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46권, 선조 26년 12월 3일 임자 7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비변사에서 전라도 각지의 산성을 수축하여 들어가서 지키게 하도록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일 전라 감사 이정암(李廷馣)의 장계에 의하면, 도내의 산성을 살펴보니 남원(南原)교룡 산성(蛟龍山城), 담양(潭陽)금성 산성(金城山城), 순천(順天)의 건달 산성(乾達山城), 강진(康津)수인 산성(修仁山城), 정읍(井邑)입암 산성(笠巖山城)이 모두 천험(天險)의 요새로 되어 있어 난을 당하여 화를 피하는 데는 이보다 좋은 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입암 산성이 제일 훌륭한 천험인데, 고성(古城)을 수축하는 데는 인력이 많이 들지도 않고 또 도내(道內)의 중앙에 관애(關隘)를 이루고 있으므로 힘을 합하여 지킨다면 하도(下道)의 적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대소(大小) 인민이 모두들 이를 수축하여 호남(湖南)의 보장(保障)으로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는 삼국 시대에서 고려 말기에 이르기까지 외환(外患)이 그치지 않아서 전쟁이 말할 수 없이 많았는데도 지탱하여 보수(保守)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산성의 이로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옛사람들은 환란을 대비함에 있어 이 일에 제일 관심이 깊었었는데 태평이 계속된 이후로는 전혀 축설(築設)하지 않았기 때문에 흉적들이 한번 일어나면 승승장구하여 이르는 곳마다 붕괴되어, 흩어져 달아난 인민들마저도 몸을 숨길 곳이 없어 모두 적의 칼날에 죽게 하였으니, 말하기에도 참혹합니다.

대저 적이 믿고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오직 철환(鐵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의 평지에 있는 성은 거개가 낮기 때문에 적이 비루(飛樓)를 타고 성안을 넘겨다보면서 조총(鳥銃)을 난사, 성을 지키는 군사로 하여금 머리를 내놓지 못하게 한 다음, 용력있는 적이 긴 사다리와 예리한 칼을 가지고 성첩(城堞)을 타고 곧바고 올라와 대초(大鍬)로 성을 파괴하곤 합니다. 그래서 성을 지킬 수가 없는데 진주(晉州)에서의 경우도 그러했습니다. 산성의 경우는 높이 반공(半空)에 솟아 있으므로 비루가 있다 해도 쓰기가 어렵고, 올려다보고 조총을 발사해도 곧바로 올라갔다가 도로 떨어지게 되므로 적의 장기(長技)가 모두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아군이 궁시(弓矢)나 석거(石車)로 위에서 마구 물 붓듯이 쏘아대면 비록 원숭이 같이 날렵하더라도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인천 산성(仁川山城)·구월 산성(九月山城)·미타 산성(彌陀山城)·행주 산성(幸州山城)의 싸움에서 모두 지리적인 험요(險要)를 이용하여 승리를 획득한 것입니다.

지금도 곳곳에 지형을 선택하여 산성을 쌓은 다음 백성을 인솔하여 들어가 보전하게 하고, 공사(公私)의 저축을 모두 모아다가 그 가운데 적치하게 함은 물론 들을 깨끗이 비운 상태에서 적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적이 올려다보면서 공격해 와도 번번이 패배할 것이고, 또 들에는 노략질할 것이 없어 군량을 대기가 어렵게 되면 반드시 우물쭈물하다가 물러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패주하는 때를 이용하여 각진(各陣)에서 정예병을 출동시켜 적의 앞뒤를 단절하기도 하고 혹은 귀로(歸路)에서 요격하기도 하는 등 공격한다면 몇 번 하지 않아 적의 기세는 절로 쇠약해지고 아군은 절로 사기가 진작될 것입니다. 오늘날 적을 막는 방책은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인심(人心)이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아 온갖 일이 폐이(廢弛)되어 비록 시행할 만한 계책이 있어도 조처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정암의 말도 혼자의 의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역시 본도의 인정을 인하여 이렇게 아뢴 것이 틀림없습니다. 말한 바 교룡 산성남원에서 5리(里) 안에 있습니다. 남원에는 원래 성이 있고 낙 참장(駱參將)이 새로 수축한 것도 굳게 지킬 만하니, 산성에서 마주 대하여 함께 지킨다면 더욱 적이 감히 침범해 오지 못할 것입니다. 금성 산성은 전에 이성임(李聖任)이 수축하였고, 입암 산성은 장성 현감 이귀(李貴)가 거의 다 수축했습니다. 건달 산성수인 산성 또한 이 예에 의해 수축하게 하고 미리 근처의 인민들에게 알려 만일 적변이 발생하면 제때에 들어가 보전하여 기필코 지키도록 계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도내에 민력(民力)이 바야흐로 고갈되어 성을 수축하는 역사에 다시 민력을 쓸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귀가 도내의 승려들을 동원하여 편의에 따라 역사를 끝마치려 한다는데 이 계책이 매우 온편합니다. 이정암에게도 이 예에 의해 시행하게 하되 역사가 끝나거든 계문(啓聞)하게 하소서. 기타 동복 산성(同福山城)·옹성 산성(甕城山城) 등도 또한 이렇게 순차적으로 수축하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장성 현감 이귀는 유생(儒生)으로서 도임한 지 오래지 않았는데도 군사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조하는 등 조처가 제대로 되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즐겨 따른다고 합니다. 모든 일은 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지 진실로 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이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귀의 일은 매우 가상한 것이니 상을 논하여 포장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권면시켜야 될 것 같습니다. 도내의 여러 고을에도 이런 내용으로 신명(申明)하여 계칙(戒飭), 모두 이귀가 한 것처럼 각기 본읍의 군사를 초발하여 성심껏 훈련시키되, 조총을 가르치기도 하고 궁시를 익히게 하기도 하여 조처에 방도가 있게 되면 백성이 수고롭지 않고도 일이 제대로 될 것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전라도 관찰사에게 하유하여 예에 따라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귀의 일은 매우 가상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일은 비록 사람들의 기림이 있어도 실효가 없는 경우가 있으니, 실상이 드러난 후에 포장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46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178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재정-역(役) / 사상-불교(佛敎) / 인사-관리(管理)

