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형세, 순변사 이일의 교체 문제, 금군과 수문장에 대한 일, 봉공의 일을 논하다
상이 대신과 비변사 유사 당상(有司堂上)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유성룡, 영중추부사 최흥원, 호조 판서 김명원(金命元), 지중추부사 김수(金睟), 병조 판서 심충겸(沈忠謙)이 입시하였다. 】 상이 이르기를,
"황필금(黃弼金)의 초사(招辭)는 작은 일이 아니다. 그의 진술이 본도(本道)의 장계와 다른 점이 있는데 비변사가 물었을 때 하는 말이 어떻던가?"
하니, 유성룡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적의 진중에서 온 자는 반드시 적의 형세를 과장하여 말합니다. 그러나 적의 허실을 정탐하는 일은 반드시 지혜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혹시 이 사람이 말하지 않은 것을 잘못 서장에 쓴 것은 아닌가? 아니면 이 사람이 저쪽에서는 말을 하고 이곳에서는 숨기는 것인가? 낭고야(浪古耶)에 군마(軍馬)를 많이 주둔시키고 있다고 하는데 이 사람에게 물으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고 대답하고, 낭고야에 성을 쌓은 사실을 물으면 성은 없다고 대답하는 등 제만춘(齊萬春)의 초사와 다르다."
하니, 최흥원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신도 참여하여 물었었는데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자 같았습니다. 서장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떤 사람은 ‘적이 다시 움직이려 한다는 것은 다 공갈하는 말이다. 명조가 봉공(封貢)을 아직 거절하지 않고 있으니 그 전에는 도발할 리가 없다.’ 하는데 이 말은 어떤가?"
하니, 성룡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그들의 흉모와 궤계(詭計)는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그들이 잠잠한 틈을 타서 병졸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요즘 황필금의 말로 인하여 경성(京城)이 동요하기에 신이 오부(五部)로 하여금 만약 선동하는 말을 하는 자가 있을 때는 중벌로 논한다고 효유하게 하였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 사람들은 경박하니 두려워 겁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호남에는 장수가 없으니 극히 염려스럽습니다. 순변사 이일은 비록 여러번 패배를 겪었으나 그가 하는 말이 ‘갑자기 출발해 보내 조치한 것이 없기 때문에 패하였다. 만약 미리 조치를 했다면 어찌 이렇게 되었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일은 대체로 무사 중에 그런 대로 쓸 만한 사람이나 부임한 뒤에 군관(軍官)을 많이 거느리고 폐단을 끼친 일이 없지 않기 때문에 지금 불러오려고 하다가 사세가 맞지 않으므로 우선 그만두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만약 이일을 합당치 않다고 하여 체직한다면 마땅히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한다. 옛부터 군졸은 적은데 장수는 많다는 비난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반드시 장수가 많이 모인 뒤라야 서로 의논하여 조치할 수가 있다. 장수를 보내지 않았다가 뜻밖의 문제가 생긴다면 어찌할 것인가. 지난번에 전라 병사의 서장을 보니 토적이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호남은 장수가 없어서는 안 되니 비변사는 빨리 조치하도록 하라."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호남은 인심이 본디 나쁩니다. 토적이 봉기하여 혹 왜적에 붙거나 왜적이 물러가기 전에 산골짜기에 꽉 차 있게 되면 매우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안정시키는 책임은 오로지 방백(方伯)에게 달렸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새 방백은 합당한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신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다만 전에 평양 서윤(平壤庶尹)으로 있을 때 치적이 있었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홍세공(洪世恭)은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서 관찰사가 되었는데 사람됨이 치밀하고 재간이 있으며 후하고 순박하지만 규모가 협소하여 큰 도량과 원대한 식견이 없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재략이 있는가? 이런 때에는 비록 미생(尾生)과 효기(孝己)192) 같은 행실이 있더라도 재략이 없으면 일에 도움이 없다."
하니, 심충겸이 아뢰기를,
"홍세공이 큰 재주는 있으나 방백에 합당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포수(砲手)가 시방(試放)할 때 어찌하여 아동들이 많은가?"
하니, 심충겸이 아뢰기를,
"동자(童子)로서 뽑힌 자가 15여 인인데 기술을 전수하여 완성시킬 생각이므로 아동대(兒童隊)라 이름하여 해체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금군(禁軍)은 기사(騎射)할 줄 모르고 방포(放砲)도 익히지 않으며 살수(殺手)193) 도 익히지 않아, 용잡(庸雜)하여 내실이 없으면서 마냥 나라의 녹만 허비하니 온당치 않다."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사복시(司僕寺)까지 합하면 4백여 인인데 백보(百步)의 거리에서 쏘아 맞힐 자는 겨우 백여 인입니다. 신의 생각에, 재주가 시규(試規)에 미치는 자는 실직에 차임하고 군공(軍功)이 있는 자는 예차(預差)하며 그 나머지는 훈련 도감으로 보내 그들의 요초(料草)를 받아 먹도록 하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해체할 수 없다면 교습시키는 것이 좋겠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상교(上敎)가 지당합니다."
