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에 《주역》을 강하고, 군공의 논상·김덕령의 사람됨 등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강(晝講)을 하였다. 동지사 이항복(李恒福), 특진관 한효순(韓孝純), 참찬관 정광적(鄭光績), 시독관 신식(申湜), 검토관 정경세(鄭經世) 등이 입시하여 《주역》 건괘(乾卦)를 강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구름이 용을 따른다. [雲從龍]’는 뜻은 알겠으나 ‘바람이 범을 따른다. [風從虎]’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하니, 정경세가 아뢰기를,
"범이 울면 바람이 매섭고 범이 다니면 바람이 저절로 생기니, 이른바 ‘같은 유끼리 서로 통한다. [同聲相應同氣相求]’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용은 음물(陰物)인가?"
하니, 정경세가 아뢰기를,
"위에 있는 것을 양물(陽物)이라 한 것은 변화(變化)를 주로 해서 말한 것이고, 아래에 있는 것을 음물이라 한 것은 물 가운데에 있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성인이 일어나니 사람들이 우러러 본다[聖人作而萬物覩]’는 것은 인류로는 우러러보지 않는 자가 없으니, 소인은 소인이 친하고 군자는 군자가 친하는 것이다."
하니, 정경세가 아뢰기를,
"그렇지 않은 게 없습니다. ‘우는 학이 깊숙한 곳에 있거늘,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라는 말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요(堯)임금의 고요(皐陶)와 탕(湯)임금의 이윤(伊尹)과 당(唐)나라의 위징(魏徵)과 한(漢)나라의 제갈양(諸葛亮)이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것은 모든 일은 반드시 중(中)으로 귀중함을 삼으니, 지나치면 끝내는 반드시 후회가 있는 것이다."
하니, 신식(申湜)이 아뢰기를,
"성교(聖敎)가 지당합니다."
하고, 정경세는 아뢰기를,
"상구(上九)는 중정(中正)에 있어서 지나치게 높고 뜻이 자만하여서 아랫사람의 실정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후회가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나무꾼의 말도 반드시 취택, 실시하여 천하의 일을 성취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개 십분 옳은 곳은 바로 중(中)인데, 지금 사람은 매사에 비록 중을 얻지 못해도 스스로 중을 얻었다 하니, 이는 분변하지 못하는 소치이다."
하니, 정경세가 아뢰기를,
"《대학(大學)》의 ‘지극한 선에 그친다. [止於至善]’라는 것이 바로 중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성인은 육효(六爻)만 그렸으나 의리가 무궁하여 알기가 극히 어렵다."
하였다. 상이 한효순에게 이르기를,
"참판은 《주역》에 정통했다고 하던데, 왜 한마디 말이 없는가?"
하자 한효순이 아뢰기를,
"지금 세상 사람은 단지 조박(糟粕)만 이해하지 변화 무궁한 묘리는 아는 자가 없습니다. 오효(五爻)는 중정(中正)한데 곁의 효로 논한다면 동일하지 않고 상효(上爻)에 이르러서는 단지 항극(亢極)의 뜻만 발명했을 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말한 바가 다 좋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주역》 외에 또 제유(諸儒)들이 부집(裒集)한 책이 있는가?"
하니, 정경세가 아뢰기를,
"《계몽추원(啓蒙推原)》은 역(易)의 본원이며 《황극경세(皇極經世)》·《정몽(正蒙)》 등의 책도 역을 논한 책입니다."
하였다. 【근세의 역학(易學)은 서경덕(徐敬德) 이후로는 전함이 없다. 과거 강업(科擧講業)에서 약간 구두(句讀)를 분명하게 하는 자가 있으면 능통하다고 말한다. 이런 때문에 경연에서 말한 것은 모두 속유(俗儒)의 진독(陳讀)이니, 족히 임금을 감동시키지 못하였다. 오직 정경세가 비록 일시의 재기(才氣)였으나 응대(應對)하는 데 그쳤다. 상이 누차 수작을 하였으나 선유들은 모두 만년에 역(易)을 배웠으니, 어찌 가볍게 논설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오늘날에 절실한 일이 아닌 듯싶다. 】 상이 이르기를,
"전에 경안 부령(慶安副令)이 말하기를 ‘남언경(南彦經)은 《참동계(參同契)》를 상당히 안다.’ 하였는데, 사실인가?"
