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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46권, 선조 26년 12월 24일 계유 6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비변사에서 기민 구제와 봄에 파종할 곡식 종자 마련책을 진달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근래 중외의 백성들이 날마다 기한(飢寒)으로 인해 죽어가는 것이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경성의 안팎에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도로에도 즐비하게 쓰러져 있습니다. 한강(漢江) 이남인 충청·경상 등도에는 갈수록 더욱 극심한데 이미 옮겨올 곡식도 없고 또 백성을 옮겨다 구제할 방책도 없습니다. 그리고 내년 봄의 종자(種子)와 농량(農糧)을 마련할 길이 없어 민생이 다 죽어 없어지게 되었으니 이렇게 민망하고 급박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들리는 바에 의하면 대구유 총병(劉總兵)이 주둔한 곳에는 원근의 기민이 떼 지어 모여들었고 굶어 죽은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여 아무리 구덩이를 파고 묻어도 처리해 낼 수 없다고 합니다. 생민이 다 없어지면 무엇으로 나라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반복하여 생각해보아도 구황할 방책을 세울 길이 없습니다.

경성의 다섯 군데 진제장(賑濟場)에 호조에서 지급하는 곡식이 하루에 15석(石)인데 1인당 3홉씩으로 죽을 쑤어 먹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있는 서리배(胥吏輩)가 이 곡식을 횡령하는 폐단이 없지 않아서 그 숫자가 이미 모자라는 형편이고, 죽을 쑬 때 관원(官員)이 조금만 살피지 않으면 물을 너무 많이 타고 또 잘 끓이지도 않기 때문에 나아와서 먹고 있던 기민이 며칠 사이에 모두 귀신의 형상이 되어 차례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초봄에 역질(疫疾)이 겹치게 되면 진제장에 있는 백성들은 살아 남을 자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5석이면 1인당 3홉씩으로 7천 명을 먹일 수가 있는데 다섯 군데 진제장의 기민의 숫자가 대체로 이 선을 넘지 않는다. 그러니 죽을 쑤어 주지 말고 쌀로 3홉씩 기민에게 나누어 지급하여 스스로 지어 먹게 한다면 하리(下吏)들이 도둑질하는 폐단이 없어 사람들이 모두 연명(連命)할 수 있게 될 것이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방의 수령들은 중국군의 조달에 급하여 기민의 진구에는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기 때문에 기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익히 보면서도 구활(救活)할 생각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대관(臺官)이나 시종(侍從) 가운데 성심으로 백성을 사랑하여 상의 뜻을 본받을 수 있는 사람 하나를 급히 파견하여 충청도경상도 일로(一路)의 기민의 형편을 살피게 하고, 겸하여 둔전에 곡식 종자를 옮기는 등의 일도 살피게 하소서. 그리고 기민 가운데 사족(士族)이나 기타 백성으로서 기력이 다하지 않아서 다른 고을로 옮겨 갈 수 있는 자에게는 양식을 지급하여 충청·전라 등도로 나누어 보내어, 각 고을로 하여금 그 고을의 재력에 따라 2∼3구(口)나 4∼5구씩을 관가(官家)에 두어 부양하게 하고, 나머지는 인리(人吏)나 품관(品官)·민호(民戶)를 막론하고 생계(生計)가 조금 넉넉한 집에 구제 대상 인구를 계산하여 분배하되, 많아도 3구를 넘지 않고 적어도 1∼2구는 구호하도록 지성으로 효유하여 보리가 익을 때까지 형편에 따라 구활하게 하소서. 그 가운데 힘을 써서 진구한 자는 특별히 치부(置簿)하여 계문하여 논상하게 하고, 부지런히 힘쓰지 않아 죽게 만든 자는 각기 그 경중에 따라 죄주게 하소서. 공천(公賤)이나 사천(私賤)으로서 의지할 데가 없는 자는 이들을 진구하는 사람에게 입안(立案)696) 을 제급하여 부릴 수 있게 하소서. 부민(富民) 가운데 측은한 마음에서 사재(私財)를 많이 내어 기민을 구활한 것이 수십 명 이상인 자에게는 납속례(納粟例)에 따라 계문하여 직(職)을 제수하겠다는 뜻을 알리고 권유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황해도평안도도 이 예에 따라 조처하는 것이 온당합니다.

