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반관 이시발이 소서행장과의 접촉의 전말 등의 일로 치계하다
진 유격(陳遊擊)의 접반관(接伴官) 이시발(李時發)이 치계하기를,
"신이 지금 유격을 따라 왜적의 진영에 들어와 5일을 머무르면서 모든 회담 때마다 대략 곁에서 방청하였습니다. 첫날은 행장(行長) 및 현소(玄蘇)·죽계(竹溪)가 잠깐 만나보고 곧 갔는데, 내일 강정(講定)하자고 핑계대었습니다. 둘째 날은 유격이 담 도사(譚都司)를 찾아가 문을 걸어닫고 밀담하였고, 오후에는 행장이 유격을 그의 집으로 청하여 술을 권하면서 밤새도록 한담을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유격이 선유(宣諭)의 운을 떼자 행장 등은 취해서 회담할 수 없다고 핑계대며 내일하자고 청하였습니다.
세째 날은 행장·현소·죽계가 찾아왔으나 미처 회담을 못하고 갔습니다. 이날 저녁에 유격이 찬획(贊畫) 유대무(兪大武) 및 담 도사로 하여금 행장 등을 가서 보고 진야(陳爺)의 의사를 전달하게 하였더니, 행장이 말하기를 ‘진 노야가 우리 진영에 머물러 있으면 나는 3천여 명의 군사를 대동하고 귀국하여 관백(關伯)을 보고 면전에서 사정을 보고하여 청정의 군사를 먼저 철수케 하고 나는 곧 나와서 천사(天使)를 영접한 다음, 또 각 진영을 철수하여 일시에 귀국할 계획이다…….’ 하였습니다.
네째 날은 유격이 행장이 대동한 임 통사(林通事)를 불러 행장에게 말을 전하기를 ‘네가 속히 결정하여 철수할 것은 일찍 철수하고 또 영옥(營屋)을 불태우거나 헐어버림으로써 철수해 돌아갈 형상을 분명히 보인다면 나는 이를 본국에 좋게 보고하고 천사도 빨리 나올 것이다.’ 하였더니, 행장이 박홍사를 시켜 회답하기를 ‘처음에는 노야(老爺)는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내가 귀국하여 직접 관백에게 보고하려고 하였으나 노야가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조정에서 의아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을 것이고 내가 일본에 돌아가자면 풍랑의 바닷길이라서 또한 소요 날짜를 기약하기 어려우니 천사가 갑자기 이른다면 누가 응접하겠는가. 다시 생각하자 사세가 이와 같으니, 마땅히 1만의 진영에서 우선 5천을 철수하되 매 진영마다 각각 그 절반씩을 덜어 발송시킬 것이다. 진야(陳爺)와 낙야(駱爺)가 각각 한 척의 배를 타고서 대양(大洋)에까지 나가 보내주고 돌아오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습니다. 유격이 ‘그 계획이 극히 묘하다. 모름지기 아무아무 진영에서 얼마얼마의 수를 응당 철수할 것인지를 명백히 적어 와서 그에 의거하여 다시 본국에 보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 행장이 답하기를 ‘다시 생각해서 하겠다…….’ 하였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유격이 행장·현소·죽계 등을 불렀는데, 행장은 모처에서 술을 마신다는 핑계로 오지 않고 현소·죽계만이 왔습니다. 유격이 분부하기를 ‘내가 여기에 온 지 4∼5일이 되었는데 너희들은 아직껏 분명한 처사가 없으니, 이 무슨 뜻에서인가? 철수하고 안 하는 것은 너희에게 매인 일이니 내가 어찌 강요하겠느냐. 나는 마땅히 이런 뜻으로 돌아가 보고할 것인데 다만 조정에서 너희들을 믿지 않을 것이 염려된다.’ 하니, 현소 등이 말하기를 ‘천조에서 매번 우리를 속이니 우리인들 어떻게 믿겠는가. 우리들은 평양(平壤)에서 한번 물러나고 재차 용산(龍山)에서 물러나서 해안까지 물러나 있으며 또 조선의 두 왕자도 돌려보냈으니, 우리는 한번도 실신한 적이 없는데 천조만이 우리를 속일 뿐이다. 이제는 지레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만일 천사(天使)가 경성(京城)이나 남원(南原) 등처에서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면 관백에게 보고할 필요없이 마땅히 다 철수해 돌아갈 것이다.’ 하자, 유격이 전후에 있었던 성지(聖旨)를 내보이면서 잘 생각하라고 하였다 합니다.