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남언경은 소시에 사우(師友)를 종사할 때부터 그 뜻이 오로지 이름을 얻고 출세하려는 데 있었으므로 부과(浮誇)하고 탐활(貪猾)한 정상을 끝내 가리울 수 없었다. 그는 《참동계》 뿐만이 아니라 의술(醫術)까지도 안다고 자신하지만 기실은 알지 못한다. 이요(李瑤)가 괴물(怪物)로서 상의 앞에서 망령되이 칭찬을 가하였기 때문에 상은 오히려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 상이 이르기를,
"반드시 여러 해 적공(積功)한 연후에야 그 묘리를 알 것이다."
하니, 신식이 아뢰기를,
"《참동계》는 바로 술가(術家)의 일입니다."
하고, 정경세는 아뢰기를,
"이는 비록 괴이한 설이나 우리 나라에도 이를 배운 자가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떤 사람인가?"
하니, 정경세가 아뢰기를,
"옛날에 정렴(鄭𥖝)이란 자가 있어 심통술(心通術)을 얻었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는 이 사람이 의술을 잘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 말은 듣지 못하였다. 학문의 공도 있었는가?"
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그 점은 듣지 못했고 점을 잘 치고 의술을 잘하기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고 합니다."
하였다. 강(講)이 끝나자, 이항복이 아뢰기를,
"군공(軍功)을 논상하는 규칙에는 네 사람을 사살(射殺)했을 경우 참봉(參奉)을 삼고, 그 뒤에는 비록 네 사람을 더 사살했더라도 상은 더 주지 않고 반드시 열 명을 채운 뒤에야 승진시킵니다. 당초의 뜻은 한갓 사살로만 논상을 한다면 온당치 못한 것 같기 때문에 네 사람을 사살하는 것으로 1급(級)을 삼고 반드시 수급(首級)을 기다린 연후에 승진시켰는데, 근일 군공이 너무 범람하여 3품직을 얻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옛날에 대장군(大將軍)의 첩지 1통을 겨우 한 번 술 마실 정도의 대금으로 바꾼 적이 있었는데, 근일에는 관작 고신(官爵告身)이 아마(兒馬) 1필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수급을 벤 것으로 계산한다면 수길의 군사가 거의 다 없어졌어야 할 것인데, 적병이 가득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자, 이항복이 아뢰기를,
"일을 담당한 사람은 군공을 자세히 기록해야 할 터인데 이와 같으니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하고, 한효순은 아뢰기를,
"인정에 구애되어 사실이 아닌 자가 많으니, 이는 매우 부당합니다. 분명하게 장계 속에 적혀 있는 자만 논상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이항복이 아뢰기를,
"좌랑(佐郞)으로 정랑(正郞)을 삼을 자가 자급이 맞지 않을 경우에는 수 정랑(守正郞)012) 을 삼고 훈련 정(訓鍊正)을 삼을 자가 자급이 맞지 않을 경우에는 건공(建功)으로 수 훈련 정(守訓鍊正)을 삼고 자궁(資窮)일 경우에는 대가(代加)하는 것이 전례인데, 근일에는 군공으로 정(正)을 삼을 경우 으레 그 직에 준하여 자급을 주기 때문에 어모(禦侮)로 등제하여 당상(堂上)에 오른 자가 자못 많습니다. 이후로는 군공을 세운 자는 직에 준하여 자급을 주지 않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이 타당한 것 같으니, 의논해서 처리하라."
하였다. 한효순이 아뢰기를,
"군공을 마련하여 이미 정서하여 책으로 작성하였으니, 입계하여 계(啓)자를 찍은 다음 병조에 내려서 간직하여 후일에 상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온당하다."