하였다. 충겸이 아뢰기를,
"당초에는 수문장(守門將)이 20인이었는데 이제는 4백 30여 인이나 됩니다. 이제 그 재주를 시험해 보고 못하는 자는 도감에 보내 창검을 익히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하고, 성룡은 아뢰기를,
"이미 그들이 군공이 있다고 말해 놓고 하루아침에 풀어 보내면 인심을 잃을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상의 말이 옳다. 그들을 가르치려 한다면 대장을 정하고 소속을 나누어 창이나 검으로 연습시켜 성취된 자가 나올 때 그 대장을 상주면 반드시 없애지 않더라도 다 정병이 될 것이다."
하지, 성룡이 아뢰기를,
"상교가 지당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원익(李元翼)은 그의 재략은 논할 필요가 없더라도 그의 부지런함은 누구도 미칠 수 없다. 평양의 성안에 검술과 포 쏘는 법을 익히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한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신이 들으니 원익은 방패를 베고 누워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우고, 병제(兵制)가 오랫동안 폐해진 것을 한탄하여 바로잡아 세울 것을 생각하며, 또 제대로 상벌(賞罰)을 시행하므로 한 달 사이에 성과가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김수에게 이르기를,
"경은 먼길에 수고하였다. 먼저 보내온 서장 외에 아뢸 만한 일이 있으면 말하라."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이전에는 【김수가 이때 경사(京師)에서 돌아왔다. 】 황제가 비록 조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백관이 그날 새벽에 봉천문(奉天門) 밖에 일제히 모였다가 조회를 쉰다고 칙유(勅諭)한 뒤에야 각사(各司)로 가서 일을 보았는데, 이제는 그날 저녁에 미리 조회가 쉰다는 것을 알고 백관이 한낮에 각사에 나갑니다. 이로 보건대, 중국의 기강이 차츰 해이해지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남쪽에 적이 있다는데 그러한가?"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토호(土豪)가 군대를 모집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봉공(封貢)은 어떻게 한다던가?"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봉왕(封王)은 허락하고 조공(朝貢)은 허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봉왕을 허락하면 왜가 과연 물러가겠는가? 이는 늘 비변사에 물었던 말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조공을 허락하지 않으면 적은 절대로 물러갈 형세가 아닙니다."
하였다. 【비록 봉공을 허락하더라도 적이 물러가리라는 것을 어찌 단정할 수 있을 것인가. 대신이 이와 같으니 돌이키기 어렵다. 】 상이 이르기를,
"비록 봉공을 허락하더라도 적이 물러가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심유경(沈惟敬)의 말대로라면 왜가 아마 물러갈 것이고 과도관(科道官)의 의논대로라면 왜가 반드시 물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저번 자문(咨文) 중에 고 총독에게 왜적에게 물러갈 것을 하유하라는 말이 있었으니, 반드시 왜적에게 하유하는 임무를 받은 차사(差使)가 있을 것인데도 이제까지 오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니, 명원이 아뢰기를,
