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반사 판중추부사 윤근수가 송 경략의 자문을 치계하다
접반사(接伴使) 판중추부사 윤근수가 치계하기를,
"송 경략이 신(臣)을 불러 ‘우리가 바야흐로 당신의 나라 군신(君臣)이 개과 천선하여 힘을 다해 진작(振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병마(兵馬)의 훈련과 요해지(要害地)의 수축, 군기(軍器) 제조와 추량(芻糧)의 저축, 이 네 가지의 일을 모두 거행하고 우리에게 회보(回報)한 다음에야 우리가 마땅히 그에 의거하여 복제(覆題)하겠다. 그러면 황상께서 반드시 온화한 분부를 내리어 위유(慰諭)할 것이지만 당신의 나라 군신들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부귀만 누리면서 백성 애호(愛護)와 적군 방어는 생각하지 않은 채 국가를 몰라라 한다면,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아울러 머물러 둔 군사도 철수할 것이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 것이어서 근본이 굳건해야 나라가 편안한 법이다. 당신의 나라가 이런 뜻을 잘 알고 이런 일을 잘 행한다면, 국왕(國王)께서 춘추(春秋)가 아직 강장(强壯)하니 지금부터라도 어진 임금이 될 수 있기가 또 어찌 어렵겠는가. 왜적이 나온 것은 왜적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당신 나라 군신들이 끌어들이는 짓을 했기 때문이지만, 성천자(聖天子)께서 그대로 불문에 부치고 오히려 당신의 나라가 2백 년 동안 사대(事大)해 온 성의를 아름답게 여겨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고 많은 자금을 허비하면서 우리의 문무(文武) 대신들을 명하여 만리나 되는 먼곳에 가서 구원하게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성천자이다. 나와 제독(提督)이 황상의 덕의(德意)를 몸받아서 왜적으로 하여금 위엄을 두려워 하고 은덕에 감복하게 하자 멀리 바닷가로 도망갔다. 인하여 왕(王)으로 봉하고 조공(朝貢)을 허락해주기를 청하면서 신하되기를 원했으니, 왜적이 모두 저희 소굴로 돌아갈 것을 시일을 정해놓고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런 뒤의 일에 대해 당신의 나라가 마땅히 근심하고 염려해야 할 바가 아니겠는가.
또 당신 나라 사람으로서 왜적에게 붙었다가 바닷가에 가 있는 자가 수만 명인데 이들은 모두 구차스럽게 살아남기 위해 그런 것이니 그 실정이 애처롭다. 당신 나라에서 초무(招撫)와 애양(愛養)을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힘쓴다면, 그들도 윗사람 친애하기를 또한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하듯이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왜적이 물러간 다음 머물러 두고 있는 군사를 철수하게 되면 반드시 또 포객(暴客)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나라 군신이 다시 의주(義州)에 오더라도 장차 몸둘 곳이 없게 될 것이다. 또 현명한 신하를 친근히 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배척함은 곧 오늘날의 시급한 일이다. 우리가 여기 있을 때에 분별해서 진퇴(進退)시킨다면 어찌 나라가 다스려 지지 않을 염려가 있겠는가. 국왕께서 스스로 거행하지 못한다면 내가 마땅히 처치 하겠다. 천자의 명명(明命)을 받들었는데 무엇을 하지 못하겠는가. 국왕도 오히려 참주(參奏)할 수 있다. 그 이하의 배신(陪臣)들은 내가 사람을 차견하여 잡아다가 죄가 무거운 자는 참형(斬刑)하고 가벼운 자는 곤타(綑打)539) 하겠다. 황상께서도 염려가 이에 미쳐서 유 원외(劉員外)로 하여금 나아가 덕의(德意)로 효유하고 따라서 진작(振作)시킬 것을 요망하도록 한 것인데, 유 원외가 병에 걸렸으므로 장 도사(張都司)가 대신 가서 국왕으로 하여금 이로 인해 과오를 고치고 다시 새로워지게 한 것이다. 즉각 먼저 병마(兵馬)를 유정(劉綎)에게 내보내되, 조련된 군사가 몇 만명인 것과 요해지를 수축한 것이 몇 군데인 것과 추량(芻糧)을 쌓아놓은 것이 얼마인가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개록(改錄)하여 자보(咨報)해 온다면, 나 또한 사람을 차출하여 유정이 있는 곳에 가서 진실 여부를 확인한 다음 이에 의거하여 복제(覆題), 국왕의 어진 덕을 찬양한다면 성천자께서 반드시 온화한 분부을 내리시게 될 것이다. 나의 말대로 하지 않는다면 내가 앞으로 당신의 나라 일을 주관하지 않을 것이니, 당신의 나라 군신들은 그렇게 되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힘쓰고 힘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송 경략의 말뜻을 보건대 매우 엄중하여 조금도 가차(假借)가 없습니다. 즉시 거행하고서 자보(咨報)하지 않는다면, 해조(該曹)의 관원을 잡아다가 따질 염려가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이른바 네 건의 일을 특별히 해조로 하여금 즉각 거행하도록 하고, 회보(回報)하는 자문도 모름지기 내용을 유순하고 곡진하게 하여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소서."
