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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45권, 선조 26년 윤11월 22일 임인 4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유성룡·윤두수·심충겸이 유 총병을 면담한 일을 보고하다

영의정 유성룡, 좌의정 윤두수, 병조 참판 심충겸이 아뢰기를,

"신들이 유 총병을 뵙고 말하기를 ‘국왕이 어제 노야(老爺)를 모셨을 때에는 조용히 대하지 못하였으므로, 오늘 신들을 시켜 노야 앞에 이르러 다시 가르침을 구하게 하셨다.’ 하니, 총병이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일곱 달 동안 합천(陜川)에서 노야를 모시면서 적의 정세를 대략 알고 올라온 뒤로는 적의 정세가 어떠한지 모르겠다.’ 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적의 정세는 전일과 마찬가지이나, 오늘 낙 참장(駱參將)636) ·오 유격(吳游擊)637) ·왕 유격(王游擊)의 문보(文報)에 「왜적 5∼6천 명이 경주(慶州)에서 50리 떨어진 곳에 와 주둔하였다. 」고 하였는데, 긴급한 변이 있다면 내일이라도 비보(飛報)가 올 것이다. 오면 보이겠으나, 오지 않으면 그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말하기를 ‘왜구가 창궐한 지 이제 이미 이태가 되어 군사가 지치고 인력이 다하였으므로, 소방은 끝내 저항할 수 없으니, 노야가 격멸할 방책을 분부하기 바란다.’ 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내가 귀국을 위하여 긴급한 이해(利害)를 적어 경략(經略)의 아문(衙門)에 보낸 것이 87번인데, 다 온당치 않다 하여 주달(奏達)하려 하지 않고 여러 번 패표(牌票)를 보내어 왜적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니, 내가 어떻게 격멸할 것을 주장하겠는가. 내 뜻대로 하게 한다면 적을 격멸하기가 어렵지 않으나, 다 경략에게 견제되어 중지되니, 어찌하겠는가. 오늘날의 일은 국왕과 대신들의 자강책(自强策)에 달려 있으니, 한편으로는 군사를 뽑아 훈련하고 한편으로는 충렬(忠烈)한 배신(陪臣)을 보내어 황상(皇上)께 간청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말하기를 ‘오랜 시일을 버티어 군사가 기진하고 양식이 떨어지면 소방은 공격을 받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이니, 소방이 팔도의 정병을 찾아 모아 노야를 도와서 한 모퉁이를 공격하고자 한다.’ 하였더니, 총병이 말하기를 ‘그대 나라의 군사는 용맹이 없고 기계(器械)도 없는데 어떻게 적을 공격할 수 있겠는가.’ 하기에 신들이 말하기를 ‘서북의 군사는 달노(㺚奴)638) 와 잇닿아서 싸움에 익숙한지라, 뽑으면 1만여 명의 군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 수만의 군사를 합하여 노야의 용맹한 군사와 협력하여 함께 공격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나는 주장할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하였습니다.

신들이 말하기를 ‘노야가 천사와 서로 이야기하였는데, 천사의 뜻은 어떠하던가?’ 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이번 천사는 단지 선유(宣諭)만 하러 온 것이 아니고, 경략(經略)·제독(提督)이 전에 국왕을 논한 적이 있었으므로 조정에서 특별히 이 행인(行人)을 보내어 국왕이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와 세자의 현부(賢否) 및 대신들의 소행 등을 알아보게 하는 것인데, 행인이 여기에 와서 국왕이 나이가 젊고 현명하며 뭇 신하들이 정성스럽게 직분을 다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또 귀국의 위급함과 적의 형세가 창궐하다는 뜻을 내가 역력하고도 상세히 말하였고, 경략의 아문에 보낸 품첩(稟帖) 중에서 긴요한 것을 다 베껴 주었다. 섣달 20일경에 북경에 이를 것이고 정월 그믐께는 큰 소식이 있을 것이니, 그 처리를 기다릴 뿐이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나로 하여금 주장하게 한다면, 팔거(八莒)639) 만을 지킬 것 없이 전라도를 지키거나 군사를 나누어서 왜적을 방비하거나 주사(舟師)로 그 양도(糧道)를 끊을 것인데, 내 손발을 묶어 두니 어찌하겠는가.’ 하기에, 신들이 답하기를 ‘노야가 군사를 쓰기로 뜻을 결정한다면 소방이 경략에게 자문(咨文)을 보내어 청하고, 또 천조에 아뢰어 노야가 편의하게 종사하도록 하겠는데 어떠한가?’ 하니, 답하기를 ‘좋다. 다만 큰 공(功)은 반드시 권력이 있는 자가 해야 하니, 이 제독(李提督)이 선봉(先鋒)이 되게 하면 될 것이다.’ 하였는데, 대개 그 뜻은 제독에게 미루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쪽지와 소서행장(小西行長)의 서간 2장을 보였는데, 소지는 행장이 일곱 가지 일을 요청한 것으로 전일에 장계(狀啓)한 내용과 내용이 같았습니다.

총병이 또 말하기를 ‘그대 나라가 9월 이후로 장수를 선택하여 군사를 훈련하였다면 지금 1만의 정예는 얻을 수 있었을 것인데, 근래 두세 달 동안 말만 하고 실천이 없었다. 보내어 온 군사도 곧 달아나 버려서 비록 막는다고 말하나 막지도 못하고 있는데, 더구나 적들을 죽일 것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또 전라도의 군사를 불러 모으거나 선발하더라도 내 영문에 올 것 없다. 그대로 전라도를 지키면서 한편으로 방어하고 한편으로 훈련한다면, 내가 임시하여 형세를 보아 징발하여 쓰겠다.’ 하기에, 신들이 답하기를 ‘노야가 이렇게 분부하니 못내 감격스럽다. 군사를 뽑고 양식을 저축하는 것은 아주 긴급하니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음을 써서 조치하겠다.’ 하고 물러나왔습니다.

