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수가 소서행장이 심유경에게 보낸 서찰을 입계하다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가 평 행장(平行長)583) 이 심유경(沈惟敬)에게 보낸 서찰(書札)을 입계(入啓)하였는데,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일본 차래 선봉(日本差來先鋒) 풍신 행장(豊臣行長)은 천조(天朝) 유격 장군(遊擊將軍) 심 노야(沈老爺) 휘하(麾下)에 삼가 아룁니다. 휘하께서 지난해 8월 29일에 평양부 밖에서 만나 약속한 것에 휘하의 말은 변하였어도 내 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건건(件件)을 써서 역람(歷覽)에 갖추고자 합니다.
제 1건은 지난해 평양을 서북으로 경계를 그었으므로 왜인은 경계를 넘지 않았는데, 휘하께서 어떻게 절제하셨는지, 조선은 경계를 넘어서 약속을 어긴 일입니다.
제 2건은 휘하께서 청석령(靑石嶺)을 넘다가 말에서 떨어진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온다는 기약을 어기셨으나, 오래 의료(醫療)하여 요즈음에는 순안(順安)하시다 하므로 문안도 하고 영접(迎接)도 하려고 나의 소신(小臣) 죽내 길병위(竹內吉兵衛)를 보냈더니, 그를 잡아 두고는 돌려보내지 않고 군사를 내어 평양을 에워싼 일입니다.
제 3건은 휘하께서 두 번째 한강(漢江)에 이르러 강화(講和)하던 날에 제장(諸將)은 다 믿지 않았으나 나만은 믿어서, 휘하의 말을 따라 군사를 이끌고 왕경(王京)에서 물러나면서 20여만의 양식을 그대로 남겨두고 태워 없애지 않았고 장도(長途)에 걸쳐 쌓은 왜영(倭營)도 헐어 없애지 못하고서 포포(浦浦)로 군사를 철수한 일입니다.
제 4건은 조선의 두 왕자와 배신(陪臣)들을 한강에서 약속한 바에 따라 돌려 보낸 일입니다.
제 5건은 휘하와 서로 약속함에 따라 전라도에 출병(出兵)하지 않아서 오늘까지 안온(安穩)을 유지해 온 일입니다.
제 6건은 휘하와 서로 약속하기를, 소장(小將) 비탄수(飛彈守)를 데리고 북경(北京)에 가서 석 노야(石老爺)584) 의 구두(口頭)로 하는 말을 직접 듣고 다시 대관(大官)인 천사(天使)를 인도하여 오는데 3∼4개월을 넘지 않을 것이며 또 달마다 20일 간격으로 서신(書信)을 통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오늘까지 한 번도 서신을 통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비탄(飛彈)도 왕경에 오래 머무른 뒤에 평양에 머물면서 북경에는 가지도 못하고 세월만 보냈습니다. 나는 휘하의 말을 믿고 태합 전하(大閤殿下)585) 에게 아뢰고 비탄을 차출하여 휘하를 따라가게 하였는데 이제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7건은 역관(譯官) 법석(法釋)을 차출하여 두 천사를 호송하여 왕경에 도달하는 날로 곧 돌려보낸다고 한 것은 대개 두 천사의 말이었습니다. 필시 귀청(貴廳)에 도달하였을 것인데 어찌하여 돌려보내지 않고 머물려 둡니까. 머물려 두더라도 비탄을 따르게 하는 것이 도리인데 다른 곳에 있게 하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위의 7건은 다 휘하께서 약속을 어긴 것이고 나는 터럭끝 만큼도 약속을 어긴 것이 없는데, 누구를 허탄하다 하겠습니까. 이제 담야(譚爺)586) 가 송(宋)587) ·이(李)588) 두 노야(老爺)의 글을 가지고와서 태합 전하의 표문(表文)을 요구하고 또 대마(對馬)로 군사를 철수하라고 하니, 일마다 어지러운데 어느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따르란 말입니까. 비록 날씨가 춥고 길이 멀기는 하나 휘하께서 빨리 와서 면대한다면, 전하와 필시 상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야를 내 영(營)에 잠시 머물려 두고 휘하를 기다리거니와, 휘하께서 만약 오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설사 표문이 있다 하더라도 휘하 말고 따로 누구에게 드리겠습니까. 만사를 시작도 잘하고 끝도 잘 맺는 것이 일본(日本)의 도법(道法)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휘하께서 노고를 꺼리지 않으시는 것이 아마도 천하를 아끼는 일단(一端)일 것이니, 게을리 하지 마소서. 또 휘하께서 오시지 않고 천사도 또한 늦춘다면, 포포(浦浦)에 있는 제장이 어찌 부질없이 날만 보내겠습니까. 병마(兵馬)를 내보낼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때에 당해서 내가 약속을 어긴다고 말하지 마소서. 또 대마도로 군사를 철수하라는 것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휘하께서 다시 천사를 인도하여 오신다면 명하지 않더라도 군사를 철수할 것인데, 어찌하여 천사를 인도하여 오지 않으시고 이렇게 명하십니까. 적어 보인 것은 하나하나가 연자매를 돌리는 소가 전철(前轍)을 밟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일은 거듭 말하지 마십시요. 나머지는 만나는 날로 기약하고 황공돈수(惶恐頓首)하며 이만 줄입니다. 11월 15일, 풍신 행장 배(拜)."