경상도는 명년의 종자를 반드시 미리 지급한 뒤에야 농사를 지어 내년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도내(道內)의 상주(尙州)·금산(金山)·개령(開寧)·선산(善山) 등의 고을은 충청도좌도(左道) 중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읍의 곡식 종자를 벼·기장·피·조·옥수수·콩·팥을 막론하고 옮겨다가 제급하고, 본 고장의 백성이 실어다 주기 어려우면 잔패된 지방의 백성으로 하여금 각기 힘닿는 대로 가지고 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을의 수령은 특별히 토지를 가려서 백성에게 할당하여 주어 농사짓도록 하게 하소서. 성주(星州)인동(仁同) 등처는 전라도와 조금 가까우니 또한 전라도로 하여금 종자를 제급하기를 상주 등의 예와 같이 하게 하소서. 그 밑으로 고령(高靈)·합천(陜川) 이하는 금년 농사가 제법 잘 되어 완전히 버리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단지 그곳 수령이 마음을 다하여 권장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이것 모두가 사명(使命)을 받들고 내려가는 자의 임무이니 이 뜻을 해조(該曹)가 급속히 조처하여 그 시기를 잃지 않게 하여야 조금이나마 기민을 구제할 길이 있게 될 것이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매우 온당하니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46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94면
  • 【분류】
    구휼(救恤) / 농업-전제(田制)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註 696]
    입안(立案) : 청원(請願)에 의하여 관에서 인가(認可) 또는 인증(認證)하는 일.

○備邊司啓曰: "近來, 中外之民, 迫於飢凍, 逐日死亡者, 不計其數。 京城內外, 積尸如山, 道路之上, 枕(籍)〔藉〕 僵仆。 漢江以南忠淸慶尙等處, 愈往愈甚, 旣無移粟之處, 又無移民之策。 明春種子、農糧, 辦出無路, 生類將盡, 安有如此悶迫之事乎? 傳聞大丘 劉總兵駐軍處, 遠近飢民, 分集闐擁, 餓殍滿野, 雖掘坎埋置, 而猶不勝埋云。 生民都盡之後, 又何以爲國? 反覆深思, 救荒之策, 固無所出。 但京城五場, 戶曹所給, 則一日十五石, 人給三合作粥, 而中間不能無吏胥輩, 減剋乾沒之弊。 其數已耗? 而作粥之時, 官員少失照管, 則和水太多, 且不成熟, 飢民就食者, 數日間皆爲鬼形, 次第以死。 春初重以疾疫, 則場內之民, 殆無僅存者矣。 或言十五石, 人給三合, 則當餉七千人。 五場飢民之數, 大槪不過如此。 若不作粥, 只以米合, 分給飢民, 使自爲食, 則無下吏偸竊之弊, 人人皆可得(連)〔延〕 命矣。 且外方守令, 只以調度天兵爲急, 無暇念及於賑濟, 熟視其死, 而無意救活。 臣等之意, 急遣臺侍中誠心愛民, 能體上意者一人, 巡視忠淸慶尙道一路飢民, 察其形止, 兼察屯田、穀種移轉等事; 飢民中士族及他民之氣力未盡, 可以移就他州者, 給糧分送于忠淸全羅等道, 使各邑隨其邑力, 留養二三口, 或四五口於官家, 餘則勿論人吏、品官、民戶, 於稍實之戶, 計口分授, 多不過三口, 小則一二, 至誠曉諭, 限麥熟, 隨便救活; 其中用力賑救者, 別爲置簿, 啓聞論賞, 其不勤而致死者, 各以輕重罪之; 其公私賤, 無依止者, 聽其賑救, 而仍給立案, 使之使喚, 富民之中, 如有存心惻隱, 多出私財, 救活飢民, 至於十百以上者, 從納粟例, 啓聞除職之意, 知委勸諭施行。 黃海平安道, 亦依此, 處置爲當。 至於慶尙道, 明年種子, 亦必預爲措給, 然後可以耕墾, 而爲嗣歲之計。 道內尙州金山開寧善山等邑, 則以忠淸道左道完邑穀種, 勿論稻黍、稷粟唐黍、大ㆍ小豆, 推移題給。 若本處之民, 難於輸運, 則令殘敗地方之民, 各隨其力取去。 其邑守令, 另爲擇其原隰, 勸課耕耘, 星州仁同等處, 則與全羅稍近, 亦令全羅道, 題給種子, 如尙州之例。 下此而高靈陜川以下, 則今年農事頗稔, 不至全棄, 只在其處守令盡心勸課而已。 此皆奉使下去者之任, 此意請令該曹, 急速處置, 無失其時, 庶有一分救民之路。 敢啓。" 答曰: "甚當。 依啓。"


  • 【태백산사고본】 27책 46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94면
  • 【분류】
    구휼(救恤) / 농업-전제(田制)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