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이 심유경에게 보내온 항복 표문의 등서 초본 내용
정원이, 심유경(沈惟敬)의 접반관(接伴官) 김윤국(金潤國)이 가져온 왜노의 항표(降表) 등서 초본(謄書草本)을 입계(入啓)하였다.
【초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만력(萬歷) 21년037) 12월 모일에 일본의 전 관백(關白) 신 평수길(平秀吉)은 참으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말씀을 올려 사례(謝禮)를 드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상성(上聖)의 널리 비추는 밝음은 아무리 미미한 것에도 다하지 않음이 없으시니 하국(下國)의 숨겨진 곡절을 저희 입으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비루한 정성이나마 펼쳐 우러러 천청(天聽)에 호소합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하늘이 일덕(一德)을 도우시어 날마다 사방을 다스리시니 황제가 건극(建極)하시자 양계(兩階)038) 에서 간우(干羽)로 춤추었고, 성무(聖武)를 밝히사 만국(萬國)의 먼 곳에 있는 사람까지 오게 하였습니다. 천은(天恩)이 넓고 넓어 먼곳의 창생(蒼生)에까지 미치니 멀고 미미한 일본이지만 모두 천조(天朝)의 적자(赤子)가 되었습니다. 여러 번 조선에 전하여 아뢰도록 부탁하였으나, 끝내 비밀히 숨겨두고 아뢰지 않았으니, 호소할 길이 없어 한을 품어 왔습니다. 부득이하여 원한을 맺었으니, 까닭이 없이 용병(用兵)한 것은 아닙니다. 또 조선은 거짓되게 마음을 먹고 신청(宸聽)을 거짓말로 번거롭혔지만, 만약 일본의 충정(忠貞)을 허여하셨다면 감히 왕사(王師)039) 를 칼날으로써 맞이하였겠습니까. 유격(遊擊) 심유경은 충고(忠告)도 하고 분명히 효유하여 평양(平壤)에서 양보하였고, 풍신수길(豊臣豊臣)과 소서행장(小西行長) 등은 정성을 바쳐 향화(向化)하여 경계를 넘지 않았습니다. 거짓으로 조선이 이간질함으로써 전쟁을 일으켰는데, 비록 우리 병졸이 죽고 다쳤지만 끝내 보복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왕경(王京)에서 심유경은 옛 헌장(憲章)을 다시 밝혔고, 일본의 여러 장수는 처음의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성곽(城郭)을 돌려주고 양초(糧草)를 바쳤으니 정성의 간곡함을 보여주었으며, 왕자를 보내고 강토(疆土)를 돌려주어 공순한 마음을 폈습니다. 지금 한 장수 소서비탄수(小西飛彈守)를 보내어 적심(赤心)을 진달하오니, 천조(天朝)에서 봉작(封爵)의 은사(恩賜)를 베푸시어, 일본의 나라를 진수(鎭守)하는 영광을 삼게 하소서.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일월(日月)과 같은 빛을 밝히시고 천지와 같은 도량(度量)을 넓히시어 옛날 예에 비추어 특별히 번왕(藩王)의 명호를 책봉(冊封)해 주소서. 신 수길은 지우(知遇)가 크고 아름다움에 감격했으니 정려(鼎呂)040) 가 더욱 무거웠고, 높고 깊은 큰 공덕에 보답함에 어찌 몸인들 아끼겠습니까. 대대로 번리(藩籬)의 신하가 되어, 길이 해방(海邦)의 공물을 바치겠습니다. 황기(皇基)가 천년토록 크게 드러나기 바라며, 성수(聖壽)가 만세토록 연장(延長)되기를 축원합니다. 신 수길은 하늘을 우러러 감격하고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표를 올려 아룁니다.". 】
전교하기를,
"이 글은 우리 나라 사람의 문법(文法)과 같은데 승지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하니, 정원이 회계하기를,
"이 문법과 체제는 분명 왜노가 지은 것은 아닌데 우리 나라 사람이 지은 것인지 중국 사람이 지은 것인지는 정확히 지적하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48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21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037]만력(萬歷) 21년 : 1593 선조 26년.
- [註 038]
양계(兩階) : 궁정의 동서 계단.- [註 039]
왕사(王師) : 중국의 군사.- [註 040]
정려(鼎呂) : 구정 대려(九鼎大呂). 즉 중국 고대의 보물로 중국 정통 왕조를 지칭하기도 함.○政院以沈惟敬接伴官金潤國所持倭奴降表謄書草, 入啓。 【倭表曰: "萬曆二十一年十二月日, 日本前關(伯) 〔白〕臣平秀吉, 誠惶誠恐, 頓首頓首, 謹上言稱謝者。 伏以, 上聖普照之明, 無微不悉; 下國幽隱之典, 自求則鳴。 玆瀝卑悰, 佈干天聽。 恭惟皇帝陛下, 天祐一德, 日靖四方。 皇建極, 而舞干羽于兩階; 聖武昭, 而來遠人于萬國。 天恩浩蕩, 遍及遐邇之蒼生; 日本獻微, 咸作天朝之赤子。 屢托朝鮮以轉達, 竟爲秘匿而不聞。 控訴無門, 飮恨有(自)。 不得已而搆怨, 非無謂而用兵。 且朝鮮詐僞存心, 乃爾虛瀆宸聽; 若日本忠貞自許, 敢爲迎刃王師。 遊擊沈惟敬, 忠告諭明, 而平壤願讓; 豊臣行長等, 輸誠向化, 而界限不逾。 (詐)〔詎〕 謂朝鮮反間, 搆起戰爭? 雖致我卒死傷, 終無懷報。 第王京惟敬, 舊章復申; 日本諸將, 初心不易。 還城郭獻芻糧, 益見輸誠之悃; 送儲臣歸土地, 用伸恭順之心。 今差一將小西飛彈守, 陳布赤心, 貲得天朝龍章賜, 以爲日本鎭國恩榮。 伏望陛下, 廓日月照臨之光, 弘天地覆載之量, (此)〔寵〕 照舊例, 特賜冊封藩王名號。 臣秀吉, 感知遇之洪休, 增重鼎呂; 答高深之大造, 豈愛髮膚? 世作藩籬之臣, 永獻海邦之貢。 祈皇基丕著於千年, 祝聖壽延綿於萬歲。 臣秀吉, 無任瞻天仰聖激切屛營之至, 謹奉表以聞。"】 傳曰: "此書, 如我國人文法, 承旨所見如何?" 政院回啓曰: "此文法體製, 明非倭奴所爲, 我國與天朝人所爲, 則似難的指矣。"
- 【태백산사고본】 28책 48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21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