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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57권, 선조 27년 11월 8일 임오 6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권율이 보고한 평조신의 서신

평조신의 서신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 비서소감 겸 귀국 가선 대부(日本國祕書少監兼貴國嘉善大夫) 풍신조신(豊臣調信)은 이 장군(李將軍) 막하에 답합니다. 지난달 25일에 부쳐주신 서신은 이 달 6일에 받아보았습니다. 제가 세세한 사정을 행장에게 전달하였더니, 행장이 말하기를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기는 것은 바로 천지의 공통된 이치이다. 작은 시내는 바다로 흐르고 뭇 별은 북극성을 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때문에 우리 태합 전하(太閤殿下)께서 이에 앞서 중[釋] 선소(仙巢) 및 조신을 보내서 등용해 주기를 요구하였는데 귀국이 응하지 않았고, 그 이듬해에 길을 빌어 곧장 천조(天朝)에 허락을 얻으려 하였으나 귀국은 길을 막았다. 그래서 순식간에 부산(釜山)을 깨뜨리고 잇따라 동래(東萊)·상주(尙州) 및 충주(忠州)를 함락하는 등 싸우면 꼭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탈취하여 드디어 평양(平壤)까지 이르렀으나 한 사람도 대드는 자가 없었다. 이때에 천장(天將) 심 유격(沈遊擊)이 와서 강화(講和)를 요청하기에 그로 인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지 않았다. 그런데 이듬해 정월에 귀국이 반간을 행하여 우호를 변질하였다. 이에 행장이 단독으로 천조의 백만 대군을 대하였지만 전투한 지 3일 만에 해를 제거하였다. 완강히 해를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길은 험하고 식량은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왕경(王京)으로 물러와 우리 장수들과 함께 천병(天兵)을 기다려서 해를 제거하려 하였다. 천병이 파주(坡州)를 지나 왕경에 이르기에 우리 군사가 길을 막고 대전하였더니, 천조의 백만 대군은 말에서 떨어져 도보로 달아나기도 하고 혹은 갑옷을 벗고 도망가기도 하고 혹은 싸우다가 몰살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막하(幕下)도 아는 바이다. 그래도 우리 장수들은 사대(事大)라는 뜻으로 원망을 품지 않고 재차 심 유격에게 서신을 부쳐서 강화를 구했다. 이에 제독(提督) 이 노야(李老爺)가 천사(天使) 사용재(謝用榟)서일관(徐一貫)을 일본에 차송(差送)하였으므로 행장이 이 두 천사를 인도하여 태합 전하에게 달려가 명호옥(名護屋)의 진영에서 태합 전하의 말을 직접 듣고 돌아왔다. 이어 행장으로 하여금 서생포(西生浦)에 있으면서 천조(天朝)의 회명(回命)을 기다리게 하였는데 또 진주(晉州)를 함락하였습니다. 두 천사가 제독에게 무어라 보고했기에 회명이 지연되는 것인가? 행장은 이를 익히 듣고 있다. 귀국은 어떤 사람의 말을 믿기에 유 총병(劉摠兵)과 함께 우호를 저지하는 것인가. 행장은 태합 전하를 거듭 설득시키기를 성심껏 하였는데, 이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제독과 경략은 관(關)으로 들어가고 군문 노야(軍門老爺)는 관에서 나와 대권을 쥐고서 호 위관(胡委官)행장의 진영에 보내와서 군사를 거두어 귀국하기를 요구하기에 행장은 응락하고 태반을 철군하고 약간의 병장(兵將)을 남겨 천사를 기다렸다. 그런데 천조는 귀국와 유 총병으로 하여금 강력히 우호를 저지하고 회명을 더욱 지연시키고 있다. 천조가 태합 전하를 봉하는 것을 허락치 않아 비탄(飛彈)이 맨손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귀국이 어찌 편안하겠는가. 막하가 지금 병선(兵船)을 띄워 배회하고 있는 것은 마치 쇠잔한 꽃이 바람을 기다리는 격이며 솥 속에 있는 물고기가 숨 쉬고 있는 격이다. 또한 청정(淸正)은 어질고 지혜가 있는 선비인데 어찌 우매한 행장(行長)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모르기는 하지만 행장은 결코 무도한 짓을 하지는 않으니 좀도둑의 무리가 벼를 베어 가고 민간을 포박한 것은 모르는 일이다. 좀도둑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귀국도 마찬가지이다. 군문 노야가 행장의 진영에 사신 보냈을 때 그 사신이 능양(陵陽)을 지나던 밤에 도둑떼가 문서와 선물들을 빼앗아 가서 사신이 맨몸으로 진영에 들어왔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기 바란다. 태합 전하(太閤殿下)께서 비록 어질고 지혜스런 청정이 있으나 우매한 행장에게 명하여 회명(回命)을 기다리게 하였으므로 이로 인하여 군문 노야의 서계(書契)가 행장의 진영에만 오갔지 청정의 진영에 오간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이 역시 살피지 못하는가.’ 하였습니다. 어떤지 모르겠거니와 이상은 모두 행장의 말입니다.

