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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51권, 선조 27년 5월 6일 계미 4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도원수 권율이 도총섭 유정이 가등청정 소굴에 다녀온 일을 아뢰다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이 치계하였다.

"유 도독부(劉都督府)가 신에게 되도록 적합한 사람을 가려서 가등청정(加藤淸正)의 소굴에 들여보내라고 하기에, 신이 도 총섭(都總攝)079) 유정(惟政)을 들여보냈는데 4월 17일에 돌아왔습니다. 그 별록(別錄)에 ‘청정유정을 보고 소서행장(小西行長)과 심유경(沈惟敬)이 서로 약속한 일에 대해 반복해서 말하기에, 유정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더니, 청정의 안색에 기뻐하는 빛이 돌았다.’고 하였습니다. 청정의 은미한 속뜻을 분명히 알 수 없으나 그의 언사(言辭)로 보건대, 행장의 의도하는 일이 성취되지 않아서 중국(中國)을 침범하는 거조가 있게 되면 청정행장과 관백(關白)을 함께 토죄(討罪)하여 창을 되돌려 치려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청정은 말할 적마다 ‘풍신수길(豊臣秀吉)은 왕이 아니다. 우리 왕은 따로 있다.’고 하였다는데, 그렇게 말할 때 힐문하기를 ‘이른바 왕이란 원씨(源氏)의 후예(後裔)를 지적하는 말인가, 아니면 일본에서 일컫는 황제(皇帝)를 지적하는 말인가?’ 하여 그의 말을 들어보았더라면 그의 뜻을 탐지할 수 있었을 것인데 유정원씨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정이 독부(督府)에 답한 편지에 ‘대명국(大明國) 유 도독부(劉都督府)께서 금강산(金剛山)의 대선사(大禪師)로 하여금 왕림하게 하였으니 한없이 기쁘다. 그리고 보내온 편지에 「유시(有始) 유종(有終)케 하라. 」한 훌륭한 말에 우리들은 한마음으로 기뻐할 뿐이다. 이제부터는 흉금을 남김없이 터놓고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 옛 선불(禪佛) 같은 분과 금석(金石)같은 교계(交契)를 맺게 되었으니 매우 다행한 일이다. 일이 정해진 뒤에 송운이 가서 하는 말이 있을 것이다. 조람(照覽)하기 바란다.’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5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65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079]
    도 총섭(都總攝) : 임진 왜란 때 승군(儈軍)의 우두머리.

○都元帥權慄馳啓曰: "劉督府令臣務擇可人, 入送淸正之窟, 臣令都摠攝臣(惟正)〔惟政〕 入送, 四月十七日, 還出來。 其別錄曰: ‘(淸正)〔淸政〕 惟正, 反覆言行長惟敬相約之事, (惟正)〔惟政〕 答以: 「事必不成」, 則淸正喜動於色’ 云。 淸正之微意, 雖不能的知, 而觀其言辭, 則若行長之事, 不成, 而有犯上國之擧, 則淸正聲罪行長與關白, 而欲反戈之意也。 淸正必稱: ‘秀吉非王也。 吾王有之云云。’ 當其時, 若詰問所謂王者, 指源氏之裔而云乎? 指日本所謂皇帝而云乎? 以此問之而聽其言, 則庶乎探得其意, 而(惟正)〔惟政〕 不知源氏之事, 而不能云。 淸正答督府書曰: ‘大明劉都督府。 令金剛山大禪師來臨, 喜悅喜悅。 然則來書中, 有始有終之昌言, 我等同心歡喜而已。 自今以往, 不遺胸襟, 相談可也。 古之禪佛, 雖卒忝金石交, 幸甚幸甚。 定而松雲有言語者也。 照覽。’"


  • 【태백산사고본】 30책 5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65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