하였다. 상이 이항복에게 이르기를,
"경은 김덕령(金德齡)을 보았는가? 위인이 어떻던가?"
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외모를 보니 단지 하나의 연소한 사인(士人)이었으나 용력(勇力)이 남보다 뛰어나므로 무인(武人)들도 역시 복종하고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려(知慮)가 있던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지려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용렬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글을 잘하는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약간은 압니다. 담양(潭陽)의 금성 산성(金城山城)에 불끈 솟은 바위가 있는데, 사람이 도저히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도 김덕령은 그 바위를 걸어서 넘기를 매우 경첩(輕捷)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고을 사람 20여 명이 목격한 것이라 합니다"
하고, 정광적은 아뢰기를,
"군사를 일으키던 초두에는 한때의 여망이 반드시 큰 공을 세우리라고 여겼는데, 별로 성과가 없었습니다. 대개 조정에서 그에게 기대한 바가 너무 컸고 그도 사명(使命)임을 자처하였기 때문에 일로의 군졸과 장관이 거개 이반하였으므로, 지금은 단지 외로운 군사만을 거느리고 있다고 합니다. 전번에 그가 권율(權慄)에게 올린 서신을 보았더니, 자못 허물을 뉘우치는 뜻이 있었습니다"
하고, 이항복은 아뢰기를,
"당초 조정이 너무 포장(褒奬)을 한 것입니다. 신이 남쪽 지방에 있을 때에 주의를 시켰더니 그 역시 깊이 새겨 들었습니다. 그의 참모들을 보았더니 거개가 과격한 사람들이었고, 그도 술을 마시고 실수하는 일이 많아 매우 전도되는 일이 있었으므로 이 때문에 군졸이 이산하게 된 것입니다. 그뒤에 그는 글을 지어 사졸들과 맹약(盟約)을 하였으므로 지금은 군정(軍情)이 약간 누그러졌다 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대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참작하지 않고 마구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무군사일기(撫軍司日記)》를 보았더니 ‘김덕령이 말하기를 「총통(銃筒) 3백 자루를 쏘고 있었더니, 왜적이 저절로 무너졌다. 」고 했다.’ 하였고, 또 ‘쌍무지개가 몸을 둘렀다.’고 하였는데, 어찌 이럴 리가 있겠는가. 무군사의 추장(推奬)이 너무 지나쳐 마치 한(漢)나라가 한신(韓信)을 대우하듯 한 것이지, 조정에서는 별로 지나치게 추장한 일이 없다"
하였다. 정경세가 아뢰기를,
"소신도 이 사람에 대한 일을 듣고 처음에는 믿었으나 본인을 직접 보았더니 별로 취할 만한 실상이 없었습니다. 신이 이귀(李貴)와 같이 자면서 자세히 물었더니 ‘김덕령이 말하기를 「이 왜적을 내가 다 섬멸할 수는 없고 다만 현소(玄蘇)와 의지(義智) 등의 머리를 베어오겠다……. 」 했다.’고 했는데, 이귀의 말이 이처럼 부탄(浮誕)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귀는 본시 허소(虛疎)한 사람이다. 전번에 그가 상경했을 때 어떤 이가 나더러 인견하라고 권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가 허소함을 알았기 때문에 인견하지 않았다. 대개 일에 임해서 두려워하고 미리 계획을 세워서 성공시키는 것이 가하다. 설사 참으로 남보다 뛰어난 용맹이 있다 하더라도 이처럼 과장해서는 안된다."
하니, 정경세가 아뢰기를,
"동궁이 익호(翼虎)로 김덕령 군대의 호를 하였다 하기에 신은 듣고, 그것이 이귀의 말에서 나왔음을 알았습니다. 행군한 뒤에 별로 성과가 없기에 신이 이귀에게 서신으로 꾸짖었습니다."
