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효신서》를 번역하는 낭청 한교가 상을 당했으나 기복시켜 일을 마치게 할 것을 아뢰다.
훈련 도감(訓鍊都監)이 아뢰기를,
"낭청(郞廳) 한교(韓嶠)가 천총(千總)이 【군사를 가르치는 중국 사람인데 그 성명(姓名)은 모른다. 】 있을 때에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익혔다는 말을 듣고 저번에 그로 하여금 《기효신서》를 번역해 내는 일을 전담시켰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모가 병환으로 함께 죽었다고 합니다. 그가 맡았던 병서를 번역하는 일에 있어서는 한교만큼 모두 알아서 잘 편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기복(起復)시키고 급료(給料)를 주어서 그 일을 마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자식이 부모의 상중에 있을 때 임금의 명령이 3년 동안 그 집에 이르지 않는 것은 천하 사람들에게 효를 가르치려는 것이다. 자신이 안위(安危)의 기관을 맡고 있어 국가의 경중(輕重)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본디 예법을 멸절하고 윤기(倫紀)를 무너뜨려 천하 만세에 죄를 얻게 해서는 안 되는데, 기타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뭐 있겠는가. 한교란 자는 미천한 말직의 일개 관리로 교련서(敎鍊書)를 번역하는 일은 본디 미세한 일이요, 부모가 한때에 함께 몰(歿)했으니 그 심정의 망극함이 어떻겠는가. 그런데 도감이 차마 이런 거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한교는 깊이 책할 것도 없지만 저 도감 당상(都監堂上)이야말로 유독 부모가 없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천륜(天倫)과 인기(人紀)가 날로 윤상(淪喪)되어 모두 금수와 이적(夷狄)같이 되어도 구제할 길이 없어서 문란하게 되는 원인이라 하겠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5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72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 / 윤리-강상(綱常)
○訓鍊都監啓曰: "郞廳韓嶠, (問)〔聞〕 千總 【敎師唐人, 失其姓名。】 在時, 將《紀效新書》, 專意學習, 頃令專掌撰出飜譯之事, 而渠有父母, 以病俱歿。 所任之事, 無復如嶠之盡解而能撰者, 請起復給料, 使之畢其役。" 傳曰: "依啓。"
【史臣曰: "子有父母之喪, 君命三年不過其門, 所以敎天下之孝也。 雖身任安危之機, 能爲重輕於國家者, 固不可蔑絶禮法, 斁敗倫紀, 以得罪於天下萬世。 其他則又何說? 韓嶠者賤末一官, 撰譯敎鍊, 固是細事。 父母俱歿於一時, 其情之罔極, 當復如何, 而都監忍爲是擧哉? 嶠也不足深責, 彼都監堂上, 獨無父母者耶? 此所以天倫、人紀, 日至淪喪, 貿貿如禽獸夷狄, 莫之救以亂也。"】
- 【태백산사고본】 30책 5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72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