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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46권, 선조 26년 12월 29일 무인 2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병조 판서 이덕형이 중국군의 동태와 김덕령에게 일면의 방어를 맡길 것 등을 아뢰다

병조 판서 이덕형(李德馨)이 아뢰기를,

"신이 어제 저녁에 소응충(邵應忠)을 만나보고 ‘오(吳)·낙(駱) 두 장수가 무슨 이유로 돌아갔으며 유 총야(劉總爺)가 돌아가도록 허락한 것인가?’고 물었더니 【오유충(吳惟忠)·낙상지(駱尙志)이고 유총야는 유정(劉綎)이다. 】 답하기를 ‘석야(石爺)에게서 【석성(石星). 】 남쪽 병사들이 오래도록 수자리사느라 노고가 많았다는 이유로 철병하라는 문서가 왔었다. 그러므로 각 군대가 성급히 돌아갈 마음을 품고 흩어져 팔거(八莒)로 돌아왔는데, 이에 대해 유 총야만 고민했을 뿐이 아니라 · 두 장수도 고민하였으나 금지시킬 수가 없었다. ·의 군대가 팔거에 있다가 충주(忠州)에 도착해서는 3∼4일을 지낸 다음 바야흐로 서울로 들어갈 것이다. 대체로 평양성을 공격한 뒤 남쪽 병사들의 공로가 많았는데도 상을 받지 못하여 사람마다 분한을 품은 탓이다. 경략(經略)은 【경략은 송응창(宋應昌)이다. 】 이미 떠나갔고 고 시랑(顧侍郞)이 【고양겸(顧養謙). 】 그를 대신하여 나와 지금 영평(永平)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군대를 조련시키고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진주경주는 경상도 동서(東西)의 웅진(雄鎭)이어서 전라도진주가 공고해야 미덥게 되고 강원도경주가 보장(保障)이 된다. 그런데 적이 이미 진주를 함몰시키고 근래 또 경주를 침범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버티면서 적을 막는 데 있어서는 오직 중국군만을 믿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모두 철병하여 왜적이 멋대로 짓밟게 하니 유 총야는 이해(利害)의 소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하니, 답하기를 ‘불행한 경우가 많아서 유 총야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각 군대가 이미 돌아갔으니 5천의 군대로 【유정(劉綎)이 5천의 군대를 거느리고 팔거(八莒)에 있었다. 】 어떻게 홀로 팔거를 지킬 수가 있겠는가.’ 하고 또 ‘심 유부(沈遊府) 【심유경(沈惟敬)임. 】 이미 왜영(倭營)으로 들어갔으니 며칠 지나면 통보가 올 것이다. 다만 왜적이 남쪽 군대가 물러갔다는 것을 알고 더욱 독을 부릴까 우려된다.’ 하였습니다. 중국군이 돌아가고부터 왜적이 과연 경주를 침범한다면 죽령(竹嶺) 이하와 강원도 연해(沿海)에는 적을 막을 형세가 전연 되어 있지 않습니다. 급속히 제장(諸將)에게 하서하여 정병(精兵)을 초발, 입방(入防)하게 하소서. 그리고 김덕령(金德齡)의 군대가 거의 3천여 명이나 되는데 기마병(騎馬兵)이 날래고 건장하여 군용(軍容)이 매우 성대하다고 합니다. 이는 사체가 매우 중대한 것인데도 수신(帥臣)이 아직 계품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관원을 파견하여 군용을 살펴보고 호령을 시행하여 스스로 일면(一面)을 감당하게 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단 영상(領相)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으니 속히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46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198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군사-특수군(特殊軍) / 외교-왜(倭) / 외교-명(明)

    ○兵曹判書李德馨啓曰: "臣昨夕, 見邵應忠問: ‘兩將, 何故撤回, 劉總爺許其還耶?’ 【吳惟忠、駱尙志。 劉總爺 劉綎也。】 答曰: ‘ 【石星也。】 以南兵久戌勞苦, 曾有撤兵文書。 各兵徑動歸思, 散還八莒, 不獨劉總爺爲悶, 兩將, 亦以爲悶, 不能禁。 則在八莒, 兵已到忠州, 過三四日, 方入京城。 大槪平壤攻城之後, 南兵功多, 而不得賞, 人懷憤惋。 經略 【經略, 宋應昌也。】 已去, 而顧侍郞 【顧養謙也。】 換他來, 方住永平加調兵矣。’ 臣言: ‘晋州慶州, 爲慶尙道東西雄鎭, 而全羅晋州爲固, 江原慶州爲障, 而賊旣陷晋州, 近又侵犯慶州, 本國支撑隄備者, 獨唯天兵是(籍)〔藉〕 耳, 一朝盡爲撤回, 任其呑噬, 劉總爺其不念利害之所在耶?’ 答曰: ‘事多不幸。 劉爺亦無奈何。 各兵旣回, 則五千之兵, 【劉綎率五千兵, 在八莒。】 亦安能獨守八莒?’ 且言: ‘遊府 【沈惟敬也。】 已入營, 過近日方有來報。 但慮賊知南兵之退, 益肆其毒’ 云云。 天兵徑自潰還, 賊果犯慶州, 則竹嶺以下及江原沿海, 蕩然無遮截之勢。 急速下書諸將, 調精兵入防。 且金德齡軍, 幾三千餘名, 騎馬驍健, 軍容甚盛云。 此事體重大, 而帥臣等未有稟處。 亦當遣官觀軍, 立號施令, 使之自當一面。 敢啓。" 傳曰: "依啓。 但領相不可不知, 斯速議啓。"


    • 【태백산사고본】 27책 46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198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군사-특수군(特殊軍)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