행장이 한편으로 크고 작은 배 50여 척을 단장해서 각각 깃발을 꽂고 진영 아래에 죽 매어놓고는 큰 소리로 ‘군사를 철수해 돌아갈 배이니 진야로 하여금 직접 보게 한다…….’ 하였는데, 18일에 비가 내려서 지금 아직 배를 발송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이후의 발송 여부는 역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대개 왜추(倭酋)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자라, 선유(宣諭)가 아무리 절실해도 조금도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끝까지 핑계하면서 세 번 말하면 세 번 그 말을 변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속셈을 헤아릴 수 없게 하니, 배를 단장하여 발송시킨다는 말도 거짓을 꾸며서 사람을 속이는 술책에 불과한 것입니다. 유격도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또 말하기를 ‘이것도 해로울 것 없다. 내가 다만 목격한 바에 의거하여 돌아가 보고해서 천사를 서둘러 나오게 하면 저들은 마땅히 스스로 철수해 돌아갈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해룡(李海龍)과 함께 그들의 말뜻을 탐지하기도 하고 순방을 통해서 알아보기도 한 결과 온 진영의 대소 왜적들이 중국 사신을 몹시 기다리는 심정이었습니다. 책봉을 구하는 일은 진실인 것 같고, 철수하는 일은 반드시 중국 사신이 오기를 기다려서 하려고 하며, 조공 바치기를 요구하는 여부는 중국 사신이 와서 책봉할 때에 반드시 무슨 말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일 중국 사신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는다면 또한 그들이 다시 반측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하기 어려우니, 이것이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왜적의 실정은 대개 이상에서 진술한 바와 같기 때문에 우선 치계하고, 나머지 보고 들은 일은 복명할 때에 자세히 갖추어 아뢰겠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29면
- 【분류】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
○陳遊擊接伴官李時發馳啓曰: "臣今隨遊擊之行, 入到倭營, 留五日, 凡(波)〔彼〕 此講說之際, 略皆從傍打聽。 第一日, 則行長及玄蘇、竹溪, 暫見卽辭去, 退說明日講定; 第二日, 則遊擊往見譚都司, 閉門密話。 午後, 行長請游擊于其家, 擺酒終夕閑話, 遊擊出宣諭之端, 則行長等退說醉不得講話, 請待明日。 第三日, 行長、玄蘇、竹溪來見, 未及講話又辭去。 是夕, 遊擊使贊畫兪大武及譚都司, 往見行長等, 發諭陳爺之意, 則行長言: ‘陳老爺住在弊營, 則我帶三千餘兵, 歸見關(伯)〔白〕 , 報事情, 使先撤淸正之兵, 我卽出來迎接天使, 且撤各營, 一時回國爲計’ 云云。 第四日, 遊擊招行長所帶林通事, 傳說行長云: ‘爾速決定, 當撤者早撤。 且燒毁營屋, 明示撤歸之狀, 則我好回話, 而天使亦當速臨矣。’ 行長使朴通事回話曰: ‘初欲老爺住此, 而我歸親報關(伯)〔白〕 , 但老爺住此, 朝廷不無疑訝之心, 我歸日本, 海程風濤, 亦難計日月, 天使卒臨, 誰當接應? 更思則事勢如此, 當就一萬之營, 先撤五千, 每營各收其半發送, 陳爺與駱爺, 各坐一船, 送到大洋而回, 如何?’ 遊擊言: ‘此計極妙。 須記某某營, 應撤某某數, 明白書來, 以憑轉報爲當’ 云。 行長答曰: ‘更思爲之’ 云云。 第五日, 遊擊招行長、玄蘇、竹溪等, 則行長稱某處飮酒不來, 只玄蘇、竹溪來見。 遊擊分付曰: ‘我到此已至四、五日。 爾等迄無分曉, 是何意耶? 撤與不撤在爾, 我何勉强? 我當以此意歸報, 而只恐朝廷不信爾等也。’ 玄蘇等曰: ‘天朝每每欺我, 我等亦何取信? 我等一退於平壤, 再退於龍山, 窮蹙海岸。 且送還朝鮮兩王子, 我無一失信, 而只天朝欺我耳。 今則不可徑退。 若天使來到京城, 或南原等處, 的知其實, 則不必報稟關(伯)〔白〕 , 當盡撤回’ 云。 遊擊出示前後聖旨, 使之商量云。 行長一邊粧大、小船五十餘隻, 各揷旗號, 列泊營下, 聲言 ‘撤歸兵船, 使陳爺面見’ 云云, 而十八日下雨, 時未開船。 厥後發送與否, 亦不得知。 大槪倭酋, 狡詐百出, 宣諭雖切, 而略不動念, 一向退托, 三言而三變其說, 令人莫測(湍)〔端〕 倪。 粧船發送之說, 亦不過弄假瞞人之術。 遊擊亦知其假意, 而且言: ‘此亦不妨。 我只據所見歸報, 催降天使, 則彼當自撤回矣’ 云云。 臣與李海龍, 或探諸辭意, 或得諸詢訪, 則闔營大小倭衆, 等待天使, 情意甚苦。 求封似是實誠, 而撤回必待天使, 求貢與否, 天使入封之時, 必有說話。 若天使久不出來, 則亦難保其更不反側, 此爲可慮。 倭情大槪如右所陳, 故爲先馳啓。 自餘聞見事狀, 覆命之日, 詳細具啓。"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29면
- 【분류】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