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감사 윤승길에게 군사 조련과 농사 권장에 힘쓰라고 하고 중국과 왜의 강화 교섭 과정 등을 듣다
상이 편전에 나아가 강원도 관찰사 윤승길(尹承吉)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은 부임하여 모든 일을 힘을 다하여 하고 군병을 조련하는 등의 일은 평안 감사를 본뜨도록 하라."
하니, 【이때 이원익(李元翼)이 평안 감사로 있었는데 백성이 매우 편안하게 여겼고 군사를 조련하는 일도 상의 뜻에 맞았으므로 특별히 표창하여 다른 사람의 표준이 되게끔 하였다. 】 윤승길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힘을 다하여 하려고 합니다마는 재주가 미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농경을 권장하는 것도 모름지기 힘을 써라."
하니, 승길이 아뢰기를,
"지금 가장 급한 일은 오직 군병의 조련과 농경의 권장인데 백성은 반드시 먹을 것이 있은 다음에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니 농경을 권장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것입니다. 본도는 평시에도 본래 잔폐(殘廢)한 지방인데 이 시기를 당하여 굶주려 죽은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 있으니 농경 등의 일이 더더욱 급합니다. 곡식 종자가 완전히 떨어진 곳은 신이 내려가서 마땅히 힘을 다하여 조치하겠습니다. 다만 군병을 조련하는 일은 비변사의 공사(公事)를 본다면, 포수(砲手)를 교련(敎鍊)할 숫자가 큰 고을은 2백 명, 중간 고을은 1백 명, 작은 고을은 50명으로 대략 나누어 정해져 있습니다. 이 숫자를 비록 일시에 갑자기 충당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만일 10명을 모집한다고 하면 마땅히 조총 열 자루가 있어야 하고 백 명이면 백 자루가 있어야 하는데 본도에는 지금 단 한 자루도 없다고 하니 기계(器械)를 준비하는 동안은 포수의 교련이 아마도 지연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난번 가등청정이 유 총병(劉摠兵)에게 【이름은 유정(劉綎)임. 】 보낸 글은 어떠한 내용이었는가?"
하니, 장운익(張雲翼)이 아뢰기를,
"왜적이 감히 중국 장수에게 중국을 침범하겠다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들으니 유 총병이 왜적에게 반간(反間)을 놓으려 한다 하였는데, 신의 생각으로는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여겼더니 이번에 과연 모욕을 당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비변사에서도 반간을 놓아 청정을 모해(謀害)하려고 한다 하기에 내가 일찍이 오활하다고 일렀다. 청정이 이번에 유 총병을 부를 적에 필시 ‘너’라고 하고 언사도 오만하였을 것이니 모욕됨이 크다."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옛사람의 말에 진평(陳平)이 비록 지혜가 있으나 어떻게 의심 없는 주인을 반간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으니, 둘 사이가 반드시 어긋난 다음에야 반간을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청정과 평행장(平行長), 또는 관백(關白)과의 상호관계가 부합되는지의 여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반간을 놓으려고 하였으니 어찌 이처럼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승지의 말이 옳다. 비변사는 반간을 놓는 일이 매우 중대한 관건이라고 하였지마는 나는 그것이 반드시 성공하지 못할 줄 알았다."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예로부터 강화란 반드시 대군으로 위압하여 우리가 저들을 제압할 형세가 있은 다음에야 화친의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대군이 철회했고 유 총병 역시 남원(南原)으로 옮겨 갔는데 왜적이 무슨 거리낄 것이 있다고 화친을 하고 싶어하겠습니까. 심유경(沈惟敬)이 비록 백 번 출입한다 하여도 반드시 유익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중국에서 단지 모욕만 당하였다. 또 왜서(倭書) 중에 ‘한 번 부르짖으면 백 사람이 응낙하니, 하늘이 낳은 바이며 땅이 기른 바이다.’라는 등의 말은 모두가 과장된 말이다."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신의 생각에는 주홍모(周弘謨)가 들어가지 못할 듯합니다. 심유경은 일개 간사한 소인으로 오가며 출입하여 천하의 일을 망쳐놓았고 또 우리 나라에 재앙을 재촉한 셈이니 지극히 통분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 사신 사헌(司憲)이 탄핵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사실인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아마 빈말일 것입니다. 다만 과도(科道)에서 경략(經略)과 제독(提督)을 논핵한 제본(題本)을 보니 언사가 준엄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략과 제독이 동서로 정벌하여 지위가 인신(人臣)의 극에 달했고 권세의 중함이 저와 같은데도 그렇게까지 논핵을 하니 중국 사람은 강직하다고 할 만하다."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중국의 여론이 이러하니 송응창(宋應昌)과 이여송(李如松)도 장차 온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병부(兵部)의 제본은 감싸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윤승길(尹承吉)에게 술을 하사하고, 또 이르기를,
"국가의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나의 죄이다. 감사는 잘 가서 더욱 마음을 다하라."