대저 그 뜻을 살펴보면, 적의 형세를 매우 어렵게 여기지는 않으나 경략·제독에게 억압되어 있고, 또 일을 일으켰다가 혹 이롭지 못한 일이 있게 되면 죄책을 면하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으로, 이 때문에 의심하고 주저하는 마음이 많아서 끝내 결말짓고 귀착하는 곳이 없으니, 지극히 답답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도리로서는 군사를 징발하고 양식을 운반하는 일을 힘을 다하여 조치하고 한편으로 간청하여 함께 협력하는 수 밖에는 다시 다른 방책이 없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45권 5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62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636]
    낙 참장(駱參將) : 낙상지(駱尙志).
  • [註 637]
    오 유격(吳游擊) : 오유충(吳惟忠).
  • [註 638]
    달노(㺚奴) : 달자(㺚子)라고도 한다. 노자는 비칭. 조선의 서북방에 살던 종족이다.
  • [註 639]
    팔거(八莒) : 지금의 대구직할시 북구에 있던 지명.

○領議政柳成龍、左議政尹斗壽、兵曹參判沈忠謙啓曰: "臣等拜見劉揔兵曰: ‘國王昨日, 陪老爺不得從容, 今日令臣等到老爺(根)〔眼〕 前, 再討示下。’ 摠兵曰: ‘多謝。’ 臣等曰: ‘小的七月間, 陪老爺在陜川, 略知賊情, 上來以後, 未知賊情如何?’ 摠兵曰: ‘賊之情形, 前日一樣。 但今日駱參將吳遊擊王遊擊文報內, 賊五六千, 距慶州五十里地來屯云。 若有緊急之變, 明日飛報必來矣。 來則當示, 不來則不妨。’ 臣等曰: ‘倭寇猖獗, 今已二年, 兵疲力盡, 小邦終不能抵當。 望老爺, 分付勦滅之策。’ 摠兵曰: ‘我爲貴國, 寫緊急利害, 呈送經略衙門八十七度, 皆以爲不便, 而不肯奏達, 屢送牌票, 禁止殺, 我何以主張勦滅? 使我任意滅賊不難, 皆爲經略掣肘中止, 奈何? 今日之事, 在國王及諸大臣自强, 一面選兵訓鍊, 一面遣忠烈陪臣, 懇乞皇上可也。’ 臣等曰: ‘相持日久, 師老糧盡, 則小邦不攻自破。 請小邦搜括八道精兵, 協助老爺, 欲攻一隅。’ 摠兵曰: ‘爾國之兵無勇, 又無器械, 何能攻賊?’ 臣等曰: ‘西北之兵, 與㺚奴相接, 慣習戰殺, 抄發其兵, 可得勇敢五百餘兵。 且抄諸道義兵, 則亦可得萬餘兵, 合此數萬, 與老爺熊豼之兵, 協力共擊何如?’ 摠兵曰: ‘我不得主張, 奈何?’ 臣等曰: ‘老爺與天使相語。 天使之意如何?’ 摠兵曰: ‘此天使, 非但爲宣諭而來, 經略、提督, 曾論國王, 故 朝廷特遣此行人, 詢訪國王愛民何如, 世子賢否及大臣所爲如何。 行人到此, 見國王年少賢明, 群臣恪恭盡職, 心裏歡喜矣。 且貴國危急, 賊勢猖獗之意, 我歷歷詳說, 我所送經略衙門稟帖中緊要者, 皆抄給。 臘月二十日間, 當到北京, 正月盡頭, 必有大消息。 只管等他處置。’ 又曰: ‘使我自主張, 不必徒守八莒, 或守全羅, 或分兵備, 或以舟師, 絶其糧道, 無所不可, 而使我挈其手足, 奈何?’ 臣等答曰: ‘老爺決意用兵, 則小邦咨請經略, 且奏天朝, 使老爺便宜從事, 何如?’ 答曰: ‘好矣, 但大功必有權力者爲之。 使李提督爲先鋒則可矣。’ 蓋其意, 推托於提督矣。 又示一小紙及行長書簡二丈小紙, 乃行長要請七事也。 與前日狀啓意一般矣。 摠兵又曰: ‘爾國, 自九月以後, 若選將鍊兵, 則今可得滿萬精銳, 邇來數三月, 徒言而無實。 解到之兵, 旋卽逃散, 雖言遮截, 不可得。 況念殺他乎? 且全羅之兵, 或召募、或抄發, 不必來到吾營。 若仍守全羅, 一邊防禦, 一邊敎訓, 則我當臨時觀勢, 調取用之矣’ 臣等答曰: ‘老爺如是分付, 不勝感激。 選兵、儲糧, 極爲緊急, 小的當毋分晝夜, 用心措置云’ 而退。 大抵觀其意, 則不以賊勢爲甚難, 而壓於經略、提督。 且恐擧事而或有未利, 則不免罪責, 以此多有遲疑之心, 終無結末歸宿之所, 至爲憫慮。 然在我國之道, 將調兵、運糧, 極力措置, 一邊懇請, 與之協力, 此外更無他策矣。" 答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26책 45권 5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62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