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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60권, 선조 28년 2월 3일 병오 3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접반관 이시발이 진 유격과 소서행장의 접촉에 대하여 아뢰다

진 유격(陳遊擊)의 접반관인 병조 좌랑 이시발이 서장을 올리기를,

"신은 본월 18일에 왜적의 진영으로부터 그들의 사정과 유격의 활동 상황을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유격은 21일에 출발하여 22일에 유천(楡川)에 와서 자고, 당일로 청도(淸道) 땅에 와서 잤습니다. 유격은 찬바람에 감기가 들어서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끙끙 앓아 길을 가기가 어려운 실정이며 만리 타향에서 의약을 구할 길이 없으니, 만일 악화된다면 매우 민망하고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유격이 왜적의 진영에 있던 19일에 행장이 크고 작은 배 36척을 단장하여 깃발을 펼치고 포를 쏘며 일시에 발송하자 유격은 행장의 누상에 올라 직접 보고 통사 장춘열(張春悅) 등도 목격하였는데, 행장이 ‘우도 8천 명, 좌도 7천 명, 도합 1만 5천 명이다.’라고 알렸다 하나, 이것은 위장인 것 같습니다. 떠나올 때에 행장이 유격에게는 창·칼·부채 등의 물품을 보내고 관하(管下)에게는 은(銀)을 차등 있게 지급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장은 배를 타고 5리쯤 배웅하고 돌아갔습니다.

신이 나갔다 돌아온 뒤에 도원수 권율(權慄)의 통서(通書)를 보고 청정(淸正)이 운운한 말을 살피게 되었는데, 신은 너무도 우려스런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곧 그 통서를 가지고 이해룡(李海龍)으로 하여금 말을 잘 만들어서 몰래 유격에게 알려 행장에게 행문(行文)하여 잘 도모할 계책을 삼게 하도록 하였더니, 유격이 곧 신을 불러서 말하기를 ‘이것은 이전의 말이다. 지금 이후로는 반드시 감히 이와 같이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곧 행문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좋겠다.’ 하고, 곧 밀첩(密帖)을 써서 사람을 시켜 행장에게 들여보냈습니다. 밀첩고(密帖稿)와 행장이 철수해 돌아가는 수를 보고한 글을 아울러 등서해서 올려보냅니다. 이 유첩(諭帖)의 일은 관계가 매우 중요하고 혹 지연시키면 일을 그르칠까 염려되었기 때문에 조정의 품의하지 않고 곧바로 독자적으로 유격에게 알려서 처리하였으니, 황공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진 유격행장에게 유시할 밀첩은 ‘본부가 22일 밀양(密陽)에 이르니, 조선 도원수 권율이 「청정이 전일에 행장과 틈이 있었는데, 지금 또 행장이 봉왕하는 일을 전적으로 주장한다는 것으로 인하여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군사를 경주(慶州)로 옮기려 하니, 아마 장차 조선을 습격하여 봉왕하는 일을 깨뜨릴 모양이다. 」고 알려 왔다. 본부가 가면 천사가 장차 올 것인데, 청정이 혹시 그런 짓을 한다면, 이는 천조에 크게 신의를 잃는 것이고 행장은 불순하다는 헛된 이름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석 노야(石老爺)의 융숭한 은혜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며, 관백(關白)의 봉왕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겠는가. 행장은 급히 관백에게 밀보하여 세심하게 배려해서 중대한 일을 그르치지 말게 하고 별도로 치서(馳書)하여 알리라. 더구나 두 왜승(倭僧)인 재전(在田)천우(天祐)조선의 승려인 송운(松雲)에게 편지하기를 「천조에게 봉왕을 허락한 것은 좋은 일이나 관백이 좋다 하지 않는 데야 어찌 하겠는가. 」라고 한 등의 말이 매우 적실하니, 행장은 세밀히 생각하여 어떻게든 처치해서 천사가 오는 일을 방해하지 말게 하는 것이 가하다. 치밀하고 신중하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행장진 유격에게 보고한 철병(撤兵)에 대한 서신은 ‘행장진 노야의 막하에 아뢴다. 귀하의 뜻에 따라 철수해 돌려보낼 숫자는 좌도 각포(各浦)의 왜병 7천 명과 우도 각포의 왜병 8천 명 등 총계 1만 5천 명이다. 지금 머물러서 천사를 기다리는 군사는 다만 행장 막하의 천사(賤士) 및 각포에서 양식을 지키고 배를 보호하는 무리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기를 삼가 빌며, 이만 줄인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30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

    陳遊擊接伴官兵曹佐郞李時發書狀:

    臣本月十八日, 自營, 彼中事狀及遊擊出來辭緣, 已爲馳啓。 遊擊二十一日起身, 二十二日來宿楡川, 當日來宿淸道地, 而遊擊感冒風寒, 不食三日, 疺憊吟疼, 艱難取道, 萬里他鄕, 醫藥無路, 若至深重, 則極爲悶慮。 遊擊在營時, 十九日, 行長裝大小船三十六隻, 張旗放砲, 一時發送, 遊擊上行長敵樓上親見, 通事張春悅等, 竝爲目覩。 行長報稱右道八千, 左道七千, 共一萬五千云, 此則似涉弄假。 來時, 遊擊前, 則行長送槍刀、扇子等物; 管下, 則給銀兩有差。 行長乘舟, 送五里而回。 臣出還後, 見都元帥權慄通書, 得審淸正云云之說, 臣不勝過慮之至, 卽將其書, 使李海龍, 善爲措辭, 暗暗稟知于遊擊, 請行文行長, 以爲善圖之策, 則遊擊卽招臣曰: "此是已前之說, 今後則必不敢如此。 然卽行文, 使之攔住亦可", 卽寫密帖, 差人入送密帖稿, 行長報撤回數目書, 竝謄書上送矣。 此諭帖之事, 機關甚重, 而如或遲延, 恐悞事機, 故不竢稟旨朝廷, (經)〔徑〕 自稟知遊擊爲之, 不勝惶恐。

    陳遊擊行長密帖:

    本府於二十二日至密陽, 朝鮮都元帥權慄稟稱: "淸正向與行長有隙。 今又因行長, 專主封事, 不勝憤怨, 欲移兵慶州, 意將襲朝鮮而敗封事也。" 本府已去, 天使將來, 淸正或有此擧, 是大失信義於天朝, 而行長抱不順之虛名矣。 其於石老爺之隆恩何, 其於關白之封事何? 行長急須密報關白, 自爲委曲, 毋悞重典, 特馳書知之。 況二在田天祐朝鮮松雲曰: "天朝之許封雖美, 其如關白之不好何?" 等語甚的。 行長宜細思, 作何處置, 毋妨天使之至可也。 密之, 密之; 愼之, 愼之。

    行長陳遊擊撤兵書: "行長陳老爺幕下。 從貴意, 而左道浦浦兵撤回者七千, 右道浦浦兵八千, 摠計一萬五千名也。 今量留, 以待天使者, 只行長幕下賤士及浦浦守糧護船之輩而已。 伏乞以之語之。 不宣。"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30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