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53권, 선조 27년 7월 20일 병신 2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병판의 교체 문제, 변란에 대응하는 일을 논하다

상이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고 【영중추 부사 심수경, 영의정 유성룡, 판중추부사 최흥원, 호조 판서 김명원, 지중추부사 김수, 우승지 구성(具宬)이 입시하였다. 】 이르기를,

"병판(兵判) 심충겸(沈忠謙)이 논박을 당하여 형세가 출사하기 어려우니 누가 대신할 만한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병판은 오로지 병사를 조련하는 일을 맡고 있으니 반드시 교사(敎師) 당관(唐官)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자를 얻어야 합니다. 이덕형이 합당한데 아직 어미를 장사지내지 않았고, 이 밖에는 좋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이 군대를 보내 구원할 일은 기약할 수가 없는데 소서비(小西飛)의 종왜(從倭)는 오래지 않아 적의 진영으로 돌아갈 것이다. 적이 만약 그 소식을 들으면 곧 독기를 부릴 것이니 이곳에서 변란에 대응할 일을 반드시 미리 고려하여 잘 조처해야 한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저들 적이 반드시 금년에 돌격해 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세월을 오래 끌면 이는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이번 중국의 일은 우리 나라에 재앙을 전가시킨 것으로 호랑이를 놀리고서 옷 벗은 아이를 던져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전일에도 송 시랑(宋侍郞)이 화친을 의논한 일을 조정에 진달하지 않아 우리 나라에 화를 끼쳤습니다. 신이 이 뜻으로 팽사준(彭士俊)에게 말하니 사준도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성룡은 나라의 큰 원수를 잊고 적과 강화를 하고자 하였으나 상이 좋아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결국 회유책을 써서 재난을 늦춰야 한다고 말하였다. 고양겸(顧養謙)이 강화의 일로 호택(胡澤)을 보내 주본을 올리라고 재촉할 때 성룡이 그 주문(奏文)을 제술하였다. 비록 ‘화의(和議)’ 두 글자는 없었지만 전편이 다 머리를 감춘 내용으로서, 먼저 우리 나라가 군사는 고단하고 힘은 약하여 결코 적을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 중국이 그 봉관(封款)을 허락하여 적으로 하여금 철수해 돌아가게 해달라는 뜻으로 끝을 맺어 그 글을 호택에게 보였다. 성룡은 처음에 자기가 이 글을 지으면 반드시 그 사실을 알고 죄줄 사람이 있을 것을 스스로 헤아리고는 병이 들었다고 칭탁한 뒤에 기초(起草)하였는데, 문장을 매우 거칠고 서투르게 지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고쳐 짓도록 만들어 놓고 마침내 그 초고를 가지고 가서는 끝내 내보이지 않고 윤근수에게 짓도록 하였다. 근수도 붓을 대기가 어려워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낭료(郞僚) 중에 한번 글을 보면 능히 다 기억하는 자가 있어 성룡이 지은 것을 외워주니 근수가 그것을 모방하여 글을 만들었다. 성룡은 일찍이 이황(李滉)의 문하에 유학하여 유자(儒者)의 이름이 있었으나 조정에 선 지 수십여 년 동안 재상으로서의 업적이 특별히 볼 만한 것이 없고 처리하는 일이 항상 이와 같았다. 왜변(倭變)을 만난 이후에는 생취(生聚)259) 하고 교육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보전할 계책을 삼지 않고 오직 중국에 구원을 요청하는 것만 일삼았으며, 적을 치고 원수를 갚는 의리로써 상에게 경계를 아뢰지 않고 오직 회유책으로 적을 물리칠 계책을 삼았다. 옛날의 이른바 회유책은 적이 와서 요구할 경우 그 납관(納款)260) 을 허락하였는데, 오늘의 기미는 반대로 사직을 무너뜨리고 능침(陵寢)을 파헤쳐 의리로 보아 한 하늘 아래에 같이 살 수 없는 적과 강화를 하려고 하니 어찌 성하(城下)의 맹서261) 에 가깝지 않은가. 탑전(榻前)에서 아뢸 때에는 화의를 그르다고 하여 거짓으로 화의를 주장하지 않는 자처럼 하여 그 마음을 숨겼고 나아가서는 군부(君父)를 속이고 한 세상을 속이고 후세를 속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부는 혹 속이더라도 한 세상은 속일 수 없는 것이며 한 세상은 혹 속이더라도 어찌 후세까지 과연 속일 수 있겠는가.

김수가 아뢰기를,

"적이 만약 호남 지역을 침범하였을 때 학가(鶴駕)262) 가 떠나서 나오면 민정은 더욱 동요될 것입니다."