하니, 윤승길이 눈물을 흘리며 분부를 듣고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49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4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
○丙午/上御便殿, 引見江原道觀察使尹承吉。 上曰: "卿赴任, 凡事盡力爲之, 如鍊兵等事, 宜法平安監司可也。 【時李元翼爲平安監司, 民甚便之, 練兵等事, 亦稱上意, 故特褒之, 使爲他人標準也。】 承吉對曰: "竊欲竭力爲之, 而只恐才不(建)〔逮〕 也。" 上曰: "勸耕, 亦須勉之。" 承吉曰: "方今最急之事, 唯在鍊兵勸耕, 而民必有食然後, 可做他事, 則勸耕尤爲最急。 本道在平時, 素是凋殘之地, 而當此之時, 餓莩相望, 耕農等事, 尤宜汲汲。 種子全乏處, 臣下去, 當盡力措置, 但鍊兵一事, 以備邊司公事見之, 則砲手敎訓之數, 大邑二百名, 中邑一百名, 小邑五十名, 大槪分定矣。 此數雖不得一時遽充, 而若募得十名, 則當用鳥銃十柄, 百名則百柄, 而本道時無一柄云, 器械措備之間, 敎訓砲手, 恐或遲延。" 上曰: "頃者, 淸正送劉摠兵 【綎。】 之文, 何如?" 雲翼曰: "倭賊敢向天將, 至發犯上國之語。 臣曾聞劉總兵, 欲行間於倭賊, 臣意以爲不成, 今果取辱矣。" 上曰: "備邊司亦欲行間, 以害淸正云, 故予嘗下迂字矣。 淸正今稱總兵, 必曰汝, 而言辭慢, 爲辱大矣。" 雲翼曰: "古人有言, 陳平雖智, 安能間無疑之主哉? 兩間必牴牾然後可以行間矣。 今者淸正與平行長相合與否, 關(伯)〔白〕 相合與否, 皆不能知, 而敢欲行間, 安有如此齟齬之事哉?" 上曰: "承旨言是矣。 備邊司以爲行間之事, 機關甚大云, 而予則知其必不可也。" 雲翼曰: "自古講和, 必須大軍壓臨, 吾有制彼之勢, 然後始可以行和議, 而今則大軍撤回, 劉摠兵亦移南原, 倭賊有何所憚, 乃欲行和乎? 沈惟敬雖百番出入, 必無益矣。" 上曰: "然矣。 中原只受辱, 而且倭書中, 如一呼百諾、天之所生、地之所養等語, 皆是誇大之言也。" 雲翼曰: "臣意周弘謨, 恐不能入去也。 惟敬以一姦小, 往來出入, 敗壞天下事, 而又爲促禍於我國, 極爲痛憤。" 上曰: "司天使被論云, 然否?" 雲翼曰: "恐是虛語也。 但見科道, 論經略、提督題本, 則言詞嚴峻。" 上曰: "經略、提督, 東征西伐, 位極人臣, 權重如彼, 而論之至此, 中原人可謂直矣。" 雲翼曰: "中原物論如是, 宋、李將不得保全矣。 但兵部題本, 則似回護矣。" 上賜承吉酒, 且語曰: "國事(此如)〔如此〕 , 予之罪也。 監司好去, 更加盡心。" 承吉涕泣, 聽敎而出。
- 【태백산사고본】 29책 49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4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