하였다. 신식이 아뢰기를,
"국가가 미증유의 변을 만나 군사가 동원된 지 지금 벌써 4년입니다. 당초에는 백성들이 군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앞을 다투어 도망치더니, 지금은 사람마다 각자 책려(策勵)하고 국가도 교육을 하고 재산을 늘리고 군사를 강화시키며 날마다 경칙(警勅)을 가하고 있는데도 오늘날의 국사가 점점 해이해져 갑니다. 연소 막상(燕巢幕上)013) 이란 옛말을 일찍이 들은 바 있거니와, 지금은 위태롭기가 그것보다 더 심합니다. 온 세상 인심이 가만히 앉아서 적이 저절로 물러가기 만을 기대할 뿐이요 별로 노력하는 일이 없습니다. 남방의 곳곳에는 한 군데도 보장(保障)이 될 만한 곳이 없으니, 국세의 위태로움이 이처럼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옛말에 ‘하늘은 한 세상의 인재를 낼 때 한 세상 일을 해 내기에 족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장수감을 비록 쉽게 얻을 수가 없다고는 하지만, 혹 알아보지 못해서 등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대개 군졸이란 훈련만 시키면 정예하게 되는 것이니, 위에서 책려(策勵)를 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화친의 의논이 마구 전파되어 인심이 거기에 빠져듭니다. 중국 사람도 필시 우리 나라가 적의 흉계에 빠짐을 당한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근래 민간에는 ‘만일 이 적이 아니었더라면 요역(徭役)이 필시 지금보다 배나 되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돕니다. 국사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옛날에는 장수가 거느리는 군졸의 수는 적어도 수만 명을 밑돌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아도 천여 명에 불과합니다. 대개 우리 나라 군제는 군졸은 적고 장수는 많게 되어 있으니, 이것이 성공하지 못한 원인입니다."
하고, 정광적은 아뢰기를,
"신식의 말이 옳습니다. 근래 인심은 허둥지둥 급급해 하는 기색이 없고 해이하기가 전일보다 심합니다. 우리 나라의 병력은 약하니 평원 지대에서 적과 싸운다는 것은 절대 가능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험지에 의거하여 진을 치기도 하고 요해지에 병력을 매복시키기도 하여 방수(防守)할 계책을 세우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편안히 세월이나 보내고 계획 조처하는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신이 일찍이 외방에서 보았더니, 인심의 해이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하고, 정경세는 아뢰기를,
"외방은 나무랄 수 없습니다. 조정은 외방의 근본이건만 조정 자체가 일마다 해이합니다. 조정이 이와 같은데 외방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는 국사에 전념하여 조금도 해이하지 않으신데 아래에 봉행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것이 통탄할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연하다. 인심이 해이해지는 것은 실로 위에 있는 사람에게 말미암은 것이다. 서로(西路)에 있을 때 주화설(主和說)이 꽤 나돌더니만 그 후로는 공공연히 창언하여 더러는 경연 중에도 발설하니, 이것이 괴이하다."
하자, 정경세가 아뢰기를,
"복수할 생각이 굳어지면 강화설은 저절로 끊어질 것입니다."
