을 끝내는 것이 좋습니다. 4∼5년 뒤의 일은 저도 역시 모릅니다. 귀국은 이 기회에 농사를 권장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방수의 준비를 하는 것도 불가할 것이 없습니다. 그 전에는 우려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휘(指揮) 김문봉(金文鳳)이 지금 왜적의 진영에 있는데 나오면 반드시 전하는 말이 있을 것이니, 귀국은 속히 주문(奏聞)하십시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대인께서는 적의 실정을 병부에 보고하겠소이까? 그 말을 들어봅시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적은 반드시 갈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심 대인(沈大人)이 사신보다 먼저 나온다 하는데 대인이 병부에 보고한 뒤에 나오는 것이오이까?"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심유경(沈淮敬)은 이미 광녕(廣寧)에 이르렀습니다. 1∼2일 안에 반드시 먼저 병부에 보고할 것이 있어서 칙서를 심유경에게 줄 것이니, 이는 바로 왜적의 진영을 불태우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반드시 국왕에게 보인 후에 할 것입니다. 다시 다른 우려할 일은 없으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선 기미책(羈縻策)을 써서 보내놓고 서서히 후일의 도모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왜적이 봉왕을 요구한 뒤에 다시 무엇을 요구하는 일이 없겠소이까?"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적의 심술은 헤아리기 어려우니, 다시 요구하는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신이 나오면 철수해 간 뒤에 반드시 조정에 들어와서 사은해야 하니, 한 번 오고 두 번 오고 하면 조공을 허락하지 않겠습니까. 조공은 자연히 허락할 것입니다. 조공을 바치는 길은 반드시 영파부(寧波府)를 경유할 것입니다. 황명으로 차임된 정사(正使)는 이종성(李宗城)인데 임회후(臨淮侯) 이언공(李彦恭)의 아들로 남보다 담략(膽略)이 뛰어나고, 부사(副使)는 양방형(楊方亨)인데 손 시랑(孫侍郞)의 중군(中軍)으로서 역시 역량이 있으니 이 사람들이 나온다면 적은 반드시 물러갈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행장이 가면 청정도 가게 되오이까? 다시 흉계를 부리는 일이 없겠소이까?"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제가 왜적의 진영에 있을 때에는 청정의 일을 듣지 못하였고 도원수와 말할 때에 비로소 흉패한 말을 하였다는 것을 들었는데, 6월 사이에 군사를 움직인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배신(陪臣)이 주례(酒禮)를 행하기를 청하외다."

하니, 정곤수(鄭崐壽)·김명원(金命元)·김수(金睟)·문성군(文城君) 【이건(李建). 】 ·이항복(李恒福)이 차례로 주례를 행하였다. 유격이 말하기를,

"성지(聖旨)의 본의는 반드시 조선의 주문(奏聞)을 기다려서 사신을 내보내려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비록 병조에 보고하더라도 저의 말을 반드시 믿지 않을 것이니, 귀국이 만일 주문하지 않으면 사신은 끝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 적이 ‘조선이 주문하지 않기 때문에 사신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성지(聖旨)에 ‘적이 다 물러가기를 기다려서 주문하라.’ 하였거늘, 적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으니 어떻게 하겠소이까."

하자, 유격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주문해도 좋고 주문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김 지휘(金指揮)가 만일 적의 진영을 불사르고 오면 즉시 주문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땅히 심 유격(沈遊擊)을 기다려서 처리하는 것도 무방하겠습니다. 사신이 요동(遼東)에 머무르고 오지 않으면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문을 하지 않으면 손 경략(孫經略) 【손광(孫鑛). 】 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대인께서 병조에 보고할 자문의 초안을 보기 원하외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그 초안을 당연히 등서해서 올려야 함은 천만 부득이한 일입니다. 본 조정에서 저 적을 다 섬멸하려고 하지 않는 건 아니나 형세상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10만 병력을 동원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귀국에 군량이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지금 반드시 그들로 하여금 물러가게 한 연후에 장수를 뽑고 군사를 훈련시켜서 마치 호표(虎豹)가 산에 있는 듯한 위세를 갖춘다면, 3∼4년 후에 비록 저들이 재침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하자, 상이 말하기를,

"이처럼 가르쳐 주시니, 매우 감사하외다."

하였다. 유격이 말하기를,

"왜적이 이미 귀순하였으니, 이후로는 항왜(降倭)를 일체 받지 마십시오. 이미 받아들인 항왜도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귀국에서 포로되어 간 사람도 오거든 죽이지 마십시오. 죽인다는 소식을 듣고 오지 않는 자가 많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우리 백성이 적에게 투항한 것이 어찌 본심이겠소이까. 부득이해서 그런 것이외다. 나오는 자는 각도에 나누어 주어 안착(安着)시켜 무양(撫養)하게 할 작정인데, 어찌 감히 죽이겠소이까."