하니, 정원에 전교하기를,
"이 서장(書狀)은 지극히 무리한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44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123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539] 곤타(綑打) : 결박하고 때림.
○接伴使判中樞府事尹根壽馳啓曰: "經略呼臣語之曰: ‘我方待爾國君臣, 改過更新, 勠力振起。 如操練兵馬, 修築險隘, 造作軍器, 聚積芻糧四件事, 一一擧行, 回報於我, 然後我當憑據覆題, 皇上必下溫旨而慰諭之。 爾國君臣, 居高位、享富貴, 不以愛民禦敵爲念, 置國家於相忘之地, 則我亦無如之何。 幷留兵撤還矣。 民惟邦本, 本固邦寧。 爾國能知此意, 能行此事, 則國王春秋尙疆, 自今足以爲賢王, 又何難焉? 倭賊之來, 非倭自來, 爾國君臣, 必有句引之故, 而聖天子姑置不問, 猶嘉爾國二百年事大之誠, 動天下之兵, 糜百萬之金, 令我文武大臣, 萬里來援, 此眞聖天子也。 我與提督, 體上德意, 能使倭賊, 畏威服恩, 遠遁海上, 仍乞封王許貢, 願爲之臣, 賊之盡數歸巢, 指日可待。 厥後之事, 非爾國所宜憂念者乎? 且爾國順倭之人, 在海上者數萬, 此皆偸生苟活, 其情可哀也。 爾國務要招撫愛養, 如父母之於赤子, 則彼之愛上, 亦如赤子之於父母矣。 否則倭退之後, 留兵將撤, 必且句引暴客而來。 爾國君臣, 再到義州, 將無置身之地。 且親賢臣、斥奸侫, 乃今日之急務。 及我在此時, 能分別進退之, 則何憂乎國之不治! 國王不能自行, 則我當處置。 奉天子之明命, 何爲而不得爲? 國王猶可以參奏, 其在陪臣以下, 我當差人拿致, 重者斬, 輕者綑打。 皇上亦慮及此, 使劉員外往諭德意, 因責振起, 員外有疾, 都司代往, 使王得以因此, 而改過更新。 卽先將兵馬, 發送劉綎, 操練者幾萬, 修築險隘者幾處, 聚積芻糧者幾何, 逐一開錄, 咨報前來。 我亦差人到劉綎處, 驗其眞實, 然後據此覆題, 贊國王之賢德, 聖天子必下溫旨。 若不依我言, 則我將不管爾國事。 爾國君臣, 不知其可畏乎? 勉之, 勉之’ 云。 觀經略辭章甚嚴, 略不假借。 若不卽擧行而咨報, 該曹之官, 恐有拿究之憂。 其所謂四件事, 特令該曹, 劃卽擧行, 而回報之咨, 亦須令語意婉委, 勿忤其意。" 傳于政院曰: "此書狀, 極爲無理。"
- 【태백산사고본】 25책 44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123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