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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49권, 선조 27년 3월 30일 무신 4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비변사에서 전라도 장수의 지휘 체계를 세울 것을 청하자 따르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경상 좌·우도의 제장(諸將)을 보면 좌도에 고언백(高彦伯)·김응서(金應瑞)·이사명(李思命)·권응수(權應銖) 등이 있고, 우도에 이빈(李薲)·박진(朴晉)·이시언(李時言) 등이 있으니 장수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단지 한스러운 것은 모든 장수의 명위(名位)와 작질(爵秩)이 대개 서로 동등하여 각기 호령(號令)을 천단(擅斷)하려 하고 형세를 협조하여 힘을 합하려는 마음이 없으므로 임기응변을 모두 그들의 뜻대로 하여 진격할 때 함께 진격하지 아니하고 패배하여도 서로 구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땔감을 구하는 소소한 적을 만나면 앞을 다투어 잡으려 하다가도 형세가 큰 적을 만나면 사방으로 흩어져 피하니 이런 때문에 적과 서로 대치한 지 2년 동안에 일찍이 한번도 기세를 꺾어 섬멸하는 공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군졸이 겁약(㤼弱)할 뿐만 아니라 실은 장수의 명령이 통일되지 못하고 군사의 힘이 합쳐지지 아니한 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지난날 적이 경성(京城)에 있을 때 고언백(高彦伯)·이시언(李時言)·정희현(鄭希玄)·박명현(朴名賢) 등이 모두 양주(楊州)에 모여 있었는데 신 성룡이 누차 전령하기를, 고언백이 인솔한 것은 모두가 양주 사람이므로 그 군졸로 초탐(哨探)을 하게 하고 모든 장수는 각기 인솔한 병사로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어 서로 진격하라 하니, 겨우 한번의 싸움에 죽이고 노획한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무릇 일이란 일만 사람이 합하여 한 마음이 된 다음에야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장수가 서로 굽히려 하지 아니하고 뜻이 같지 아니하면 마치 강이나 바다 가운데에서 배를 운행하면서 배를 조정하는 이가 하나는 남으로 가려 하고 하나는 북으로 가려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니 어찌 전복됨을 모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광필(李光弼)이나 곽자의(郭子儀)의 재주로도 아홉 절도사(節度使)가 한 곳에 모였는데 절제(節制)하는 사람이 없어서 무너져 흩어짐을 모면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병가(兵家)의 큰 금기인 것입니다. 신들이 오래 전부터 이러한 염려가 있어서 묵묵히 살펴보았으나 여러 장수가 모두 똑같을 뿐이고 통섭(統攝)할 만한 인재가 없으니 처치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제 김응서고언백의 장계를 보건대, 2월 14일에 김응서 등이 구법곡(仇法谷)에서 나오는 적을 공격하여 38명을 참수하였다 했고, 13일에는 고언백의 군사가 역시 구법곡으로 가서 여러 날을 엿보다가 역시 10여 명을 참하였다고 했으니, 이것은 같은 시기에 같이 동일한 진(陣)의 적을 공격하면서도 마치 서로 듣지도 알지도 못한 듯하여 매우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전일 도원수의 장계에서 이른 것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조금씩 흩어져 나오는 적이라면 오히려 이와 같이 하여도 공을 세울 수 있겠지마는 큰 부대의 적을 만나서 이와 같이 한다면 반드시 패배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잘 조처하는 것은 오로지 도원수에게 달렸으니 권율(權慄)에게 하유하여 충분히 잘 조처하여 호령을 분명히 하고 모든 장수가 화목하게 함으로써 동심 합력하여 함께 큰 공훈을 이루게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조정이 장수를 임명하는 것은 각기 명분이 있으니 순변사가 당연히 절제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방어사 이하의 여러 장수가 어찌 감히 스스로 그들의 뜻대로 하여 마치 양떼가 모인 것 같이 하겠는가. 오직 순변사에 적임자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습성이 이와 같이 되었고 또한 조정의 군율(軍律)이 엄하지 못한 소치이다. 마땅히 아뢴 대로 하서하고 조정은 다시 가일층 살펴서 반드시 장수에 적임자를 얻게 할 것이며 또 군율을 더욱 엄하게 하여 명령을 어기는 이와 머뭇거리는 이는 반드시 주벌(誅罰)하여 고식적인 습성에 흔들리거나 사사로운 말에 넘어가지 않게 한다면 다행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적은 속임수가 대단하고 군율도 삼엄한데 우리는 지혜도 모자라고 군율도 극히 해이하니 이것으로 보루를 마주 대하면 싸울 것도 없이 승패를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몰라서는 아니되는 것이므로 감히 망령된 말을 함으로써 비변사의 책략을 만에 하나라도 도우려는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49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43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備邊司啓曰: "慶尙左、右道諸將, 左道則有高彦伯金應瑞李思命權應銖等, 右道則有李薲朴晋李時言等, 將非不足。 只恨諸將名位爵秩, 大槪相同, 各欲自專號令, 而無協勢同力之心, 故臨機應變, 皆(壬)〔任〕 其意, 進不俱進, 敗不相救。 如遇樵採小賊, 則爭競恐後, 一見大勢之賊, 則四散退避, 以此與賊相持二年, 未嘗一立摧陷之功。 非徒軍卒怯弱, 實由於將令多門, 而軍力不齊也。 往時賊在京城, 高彦伯李時言鄭希玄朴名賢等, 皆聚在楊州, 臣成龍屢爲傳令, 以彦伯所率, 皆楊州之人, 故令以其軍哨探, 而諸將各以所率兵, 掎角互進, 僅得一戰, 而所斬獲甚多。 夫合萬人爲一心, 然後可以成功。 若使諸將, 不相上下, 而志不同行, 則如運舟於江海之中, 而操舟者一南一北, 其能免於覆敗乎? 雖以之才, 九節度同會一處, 而無節制之人, 則未免潰散, 此兵家之大忌。 臣等久有此慮而默察, 諸將皆等耳, 無可統攝之才, 難於處置。 今見金應瑞高彦伯狀啓, 則二月十四日, 金應瑞等, 進攻仇法谷出來之賊, 斬三十八級, 十三日彦伯之軍, 亦往仇法谷, 累日窺伺, 亦斬十餘級云。 此其同時同攻一陣之賊, 似若不相聞知, 殊爲可怪。 前日元帥狀啓之云, 不無所據。 如小小散出之賊, 則猶可如此而收功, 若遇大隊之賊而如此, 則必致失利。 此等約束善處, 專在於都元帥, 請下諭于權慄, 十分善處, 申明號令, 輯和諸將, 使之同心合力, 共濟大勳, 何如?" 答曰: "是則似不然。 朝廷任將, 各有名分, 巡邊使自當節制。 防禦使以下諸將, 何敢自用其意, 如群羊共聚? 惟其巡邊使者, 不得其人, 故習成如此, 而亦朝廷軍律, 不嚴之致也。 當依啓下書, 而朝廷更加致察, 必使將得其人, 而又申嚴軍律, 違令者必誅, 逗遛者必誅, 無爲姑息之習所撓, 徇私之言所奪, 則庶乎其得矣。 賊詐有餘, 而軍律至嚴; 我智不足, 而軍律極懈。 以此對壘, 不待交鋒, 而勝敗可卜矣。 此亦不可不知, 敢發妄言, 以助備邊之策於萬一。"


    • 【태백산사고본】 29책 49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43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