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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52권, 선조 27년 6월 17일 갑자 4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주본을 올리는 일은 새 경략의 지휘를 기다렸다 조치하라는 뜻을 영상에게 비밀히 통지하게 하다

비망기를 내렸다.

"모든 일은 먼저 의리를 보고 다음에 곡절을 따지는 법인데 이번 이 계사(啓辭)는 먼저 곡절을 따지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 당초에 봉공의 설은 간인(奸人)의 입에서 나와 천하의 일을 망쳐버리고 우리 나라를 여지없이 뭉개버렸으니 그가 혀를 한번 놀려 그 화가 이에까지 이르렀다. 【간인은 심유경(沈惟敬)을 가리킨 듯함. 】 그러나 명조의 쟁신(諍臣) 직사(直士)가 의리를 들어 강력히 논하여 당당한 정기(正氣)는 날이 갈수록 드높아 도저히 꺾을 수 없게 되었다. 고(顧)송(宋)은 그 마음과 행적이 대체로 한 몸에서 나눠진 자들이니 어찌 법을 전수하는 사문(沙門)과 다르겠는가. 고(顧)는 그의 정론을 대적하는데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손을 빌어 힘을 얻으려고 하였으니 그 술책은 교활하고 음험하다고 말할 만하다.

이제 이 주본은 비록 봉공 등에 관한 말을 삭제하긴 하였지만 이미 군대를 청하여 적을 친다는 주본이 못 되니 그 한편의 큰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 점이 내가 이른바 귀를 막고 종을 도둑질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비록 삼척 동자라도 알 수가 있다고 한 것이다. 지금 명조가 쟁론하여 결정이 나지 않고 있는 중에 이 주본이 한번 올라가면 바로 안성마춤이 되고 만다. 만일 이로 인하여 강화하자는 논의가 우세하여 흉적이 봉호(封號)를 얻게 된다면 이는 적이 우리로 말미암아 봉호를 얻은 것이니, 우리가 명조에 청해 원수인 왜적에게 총장(寵章)을 더해준 것으로 간인을 권장하고 도적을 인도하여 해내(海內)의 제후 속에 끼이게 만든 것이다. 가령 이로 인하여 구차하게 몇 년의 목숨을 연장한다 한들 어떻게 천지 사이에 스스로 설 것이며, 어떻게 지하에서 조종(祖宗)을 뵐 것인가. 어찌 이뿐이겠는가. 아마도 과도관이 이 주본을 보고 침을 뱉으면서 ‘과연 동이(東夷)로다.’ 하고, 손 시랑이 이 주본을 보고 한탄하면서 ‘나는 이제 할 일이 없다.’ 할 것이다.

왜적이 봉호를 받은 뒤에 속으로 웃으면서 서성거리며 떠나지 않고 더욱 오만하게 하늘을 거스르는 말을 한다면, 명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도리어 우리 나라에 그 허물을 돌리고 ‘너희 나라가 주본을 올려 봉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허락하였는데 적은 그대로 떠나지 않고 있으니 이는 우리의 과실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니, 그때 가서 비변사가 어떻게 할 것인지 나는 감히 모르겠다. 이것이 내가 이른바, 반드시 나중에 사단이 있을 것이라고 한 이유이다. 호 참장의 앞에서 고한 말이 앞뒤가 같지 않은 문제는 이것이야말로 작은 곡절이다. 그것이 어찌 천하의 대세에 관계되겠는가. 마땅히 그에게 고하기를 ‘고 대인(顧大人)이 명을 받아 총독이 되었을 때는 우리 나라가 마땅히 그의 명을 들어야 하겠지만, 이제 듣건대 손 시랑이 명을 받아 경략이 되었다 하니 우리 나라는 또한 그의 명을 들어야 한다. 이제 손 경략의 절제를 받들지 않고 먼저 이 주본을 올리는 것은 소국이 원융(元戎)171) 에게 명을 듣는 의리가 아닐 듯하다. 이 때문에 감히 즉시 시행할 수 없고 우선 새 경략의 지휘를 기다렸다가 조치하겠다.’ 하면, 이 말이 어찌 통하지 않겠는가.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의 의견이 서로 다르고, 나는 정신을 잃고 혼미하여 그르치는 일이 날로 더욱 심해진다. 이제 다만 나의 뜻을 말하였는데 문장력이 짧아 품은 생각을 다 털어 놓지 못하였다. 경은 이 글을 보고 한번 웃고 나서 옆으로 제쳐두면 매우 다행이겠다. 나의 이 뜻을 영상에게 비밀히 통지하라."


  • 【태백산사고본】 31책 52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97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註 171]
    원융(元戎) : 삼군의 대장.

○備忘記曰: "凡事先觀義理, 次揣曲折。 今此啓辭, 得無近於先揣曲折耶? 當初封貢之說, 出於奸人之口, 敗壞天下之事, 而糜爛我國, 其舌一掉, 其禍至此。 【奸人, 似指惟敬也。】 然天朝諍臣直士, 抗言極論, 堂堂正氣, 愈出而愈峻, 不可得而奪之。 , 其心、其跡, 蓋一體而分者, 何異於傳法沙門耶? 力不能敵彼正論, 故欲援我以爲助, 其術可謂巧且險矣。 今此奏本, 雖剗去封貢等語, 而旣非請兵、討賊之奏, 則其一篇大旨, 果安在哉! 此予所謂無異於掩耳盜鍾, 而雖三尺之童, 亦可知者也。 方天朝爭論未決之際, 此奏一上, 正中其會。 萬一因此而講和之論勝, 兇賊得其封號, 則是賊由我而得其封, 是我請命于朝, 加寵章於讐賊, 奬奸誨盜, 得列於海內之諸(候)〔侯〕 也。 假使因此而苟延數年之命, 其何以自立於天地間, 其何以見祖宗於地下? 不寧唯是, 倘科道之官, 見此 奏而唾之曰: ‘果東夷也’ 孫侍郞見此奏, 而慨然曰: ‘吾無有所爲矣。’ 倭賊得封之後, 竊笑而徘徊不去, 愈出悖慢逆天之語, 則天朝亦無可奈何, 反歸咎於我國曰: ‘爾國, 旣上本欲封, 故許封, 而賊猶不去, 此非天朝之過也。’ 不敢知, 此時備邊司何以爲耶? 此予所謂必有後尾者也。 若其胡將前告語之前後不同者, 則此乃小曲折也。 其何關於天下之大勢乎? 當告之曰: ‘方顧大人受命爲總督, 則我國當聽其命; 今聞孫侍郞受命爲經略, 我國亦當聽其命。 今未奉孫經略之節制, 而先上此奏, 恐非小國聽命於元戎之義。 緣此未敢卽行, 姑待新經略之指揮, 而爲之進退’ 云, 則此言豈不通哉? 雖然人之意見不同, 而以予失性昏妄, 悖謬日益甚焉。 今只言予意, 而文短, 亦不能盡其所懷。 卿可見之, 一哂而置之幸甚。 以此密通於領相。"


  • 【태백산사고본】 31책 52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97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