"반드시 고 총독이 조치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말을 마치자 군신(群臣)이 물러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52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303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왕실-국왕(國王) / 군사-통신(通信) / 군사-특수군(特殊軍)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사법-치안(治安) / 인물(人物)
○癸酉/上引見大臣及備邊司有司堂上。 【領議政柳成龍、領中樞府事崔興源、戶曹判書金命元、知中樞府事金睟、兵曹判書沈忠謙入侍。】 上曰: "黃弼金招辭, 非小事也。 其所供, 與本道狀啓有異。 備邊司問之, 則所言如何?" 柳成龍對曰: "自賊中來者, 必誇張賊勢。 然覘敵虛實, 必智者後能也。" 上曰: "無乃此人所不言者, 誤爲書狀乎? 抑此人言於彼, 而諱於此耶? 浪古耶, 多駐軍馬云, 而問之此人, 則對曰: ‘不知幾許。’ 問浪古耶築城, 則對曰: ‘無城。’ 與齊萬春招辭不同矣。" 崔興源對曰: "臣亦參問, 則其人似非飾辭者也。 書狀, 則未知何據而爲之矣。" 上曰: "或云賊欲再動, 皆恐喝之言。 天朝封貢, 時未拒絶, 其前無竊發之理。 此言如何?" 成龍對曰: "兇謀詭計, 難以測度。 然當乘其隙, 訓卒鍊兵可也。 近因黃弼金之言, 京城動搖。 臣令五部曉諭, 若有扇動之言者, 重論之矣。" 上曰: "我國人心輕浮, 其畏怯宜矣。" 成龍曰: "湖南無將帥, 極爲可慮。 巡邊使李鎰, 雖屢經敗衂, 自言, ‘倉卒發遣, 無所措置, 故致敗。 若預爲措置, 豈至如是乎?’ 鎰蓋武弁中, 稍可用者, 而赴任之後, 多率軍官, 不無貽弊之事。 故今將招還, 而事勢非便, 故姑停之矣。" 上曰: "若以李鎰爲不合而遞之, 則當遣他人。 自古雖有軍卒少, 而將帥多之譏, 然必將帥多聚, 然後可以相議爲之。 不遣將帥, 而有意外之患則奈何? 頃見全羅兵使書狀, 土賊可慮。 湖南不可無將, 備邊司須速處之。" 成龍曰: "湖南人心素惡, 土賊蜂起, 或附於倭。 或倭退之前, 彌滿山谷, 則甚可慮也。 安定之責, 專在方伯。" 上曰: "新方伯可合否?" 成龍曰: "臣未知其人如何, 但前爲平壤庶尹時, 有聲績矣。"
【史臣曰: "洪世恭, 以全州府尹, 爲觀察使。 爲人精幹敦素, 而規模(挾)〔狹〕 少, 無弘致遠識。"】
上曰: "有才乎? 當此之時, 雖有尾生、孝己之行, 苟無才略, 無補於事。" 沈忠謙對曰: "洪世恭簡略則有矣, 未知合於方伯也。" 上曰: "砲手試放時, 何多兒童?" 沈忠謙對曰: "童子被抄者十五餘人, 欲傳習成就, 故名曰兒童隊, 而不罷矣。" 上曰: "禁軍不諳騎射, 不習放砲, 不習殺手, 庸雜無實, 坐費國廩, 予未穩矣。" 忠謙對曰: "兼司僕四百餘人, 而射及百步者, 僅百餘人。 臣意才及試規者爲實差, 有軍功者爲預差, 其餘欲送于訓鍊都監, 使食其料。" 上曰: "旣不可罷, 則敎習可也。" 成龍曰: "上敎允當。" 忠謙曰: "當初守門將二十人, 而今者多至四百三十餘人。 今試其才, 不能者, 送於都監, 俾習刀槍何如?" 成龍曰: "旣謂之有軍功, 而一朝散遣, 則恐失人心。" 上曰: "領相之言是矣。 欲敎之, 須定將分領, 或用槍用劍, 其成就者賞其將, 則不必汰去, 而皆爲精兵矣。" 成龍曰: "上敎允當。" 上曰: "李元翼, 其才不必論, 其勤不可及也。 平壤城中, 無不用劍而習砲矣。" 成龍曰: "臣聞元翼, 枕盾而眠, 流涕太息。 嘆兵制久廢, 思有以振擧。 且能用賞罰, 故旬月間, 有成效矣。" 上謂金睟曰: "卿遠行勞苦矣。 先來書狀外, 如有可啓之事, 須言之。" 睟對曰: "前時則 【睟時自京師還。】 皇帝, 雖不御朝, 而百官其日曉, 齊會奉天門外, 勑諭免朝, 然後赴各司視事, 今則次夕預知免朝, 百官方午赴各司。 以此觀之, 天朝紀綱, 漸弛廢矣。" 上曰: "南方有賊, 然乎?" 睟曰: "有土豪聚兵云矣。" 上曰: "封貢, 若何以爲之?" 睟曰: "以許封、不許貢, 定云矣。" 上曰: "許封, 則倭果退乎? 此所以每問於備邊司者也。" 成龍曰: "不許貢, 則賊萬無退去之勢矣。" 【雖許封貢, 賊之退去, 安可必乎? 大臣之意如此, 難可回矣。】 上曰: "雖許封貢, 而賊不退, 則奈何?" 忠謙對曰: "如沈惟敬之說, 則倭或退矣; 如科道之議, 則倭必不退矣。" 上曰: "頃日咨文中, 有使顧緫督, 諭倭衆退去之說, 則必有諭倭承差之使, 而至今不來, 何也?" 命元對曰: "必有顧緫督處置之事矣。" 上語畢, 群臣退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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