하였다. 신시(申時)에 파하고 나갔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5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16면
- 【분류】풍속-풍속(風俗)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의약-의학(醫學)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辛巳/上御別殿晝講。 同知事李恒福、特進官韓孝純、參贊官鄭光績、侍讀官申湜、檢討官鄭經世等入侍, 講《易》乾卦。 上曰: "雲從龍, 則予知之矣, 風從虎者, 何謂也?" 經世曰: "虎嘯風冽, 虎行風自生, 所謂同聲相應, 同氣相求者, 是也。" 上曰: "龍, 是陰物耶?" 經世曰: "在上謂陽物者, 主變化而言也; 在下謂陰物者, 謂在水中也。" 上曰: "聖人作而萬物覩, 人之類, 莫不歸仰, 小人則小人親之, 君子則君子親之。" 經世曰: "莫不然矣。 鶴鳴在陰, 其子和之之言, 亦若此也。 堯之皋陶, 湯之伊尹, 唐之魏徵, 漢之諸葛亮, 是也。" 上曰: "亢龍有悔云者, 凡事必以中爲貴, 過則終必有悔也。" 湜曰: "聖敎至當。" 經世曰: "上九, 夫其中正, 過高志滿, 下情不通, 故有悔。 聖人芻蕘必擇, 翕受敷施, 以成天下之務。" 上曰: "大槪十分是處, 是中也, 而今之人, 每事雖不得中, 而自以爲得中, 是未可辨矣。" 經世曰: "《大學》, 止於至善者, 中也。" 上曰: "聖人, 只畫六爻, 義理無窮, 極難知矣。" 上謂孝純曰: "參判精通云, 而何無一言耶?" 孝純曰: "今世之人, 只解糟粕, 變化無窮之妙, 則無知者矣。 五爻中正, 而以旁爻論之則不同; 至於上爻, 則只發明亢極之義而已。" 上曰: "所言皆好。" 上曰: "《周易》外, 又有諸儒裒集之書乎?" 經世曰: "《啓蒙推原》, 《易》之本源, 而《皇極經世》、《正蒙》等書, 亦論《易》之書也。 【近世《易》學, 自徐敬德後, 絶無傳焉。 科擧講業, 稍有句讀分明者, 謂之能通。 是以筵中所言, 皆俗儒陳讀, 不足以動人主之聽。 惟經世, 雖以一時才氣, 而卒於應對。 上屢酬酢, 然先儒學《易》, 皆於晩年, 則豈可輕易論說? 恐非今日切近之務也。】 上曰: "前者, 慶安副令云: ‘南彦經, 頗解《參同契》, 然耶?" 恒福曰: "未聞。" 【彦經少從事師友, 其志專在於得名、發身, 浮誇、貪猾之狀, 終不可掩。 不獨《參同契》, 至如醫術, 自以爲知, 而其實不知。 瑤以怪物, 其妄加稱譽於上前, 上猶記之。】 上曰: "必須積年用功, 然後識其妙矣。" 湜曰: "《參同契》, 乃術家之類也。" 經世曰: "此雖怪怪之說, 我國亦有此學者。" 上曰: "何人耶?" 經世曰: "古有鄭𥖝者, 得他心通之術云。" 上曰: "予聞此人善醫術, 而未聞此言。 亦有學問之功耶?" 恒福曰: "未聞以善推占。 善醫術名世云。" 講畢, 李恒福曰: "軍功論賞之規, 射殺四人則爲參奉, 而其後雖加得四人無賞, 必滿十人, 然後陞遷。 當初之意, 徒以射殺論賞, 則似未穩, 故以射殺四人爲一級, 必待首級然後陞遷, 而近日軍功(大)〔太〕 濫, 無不得三品之職者。 昔者, 大將軍一通, 纔易一醉。 近日以官爵告身, 不及於兒馬一匹矣。" 上曰: "以斬級計之, 則秀吉之軍, 似當幾盡, 而賊兵瀰漫, 是何故耶?" 恒福曰: "任事之人, 所當詳錄軍功, 而乃如是, 甚爲未穩。" 韓孝純曰: "拘於人情, 不實者多, 此甚不當。 以分明在狀啓中者, 論賞可矣。" 恒福 〔曰〕 : "以佐郞爲正郞者, 資未準則爲守正郞; 爲訓鍊正者, 資未準, 則以建功爲守訓鍊正, 資窮者, 則代加例也, 而近日則以軍功爲正者, 例爲準職給資, 故以禦侮登第, 而陞堂上者頗多。 