하자, 유격이 말하기를,

"그 말씀이 매우 옳습니다. 이는 바로 선왕이 백성에게 인자함을 베푼 정사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4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역사-편사(編史)

    ○上幸南別宮, 見陳遊擊

    【史臣曰: "別宮卽小公主第, 其後還屬國籍。 癸未年間, 大營宮室, 窮奢極侈, 僭踰無度。 賜王子義安君。 其時與此第, 相爲甲乙者, 五六區。 生靈膏血, 盡於是矣。 國祚之顚覆也, 宜哉! 兵火之餘, 惟此宮巍然獨存, 爲迎賓會朝之所。 噫! 天必使我聖上, 痛悔儆懼於今日也矣。"】

    王世子祗送(干)〔于〕 闕門外道(在)〔左〕遊擊金鴻守備一龍, 出迎於門外。 坐定, 上曰: "聞大人中道不平, 深以爲慮, 敢問。" 遊擊曰: "今已愈矣。" 上曰: "大人爲小邦, 辛苦往還, 一路蕩敗, 館待虧闕, 深用未安。" 遊擊曰: "俺素好淡泊, 寧有所苦? 一則爲貴國; 一則奉行朝廷命令, 而如是致慰, 多拜。" 上行茶禮。 上曰: "大人往見賊營, 賊勢如何?" 遊擊曰: "行長極恭順, 無他意, 天使若出來, 則必去矣。 其軍一萬五千, 入送三十六船, 俺親見送之。 必須天使速來, 令此賊速退, 甚好。 此賊於貴國, 不共戴天之讐, 然速爲入送, 猶可有爲。 此事如一局碁, 必須終局, 可也。 四五年後, 則俺亦未知也。 貴國及此時也, 勸農、鍊兵, 以爲防守之備, 亦無不可, 其前則似無虞矣。 指揮文鳳, 今在營, 來則必有所傳報, 貴國速爲奏聞。" 上曰: "大人, 以賊情報兵部乎? 願聞其說。" 遊擊曰: "賊則必去。" 上曰: "沈大人先天使出來云, 大人報兵部後出來乎?" 遊擊曰: "沈惟敬已到廣寧。 一二日內, 必有先報兵部, 以勑書授惟敬, 乃燒營事也。 必先示於國王, 然後爲之, 更無他虞, 勿以爲疑。 姑爲羈縻以送, 徐爲後日之圖, 可也。" 上曰: "賊求封之後, 更無所要乎?" 遊擊曰: "賊情難料, 更有所要, 未可知也。 天使出來, 則撤去之後, 必當入朝以謝。 一往再往, 則非許貢乎? 貢則自然許之矣。 貢路, 必由寧波府也。 欽差正使李宗城, (臨淮候)〔臨淮侯〕 彦恭之子, 膽略出衆; 副使楊方亨, 孫侍郞中軍, 亦有力量。 此人等出來, 則賊必退去矣" 上曰: "行長若去, 則淸正亦當去乎? 更無肆兇之計乎?" 遊擊曰: "俺在營, 未聞淸正之事, 及與元帥言, 始聞有兇悖之言, 六月間動兵云云。" 上曰: "請陪臣行酒禮。" 鄭崑壽金命元金睟文城君 【健。】李恒福, 以次行酒禮。 遊擊曰: " 聖旨本意, 則必待朝鮮奏聞, 然後出送天使。 俺雖咨報兵部, 而俺之言, 不必取實。 貴國若不爲奏聞, 則天使終不出來。 彼賊以爲: ‘朝鮮不爲奏聞, 故天使不爲出來’ 云云則奈何?" 上曰: " 聖旨曰: ‘俟賊盡退奏聞’ 云。 賊猶未退, 何以爲之?" 遊擊曰: "然。 奏亦可, 不奏亦可。 金指揮若燒營而來, 則卽可奏聞; 否則當待沈遊擊而處之, 亦無妨也。 天使駐而不來, 將何以爲之? 不爲奏聞, 經略 【鑛】 亦不悅矣。" 上曰: "大人報兵部咨草, 願得見之。" 遊擊曰: "其草當(騰)〔謄〕 上, 千萬不得已之事也。 朝廷非不欲盡劉此賊, 而勢有所難。 天朝十萬兵調發不難, 奈於貴國無糧何? 今須必使退去, 然後選將鍊兵, 以爲虎豹在山之勢, 則三四年後, 雖有再犯之患, 亦何憂哉?" 上曰: "如是指敎, 多謝。" 遊擊曰: "賊, 旣已歸順, 今後降, 一切勿受, 已受者亦可送之。 貴國被擄人, 亦勿殺之。 聞而不來者多矣。" 上曰: "我民投賊者, 豈其情哉? 不得已也。 出來者, 分授各道, 安着撫養, 豈敢殺之?" 遊擊曰: "此言甚是。 是先王仁民之政也。"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4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