- 【태백산사고본】 26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139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583]평 행장(平行長) : 소서 행장(小西行長).
- [註 584]
석 노야(石老爺) : 병부 상서(兵部尙書) 석성(石星).- [註 585]
태합 전하(大閤殿下) : 풍신수길(豊臣秀吉).- [註 586]
○海平府院君 尹根壽, 以平行長遺沈惟敬書札入啓。 其書曰:
日本差來先鋒豐臣行長, 謹白天朝遊朝將軍〔遊擊將軍〕 沈老爺麾下。 麾下, 去歲八月二十有九日, 會于平壤府外所約, 麾下之言變, 而僕之言不變。 其件件書, 以備歷覽。第一件, 去歲平壤西北分界。 是以倭人不過界, 麾下如何制之乎? 朝鮮超界變約之事。 第二件, 麾下於靑石嶺, 有墮馬之失, 故誤來期。 雖然醫療得竢漸, 頃日順安云云, 因玆或爲問安, 或爲延接, 差僕小臣竹內吉兵衛, 則擒渠不還, 出兵圍平壤之事。 第三件, 麾下再到漢江, 講和之日, 諸將皆不信之, 僕獨取信, 從麾下之言, 引兵退王京, 遺二十餘萬糧物, 不燒滅之。 長途所築之倭營, 亦不能損(滅)〔減〕 , 而收兵於浦浦之事。 第四件, 朝鮮二國胤及陪臣等, 從漢江所約送還之事。 第五件, 因與麾下相約, 不出兵於全羅道, 至今日其安穩之事。 第六件, 與麾下相約之者, 是携小將飛彈守赴北京, 直聞石老爺口中之言, 重導大官天使來者, 不出三四箇月, 且又每月隔二十日, 通書信云云, 雖非至今日未通一書, 飛彈亦久留王京, 然後居平壤, 不達北京, 徒送光景。 僕信麾下之言, 奏(天)〔大〕 閤下殿下, 差飛彈從麾下, 今如斯者, 不知如何之事。 第七件, 差譯官法釋, 打護送二天使, 達王京之日, 卽送還云云, 蓋是二天使之言也。 定達貴廳, 何不送還而留之乎? 縱留之, 亦從飛彈者, 是理也, 在別處者, 如何之事? 右七件, 皆麾下違約, 而僕毫釐無違約者, 孰謂之虛誕乎? 今譚爺帶宋、李二老爺之書, 求大閤殿下表文, 且告收兵對馬, 事事紛然, 何捨何用乎? 雖云天寒路遠, 麾下速來面, 則相議殿下者, 必矣。 故小留譚爺於鄙營, 以待麾下, 麾下若不來, 則何以爲證乎? 縱又須有表文, 除麾下之外, 別度與誰乎? 萬事克始克終者, 是日本之道法也。 是以云爾。 麾下不厭勞者, 恐愛天下之一端乎? 勿怠勿怠。 若又麾下不來, 天使亦遲延, 則在浦浦之諸將, 豈徒送日乎? 出兵馬者必矣。 方乎此時, 莫言僕變約矣。 又收兵於對馬者, 不知是何事乎? 麾下重導天使來, 則縱不命之, 亦收兵者也。 何不導天使來, 而有此命乎? 所示一一, 如磨牛蹈舊轍, 莫重說如此之事。 餘期會面之日, 恐惶頓首不宣。 十一月十有五日, 豐臣行長拜。
- 【태백산사고본】 26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139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