제가 일본의 비서소감 자격으로만 말한다면 어찌 행장의 말과 다르겠습니까마는, 또 귀국의 가선 대부 입장에서 말한 것이고 보면 행장의 말과 매우 다릅니다. 막하는 매도하는 말을 버리고 치안책(治安策)을 운용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지난 월말에 좌도 방어사(左道防禦使)가 대마 태수(對馬太守)의 진영에 사자를 보냈기에 제가 그 사자를 데리고 행장의 진영에 갔으므로 그는 행장의지의 말을 직접 듣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니 방어사와 상의하여 귀국을 위하는 면에서 옳다고 생각되면 병선(兵船) 백만 척을 출동하여도 역시 해로울 것이 없으나 만일 불가하다고 생각되면 속히 병선을 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결정은 귀하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함안(咸安)고성(固城) 등에서 있었던 일은 사전에 어찌 행장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보고했다면 행장이 근엄히 저지했을 것인데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화가 있는 것입니다. 이후로는 막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면 직접 행장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밖에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공구하여 이만 줄입니다. 10월 7일 풍신조신."


  • 【태백산사고본】 34책 57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394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平調信書曰: "日本國秘書少監兼貴國嘉善大夫豊臣調信, 答李將軍幕下。 去月念又五日所封之書, 今月初六日來具悉。 僕以縷縷之事, 達行長, 行長謂曰: ‘以小事大, 乃天地通理也, 細流歸海, 衆星拱辰者, 是也。 故, 吾大閤殿下, 先是差釋(仙巢)〔仙蘇〕 調信, 求登庸, 貴國不應焉。 其翌年, 欲借路直許天朝, 貴國遮路。 因玆瞬息之間, 挫釜山, 相追陷東萊尙州忠州, 戰必勝、攻必取, 遂雖到平壤, 無一人當鋒者。 方乎此時, 天將沈遊擊, 來要講和, 因玆不能過鴨綠江。 翌年正月, 號貴國反間變和好, 行長一臂, 爭支天朝百萬豼貅, 雖然鬪戰三日攘災。 欲强攘之, 路違糧盡, 且退王京, 與吾諸將, 共待天兵欲攘災。 天兵過坡州到王京, 吾撥軍之輩, 遮路交鋒, 豼貅百萬, 或墮馬徒走, 或舍甲脫去, 或又鬪沒矣, 幕下所知也。 于越吾諸將, 猶以事大之意, 不復其怨, 再寄書沈游擊, 求講和。 提督老爺, 號天使差謝用榟徐一貫日本, 行長導二天使, 赴大閤殿下名護屋之營, 直聞大閤殿下口中之語歸矣。 俾行長西生浦, 待天朝回命, 且陷晋州。 二天使, 如何告提督乎? 回命遲延矣。 行長熟聞之。 貴國取何人之言乎? 與劉摠兵同口, 阻和好。 行長重說大閤, 誠心於是, 有何罪乎? 提督及經略入關, 軍門老爺出關, 主持大事, 差胡委官, 入行長之營, 求撤兵歸國, 行長應之, 太半撤兵。 且量留兵將待天使, 以貴國及劉摠兵, 强阻和好, 回命愈遲延矣。 天朝, 若不許大閤討事, 飛彈空手歸, 則貴國豈平安乎? 幕下, 今浮兵船, 以徘徊者, 蓋如殘花待風, 似鼎魚假息乎! 亦復淸正, 是賢智之士也。 何較行長愚昧之身? 不審行長, 亦決非不宅法, 或也至于狗偸鼠竊之輩, 刈禾穀、捕人民, 則不曾知之。 狗偸鼠竊之不及制止者, 是貴國亦然。 軍門老爺, 差使於行長之營, 路(徑)〔經〕 陵陽之夜, 賊徒奪其書及惠來等物件件, 只使獨入營, 請以之察之。 大閤雖有賢智淸正, 命愚昧行長, 待回命, 因玆軍門老爺書契, 往來于行長之營, 未聞往來于淸正之營, 是亦不審。 不審上來。’ 盡是行長之言也。 僕在日本秘書小監言之, 則何異行長之言乎?; 又在貴國嘉善大夫言之, 則甚異行長之言也。 幕下請抛罵詈之言, 以運治安之策則可也。 去月之尾, 左道防禦使, 差使於對馬太守之營, 僕引其使, 赴行長之營, 直聞行長義智口中之言, 回矣。 請與防禦使相議, 爲貴國而可, 則出兵船百萬隻, 不亦妨焉; 若又不可, 則速回兵船, 則如何? 束在貴意而已。 咸安固城等事, 先是何不報行長乎? 若報之, 則行長謹嚴制之, 因不報之, 有此禍乎? 自今幕下, 每有所思, 請直報行長, 好矣。 此外無更可言之事。 恐懼不宣。 十月七日。 豐臣調信。"


    • 【태백산사고본】 34책 57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394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