此後則有軍功者, 勿爲準職, 給資似當。" 上曰: "此言似當。 議而處之。" 孝純曰: "軍功磨鍊, 已爲正書成冊, 請入啓, 踏啓字, 下兵曹(莊)〔藏〕 置, 以爲後考何如?" 上曰: "當矣。" 上謂恒福曰: "卿見金德齡乎? 爲人何如?" 恒福曰: "未之知也。 觀其外貌, 則只一年少士人, 而勇力則過人, 雖武人亦服之矣。" 上曰: "有智慮乎?" 曰: "智慮則未可知, 而非庸劣人也。" 上曰: "能文乎?" 曰: "粗解之矣。 潭陽 金城山城, 有斗起之巖, 非人跡所可及之地, 而德齡步越其巖, 甚爲輕捷, 鄕中二十餘人目覩云矣。" 鄭光績曰: "起兵之初, 一時所望, 以爲必立大功, 而別無成效。 大槪朝廷期待太過, 渠亦以使命自處, 一路軍卒將官, 擧皆離心, 今則只提孤軍云。 頃觀上權慄書, 則頗有悔過之意矣。" 恒福曰: "當初朝廷, 過爲褒奬。 臣於南方, 亦嘗戒之, 則渠亦深自聽納矣。 觀其參謀者, 率皆過越之人, 渠亦多酒失, 頗有顚倒之事。 以此軍卒離散。 厥後作文, 與士卒爲盟, 今則軍情亦稍保合云矣。" 上曰: "大槪我國人爲說, 不爲參酌, 予則知其未能成功也。 觀其《撫軍司日記》, 則德齡曰: ‘放銃筒三百柄而立, 則倭賊自破’ 云。 且 ‘雙虹繞身’ 云, 豈有是理也? 撫軍司推奬太過, 如漢之待韓信者, 朝廷則別無過奬之事矣。" 鄭經世曰: "小臣亦聞此人之事, 初以爲信然, 而及見其人, 則別無可取之實矣。 臣與李貴同寢, 仔細問之, 則 ‘德齡以爲: 「此倭, 吾不可盡殲, 只斬玄蘇、義智等頭顱而來可矣」云云。’ 李貴之說, 浮誕如此。" 上曰: "李貴, 本是虛疎人也。 頃於上京時, 或有勸予引見者, 而予知其虛疎, 故不見之矣。 大槪臨事而懼, 好謀而成可也。 設使眞有過人之勇, 而不可如是誇張也。" 經世曰: "東宮以翼虎, 爲德齡軍號云。 臣聞之, 知其出於李貴之言也。 行軍之後, 別無成效, 臣與李貴書責之矣。" 申湜曰: "國家逢前古未有之變, 軍興今已四載矣。 當初則民不知兵, 爭於奔北, 今則人人各自策勵, 國家亦當敎訓生聚, 日加警勑, 而今之國事, 漸就解弛。 燕巢幕上, 曾聞古語, 而今時則危有甚於彼者。 擧世人心, 坐待賊之退去而已, 別無所爲之事。 南方處處, 無一保障, 國勢之危, 未有如此之甚也。 《語》曰: ‘天生一世人才, 自足了一世事。’ 將才雖不可易得, 而或有未知而不得用者。 凡軍卒鍊則爲精, 自上當加責勵可也。 近來和議橫流, 人心陷溺, 中原之人, 亦必以我國爲見陷於賊謀也。 近來民間傳言: ‘若無此賊, 徭役必倍於此時’ 云。 國事至此, 誠可痛憫。 古者將帥之領軍者, 少不下數萬, 今則多不過千餘。 大槪我國之制, 軍小而將多, 所以未能成功也。" 光績曰: "申湜之言, 是也。 近來人心, 無遑遑汲汲之意, 解怠甚於前日。 我國兵力單弱, 平原廣野, 與賊相戰, 固不能也。 或據險淸野, 或設伏要害, 以爲防守之計, 可也, 而忨愒度日, 無一措畫之事。 臣, 曾於外方觀之, 則人心解弛, 日甚一日矣。" 經世曰: "外方不可責也。 朝廷, 外方之本, 而朝廷之上, 事事懈弛。 朝廷如此, 外方何責? 自上軫念國事, 未嘗少弛, 而在下無奉行之人, 是可痛心。" 上曰: "當矣。 人心解弛, 實由於在上之人耳。 在西路時, 頗有主和之說, 而厥後公然倡之, 或發於筵中, 是可怪也。" 經世曰: "復讐之念旣固, 則講和之說自絶矣。" 申時, 罷黜。
- 【태백산사고본】 35책 5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16면
- 【분류】풍속-풍속(風俗)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의약-의학(醫學)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