○備邊司啓曰: "前日全羅監司李廷馣狀啓, ‘道內山城看審, 則南原 蛟龍山城潭陽 金城山城順天 乾達山城康津 修仁山城井邑 笠巖山城, 皆天設之險, 臨亂避患, 莫過於此。 其中笠巖, 最爲險絶, 古城修築, 不至多費人力。 且在一道之中, 作爲關隘, 合力把截, 則下道之賊, 不敢長驅, 大小人民, 皆願修築, 以擬湖南保障’ 云。 我國自三國, 以至高麗之季, 外患相尋, 干戈糜爛, 而猶能支撑保守者, 只是有山城之利。 古人慮患之意, 此爲最深, 而昇平以後, 全不設築, 使兇賊一擧長驅, 到處奔潰, 人民之散走者, 亦無藏身之處, 盡陷於鋒刃, 言之慘酷。 大抵賊之所恃而長勝者, 惟在鐵丸, 我國平地之城, 類多低淺, 賊以飛樓, 俯瞰城中, 亂放鳥銃, 使守城之軍, 不敢出頭, 而勇力之賊, 持長梯利刃, 攀堞直上, 或以大鍬毁城。 因此城不能守, 晋州之事是也。 若山城, 則高在半空, 雖有飛樓, 難可得施, 仰放鳥銃, 直上下還下, 賊之長技, 皆無所用, 而我軍或以弓矢, 或以石車, 自上滾放, 則賊雖有猿猱之捷, 將無奈我何。 惟其如是, 故仁川山城九月山城彌陀山城幸州之戰, 皆以地險取勝。 今若處處擇其地形, 修築山城, 督民入保, 盡聚公私儲畜, 置諸其中, 淸野以待, 賊仰而攻之, 輒見敗北, 野無所掠, 糧餉難繼, 必逡巡自退。 乘其退北之際, 各陣出其銳師, 或截其前後, 或邀其歸路, 如此不過數番, 賊氣自衰, 而我軍自振。 今日禦敵之策, 無過於此, 所患人心不能慮遠, 百事弛廢, 雖有可行之策, 而無意措置耳。 今此李廷馣之言, 非但出於獨見, 亦必因本道人情而有是啓。 所稱蛟龍山城, 在南原五里之內。 南原元有城子, 新經駱參將修築, 亦當爲堅守, 而又有山城, 相對共守, 則賊益不敢來犯。 至於金城山城, 前爲李聖任所修; 笠巖山城則, 長城縣監李貴, 幾盡修築。 乾達修仁二城, 亦當依此修築, 預爲知委近處人民, 如有賊變, 使之登時入保, 爲必守之計。 但道內民力方竭, 築城之役, 不可更用民力。 聞李貴, 欲以道內僧人, 隨便畢役, 此計甚便。 令李廷馣依此施行, 待其役畢啓聞, 而其他同福 瓮城等處, 亦一樣次第修設爲當。 長城縣監李貴, 以儒生, 到任未久, 訓鍊士卒, 製造器械, 處置得宜, 民皆樂從云。 凡事患不爲耳, 苟爲之, 必有利益。 李貴之事, 極爲可嘉, 似當論賞褒奬, 以勸其餘。 道內諸邑, 亦以此意, 申明戒飭, 皆做李貴所爲, 各抄本邑之兵, 誠心訓鍊, 或敎鳥銃, 或習弓矢, 處置有方, 則民不勞而事集矣。 請以此下諭于全羅觀察使, 遵依施行。" 答曰: "依啓, 李貴事, 極爲可嘉。 但我國事, 雖有人譽, 未見實效, 姑驗其實, 隨後褒奬。"


  • 【태백산사고본】 27책 46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178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재정-역(役) / 사상-불교(佛敎)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