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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45권, 선조 26년 윤11월 18일 무술 9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중국 사신에 회자하다

중국 사신에게 회자(回咨)하였다.

"조선 국왕은 온 자문(咨文)에 의거하건대, 자문에는 왜적의 무리가 달아나 돌아가고 속국(屬國)이 이미 회복되었으므로 뒷일을 수습할 것을 헤아려 처리하라는 등의 말이 있었습니다. 이에 의거하여 살피건대, 당직(當職)이 번병(藩屛)의 임무를 잘 봉행하지 못하여 선대의 왕업을 실추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성천자(聖天子)의 위령(威靈)에 힘입어 병화를 당한 나머지를 보전하였으나, 쇠약하고 좌절되어 스스로 떨치지 못하더니, 귀사(貴司)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덕의(德意)를 선포하고 소방(小邦)의 사정을 깊이 살피고는 면대하여 일러주고 거듭 이자(移咨)628) 하여 가르치신 말씀의 뜻이 간곡하고 정성스러운지라, 받들어 읽은 끝에 감사함과 부끄러움을 아울러 느꼈습니다. 더구나 양식을 운반하고 험애(險隘)를 설비하며 군사를 훈련하고 기계를 제조하는 일들은 전부 오늘의 급선무입니다. 당직이 심히 어리석기는 하나 자신에 절실한 이해(利害)를 아니 존망(存亡)이 결판나는 바인데 이것이 어떠한 일이라고 감히 스스로 힘쓰지 않겠습니까.

당초 대군(大軍)이 평양(平壤)을 회복한 뒤로 곧 호조 판서(戶曹判書) 이성중(李誠中)을 차출하여 낭료(郞僚)를 데리고 군량과 마초(馬草)를 감독하여 나르게 하였고, 이어서 검찰사(檢察使) 이산보(李山甫)·김찬(金瓚) 등을 차출하여 함께 감독하여 운반하게 하였으며, 또 호조 참의(戶曹參議) 정광적(鄭光績)을 보내어 유 총병(劉總兵)의 영문(營門)으로 달려가서 군량을 조정, 지급하는 일을 지휘하게 하였고, 또 공조 참판(工曹參判) 이노(李輅)를 시켜 좌랑(佐郞) 최흡(崔洽)을 데리고 경상도 지방으로 가서 재료를 모으고 기한을 정하여 공사를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조련(操練)하는 일은 더욱 긴요하므로 이미 제도 도순찰사(諸道都巡察使) 권율(權慄)을 시켜 모든 기무(機務)를 전관(專管)하고 제장(諸將)을 통제하면서 세 도(道)의 정예하고 용맹한 군정(軍丁)을 뽑아 거느리고 함께 유 총병의 영문으로 가서 교습(敎習)을 받게 하였습니다.

10월 30일 경략(經略)의 분부에 따라 곧 좌의정(左議政) 윤두수(尹斗壽)를 보내어 달려가서 모든 일을 총독(總督)하게 하였습니다. 다만 미열(迷劣)한 아들 광해군(光海君)은 지난해 험난한 산천을 오르고 건너며 무로(霧露)를 무릅써서 여름·가을 이래로 병세가 매우 깊어 경성에 따라오지 못하고 해주(海州)에 머물러 있던 차에 경략의 재촉하는 이자(移咨)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본디 받든 성지(聖旨)가 매우 엄절(嚴切)하므로 감히 병을 말하지 못하고 이달 8일에 한성(漢城)에 돌아왔으니 결단코 19일에는 병을 무릅쓰고 전라도·경상도 지방에 가서 진수(鎭守)하며 호령할 것입니다. 세 조(曹)의 판서(判書) 한준(韓準)·이항복(李恒福)·김명원(金命元) 등 세 사람도 모두 이날 떠나 달려가서 그 임무를 나누어 맡게 하겠습니다.

그 밖에 쓸데없는 관원을 도태하고 어진 사람을 임용하여 형벌을 덜고 부세를 줄이는 등의 일은 소방이 오늘날 급히 해야 할 일이니, 당직이 감히 낱낱이 명심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고쳐 먹고 스스로 경계하여 성상께서 소방을 돌보시는 깊은 인애(仁愛)를 저버리지 않으며 대인(大人)이 도타이 격려하는 성의(盛意)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다만 적의 세력은 오히려 버티고 있는데 백성의 힘은 이미 다하여 아마도 붙들어 세우고 지탱하여 번병의 직무를 다할 수 없을 듯하니, 귀사가 곡진히 살펴 가엷게 여기시면 다행하겠습니다. 위와 같이 회자하니, 살펴서 시행하소서. 반드시 이 자문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위와 같이 흠사일품복색 행인사 행인(欽賜一品服色行人司行人)에게 자(咨)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45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57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왕실-사급(賜給)

  • [註 628]
    이자(移咨) : 자문을 보냄.

○回咨于天使曰:

朝鮮國王, 準來咨, 該爲衆遁歸, 屬國已復, 計處善後事云云等因。 準此竊照, 當職奉藩無狀, 墜失先業, 幸仗聖天子威靈, 得保餘燼, 而衰微顚沛, 莫能自振, 乃蒙貴司, 奉承明命, 宣布德意, 洞察小邦事情, 面賜提諭, 重以移咨, 指敎辭意勤款, 奉讀之餘, 感愧交幷。 況運糧設險, 練兵造器, 俱係見今急務? 當職雖甚(譾)劣, 猶知切己之利害, 存亡所判, 是何等事, 而敢不自力? 初自大軍克平壤以後, 卽差戶曹判書李誠中, 帶同郞僚, 督運糧草; 續差檢察使李山甫金瓚, 督倂搬運; 又差戶曹參議鄭光績, 馳往劉總兵營裏, 調度(餫)〔軍〕 餉; 又令工曹參判李輅, 帶同佐郞崔洽, 前去慶尙地面, 鳩集(村)〔材〕 料, 刻期興工。 其操練一事, 尤係喫緊, 已令諸道都巡察使權慄, 專管一應機務, 統制諸將, 選領三道精勇軍丁, 俱進劉總兵營裏, 聽候敎習。 十月三十日, 遵依經略分付, 卽遣左議政尹斗壽, 星馳前去, 總督諸務。 但劣息光海君, 爲緣上年跋涉山川, 蒙犯霧露, 夏秋以來, 病勢深重, 不能隨到京城, 留在海州, 節蒙經略咨催, 原奉聖旨, 十分嚴切, 不敢言病, 於本月初八日, 已還漢城, 定擬於十九日, 力疾前去地面, 鎭守號令。 三曹判書韓準李恒福(金命原)〔金命元〕 等三人, 竝令本日起行, 星馳前往, 分營該務外, 至如汰冗任賢, 省刑薄稅等項句當, 誠小邦今日之急務。 當職敢不逐一書紳, 洗心飭勵, 以不負聖上字小之深仁, 以不孤大人敦勵之盛意。 顧惟賊勢猶張, 民力已竭, 恐無以扶植支撑, 以效藩蔽之職, 惟冀貴司, 曲察而矜憐之幸甚。 爲此合行回咨。 請照驗施行, 須至咨者。 右咨, 欽賜一品服色行人司行人。


  • 【태백산사고본】 26책 45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57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