하고, 심수경은 아뢰기를,

"동궁은 중국 사신을 접대할 일로 그 쪽에 머물러 있는데 이제는 중국 사신이 나온다는 기별이 없으니 올라오는 것이 온당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시점에서는 유언 비어가 매우 많으니 올라오면 안 된다. 중원(中原)이 이미 봉공을 거절하였으니 적이 만약 중원을 곧장 침범하려 한다면 반드시 우리 나라를 거칠 것이고 중원이 이 적을 정벌하려고 할 때에도 반드시 우리 나라를 거칠 것이므로 우리 나라는 적의 싸움터가 되어 자연 멸망되고 말 것이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은가."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만약 과도관(科道官)의 논의로써 봉공을 파하였다면 조정이 의당 조치한 일이 있을 듯한데도 별달리 조치한 계책이 없고, 손 시랑의 세 가지 계책 또한 우리 나라에 유리한 점을 볼 수 없는데 형세가 만약 궁지에 몰리게 되면 다만 압록강을 수비하려고 한다 합니다. 저들 적이 절강(浙江)을 놓아두고 우리 나라를 경유하려는 것은 좋은 계책이라 할 만합니다. 절강은 중국에 있어서 꼬리와 같고 우리 나라는 머리와 같으므로 중원이 만약 우리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요동이 반드시 먼저 흔들려 천하의 형세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총병의 철수하는 계책은 옳은 것이다. 그의 뜻은, 적이 만약 경상도를 거쳐 곧장 용인(龍仁) 등지에 이르면 반드시 좌우에서 적의 침공을 받게 될 것이므로 경성에 와서 머무르는 것만 오히려 못하므로 지금 철수하려는 것이니, 사실 장수의 책략이다. 그러나 우선 그대로 머물기를 청하는 것이 좋겠으니 머물기를 청하는 자문을 빨리 만들도록 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해주(海州)에 있는 실록(實錄)은 깊은 산의 큰 사찰에 두어야 하니 아마도 영변(寧邊) 지역이 적당할 것이다. 혹시 변고가 있으면 반드시 잃어버릴 것이니 작은 일이 아니다. 향산(香山)263) 에 보관해 두고 믿을 만한 승인(僧人)에게 승직(僧職)을 주어 그로 하여금 단단히 지키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53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316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왕실-국왕(國王) /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註 259]
    생취(生聚) : 백성을 기르고 재물을 모음.
  • [註 260]
    납관(納款) : 화친을 받아줌.
  • [註 261]
    성하(城下)의 맹서 : 적에게 몰린 극한 상황에서 조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패자의 더없이 큰 치욕을 뜻함.
  • [註 262]
    학가(鶴駕) : 세자의 행차.
  • [註 263]
    향산(香山) : 사찰.

○上引見大臣及備邊司堂上。 【領中樞府事沈守慶、領議政柳成龍、判中樞府事崔興源、戶曹判書金命元、知中樞府事金睟、右承旨具宬入侍。】 上曰: "兵判沈忠謙被論, 勢難出仕。 孰可代之?" 成龍曰: "兵判專主錬兵, 必須得敎師官情意相通者。 李德馨可合, 而時未葬母。 此外無他可人矣。" 上曰: " 天朝發兵來救, 未可期, 而小西飛之從, 不久將還歸賊營。 賊若聞之, 卽必肆毒。 在此應變之事, 必須預慮而善處。" 成龍曰: "彼賊必於今年衝突, 未可知也, 若持以歲月, 此甚可慮。 今此天朝之事, 乃嫁我國禍, 無異於戲虎, 而投以脫衣之兒。 前日宋侍郞議和之事, 不達于朝廷, 而貽禍我國。 臣以此意言于彭士俊, 則士俊亦以爲然矣。"

【史臣曰: "成龍忘國大讐, 欲與賊講和, 而恐上之不悅也, 乃曰: ‘宜羈縻以緩禍。’ 方顧養謙, 以講和事, 遣胡澤催上本也, 成龍日製奏文。 雖無和議二字, 而一篇皆藏頭說話, 先言我國兵單力弱, 決難禦敵之狀, 而以天朝許其封款, 使賊撤歸之意結之, 將書示胡澤成龍自料已之爲此, 必有知而罪之者, 托稱病後起草, 文甚荒拙, 可令他人改撰。 遂取其草蒿而去, 竟不出示, 使尹根壽製之。 根壽, 亦難於下筆, 適郞僚中, 有一覽而能盡記者, 示成龍所製, 根壽乃倣而綴文。 成龍早遊李滉門下, 有儒者之名, 而立朝數十餘年, 相業別無可觀, 而處事每如此。 逮遭變以後, 不以生聚敎訓, 爲自保之計, 而惟事告急於上國, 不以討賊復讐之義, 陳戒於上, 而惟以羈縻爲退敵之策。 古之所謂羈縻, 敵來而許其納款也; 今之羈縻, 反與夷社稷、掘陵寢, 義不可共一天之賊, 欲爲講和, 不幾於城下之盟乎? 至於榻前所啓, 以和議爲非, 陽若不主和議者然, 以掩其心, 還欲瞞君父, 欲瞞一世, 欲瞞後世。 君父雖或爲所瞞, 而一世不可瞞; 一世雖或爲所瞞, 而後世果可得瞞耶?"】

曰: "賊若來犯湖界, 而鶴駕離發, 則民情尤動矣。" 守慶曰: "東宮以天使之故, 駐彼。 今則天使無出來之奇, 上來便當。" 上曰: "此時訛言甚多, 不可上來。 中原已絶封貢, 賊若欲直犯中原, 則必由我國; 中原欲征討此賊, 亦必由我國。 我國爲賊場, 自就糜滅而後已, 豈不痛哉?" 成龍曰: "若以科道之議, 罷絶封貢, 則朝廷似當有處置之事, 而別無指置之策。 孫侍郞三策, 亦未見有利於我國, 而勢若窮蹙, 則只欲把守鴨綠云。 彼賊捨浙江, 而由我國, 可謂善策。 浙江中國如尾, 我國如首。 中原若不守我國, 則遼東必先搖動, 而天下之勢危矣。" 上曰: "摠兵撤還之計, 是矣。 其意以爲, 賊若由慶尙, 直至龍仁等地, 則必左右受敵, 不如來住京城之爲得也。 今之撤回, 實是將略, 然姑爲請留可也。 請留之咨, 宜速爲之。" 上曰: "海州 《實錄》, 可置於深山巨刹, 或寧邊地爲當。 脫有變故, 必失之, 非細事也。 可置之香山, 令可信之僧人, 授以僧職, 使之堅守。"


  • 【태백산사고본】 31책 53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316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왕실-국왕(國王) /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