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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48권, 선조 27년 2월 2일 신해 2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왜가 중국에 봉함과 공물 바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님을 중국에 알리게 하다

전교하기를,

"왜노(倭奴)가 중국에 조근(朝覲)하지 않은 지 오래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정삭(正朔)을 만들고 참람하게 연호(年號)를 고쳐 일출국 황제(日出國皇帝)니 일락국 황제(日落國皇帝)라고 칭하였다. 지난해 평양에서 심유경(沈惟敬)을 대할 때에도 동황제(東皇帝)니 서황제(西皇帝)니 하는 설이 있었으니, 그 패역 무도함이 이와 같다. 개벽 이래로 중국에 봉(封)함을 받기를 청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는데 어찌 오늘에 와서 봉함을 받기를 구하고 공물(貢物) 바치기를 구할 리가 있겠는가. 중국에서는 이런 사설(邪說)에 현혹되어 고식적으로 강화를 하고자 하여 후세의 환란을 돌아보지 않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 중에도 공물 바치기를 요구하는 설을 그들의 진심이라고 의심하는 이가 있는가? 나는 변란 전부터 전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근일 전후 고급(告急)하는 자문에 흉적들의 계책과 형세를 강력하게 진술하기는 하였으나 가장 긴요한 부분은 미처 설파(說破)하지 못한 듯하다. 이제 이로써 주제를 삼아 그들의 진정이 아님을 반복해서 설파하여 척 장군에게 이자하거나 혹은 뒤따라 고 시랑(顧侍郞) 이하에게 이자하기도 하여 만에 하나라도 의혹을 돌리게 하여야 한다."

하니,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삼가 비망기(備忘記)를 받들건대, 왜정(倭情)이 반측(反側)하여 조근(朝覲)하지 않는 정상에 대한 말씀은 지극히 윤당합니다. 우리 나라가 왜적들과는 한갓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일 뿐만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이적(夷狄)이란 가장 흉악하고 교사스러워 한번 크게 징계하지 않고서는 성심으로 귀부(歸附)하도록 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왜적은 지극히 포악하여 조종(操縱)하고 신축(伸縮)하는 권리가 중국에 있지 않은데, 봉공(封貢)을 미끼로 삼고 있으니 봉공이 이루어지면 왜적은 반드시 다른 일로써 요청할 것이므로 강화가 성립되지 않을 것은 환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저 송응창(宋應昌)은 이미 바뀌었고 새로운 총독(總督)이 와서 군무(軍務)를 다스리니 할 말이 있다면 무엇을 꺼려 하지 못하겠습니까. 전교(傳敎)한 뜻으로 시랑과 무안(撫按)의 아문(衙門)에 이자하고, 척 장군은 지금 이곳에 있으니 이자할 필요없이 이덕형(李德馨)으로 하여금 면대하여 아뢰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4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14면
  • 【분류】
    외교-왜(倭) / 외교-명(明)

○傳曰: "倭奴之不庭於中國久矣, 自爲正朔, 僭號改元, 稱之以日出國皇帝、日落國皇帝。 上年在平壤, 對沈惟敬, 有東皇帝、西皇帝之說。 其悖逆無道如此。 開闢以來, 未聞請封於中國。 寧有到今求封求貢之理? 中國惑於邪說, 姑息講和, 不顧天下後世之患。 我國之人, 亦或容有以求貢之說, 疑其眞心哉? 予則自變前, 以爲決無此理。 近日前後告急咨文, 力陳兇謀賊勢, 非不至矣, 而似不及於說破, 最是頭腦處。 今宜以此爲主, 反覆說破非其眞情, 或移咨於戚將, 或追後移咨於顧侍郞以下, 以冀回惑於萬一。" 備邊司回啓曰: "伏承備忘記, 情反側不庭之狀, 極爲允當。 我國非徒與此賊, 有不共戴天之讐。 自古夷狄, 最爲兇狡, 非一大創之, 難得其款附。 今則賊方桀逆, 操縱伸縮之權, 皆不在中國, 而欲以封貢爲餌, 賊旣得封貢, 必欲以他事爲要, 其不可成明矣。 大抵宋應昌旣遞, 得新總督, 來理軍務, 凡有所言, 何憚而不爲? 以傳敎之意, 移咨於侍郞、撫按衙門, 戚將則方在此處, 不必移咨, 令李德馨, 面見極陳。" 答曰: "依啓。"


  • 【태백산사고본】 28책 4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14면
  • 【분류】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