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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41권, 선조 26년 8월 30일 신해 9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영의정 최흥원이 서울에 머물고 있는 왜적에 대한 조처를 요청하다

영의정 최흥원(崔興遠)이 치계하기를, 【이달 27일, 서울에 있으면서 한 것이다. 】

"심 유격(沈遊擊) 【유경(惟敬). 】 거느리고 온 왜놈들을 의리에 따라 죽이지도 못하고 중국 장수에게 구애(拘礙)되어 관름(館廩)까지 주어가면서 머물게 하고 있으니 통분하기 그지없습니다. 척 유격(戚遊擊)이 강력히 금하여 목책(木柵) 속에 가두어 두도록 하였지만 중국 군사와 내통하여 멋대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약탈을 자행하고 있으니 매우 통분합니다. 용산(龍山)에 있는 왜적도 일찍 처치하지 않으면 우리를 벗어나온 범이고 소매 속에 들어온 전갈이어서 반드시 후회가 있게 될 것이므로 더욱 우려됩니다. 제독이 있을 적에 소위 항왜(降倭)라는 것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올라왔는데 그 수가 매우 많고, 제독이 내려간 뒤에도 또 23명이 올라왔습니다. 투항(投降)의 진위(眞僞)를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투항을 가탁(假託)하여 우리의 허실(虛實)을 탐지하려는 계획이 없지 않을 듯하니, 조정에서 잘 조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비변사에 계하(啓下)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85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領議政崔興源 【本月二十七日, 在京城。】 馳啓曰: "沈遊擊 【惟敬。】 所率倭奴, 旣不能仗義勦殺, 拘於天將, 至於館廩許留, 不勝痛惋。 戚遊擊力爲呵禁, 囚之木柵, 而與唐兵通同, 恣行閭里, 攘奪民財, 極爲痛憤。 龍山, 亦不早處, 是實出(押)〔柙〕 之虎, 在袖之蝎, 必有後悔, 尤爲悶慮。 且提督在此時, 所謂降, 累次上來, 厥數甚多, 提督下去後, 又有二十三名上來。 投降虛的, 灼知爲難, 不無托稱投降, 窺覘虛實之謀, 自朝廷善處何如?"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85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