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41권, 선조 26년 8월 16일 정유 9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경략이 자문을 보내 광해군에게 하삼도 지역의 군무를 맡기라 요구하다

경략이 이자(移咨)하였다.

"왜노(倭奴)조선에 난리를 일으켜 곧장 삼도(三都)로 들어오고 팔도(八道)를 격파(擊破)하였습니다. 본부(本府)가 회상(回想)해 보건대, 작년 이맘때에는 왕의 기업(基業)이 위태로왔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 황상(皇上)의 신위(神威)가 멀리까지 빛나시어 우리의 무위(武威)를 드날려 몇 달이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평양개성(開城)을 수복(收復)하고, 함경도(咸鏡道)에서 적을 몰아내고 서울을 수복했으며, 전라도를 보전하고 경상도를 지키니, 부산으로 물러간 왜노가 도망하여 돌아가기를 애걸(哀乞)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국(王國)의 강산(江山)이 완전히 원상으로 회복되었는데도 우리는 다시 병장(兵將)을 머물려 지키게 하였으니, 중국에서 소국(小國)을 사랑하는 인(仁)이 후하고도 깊으며 본부(本府)와 제독(提督)이 계획을 도와가며 함께 종사(從事)하고 문무(文武) 제인(諸人)들이 힘써 일을 담당한 것도 지극하고 극진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유병(留兵)은 오래 머물 수 없고 원병(援兵)은 다시 오기 어려운데 왜적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으니, 수리(修理)와 수비(守備)를 서둘러 정칙(整飭)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보고에 의하면 유정(劉綎) 등 관병(官兵)이 대구 등지에 주둔하고 있는데, 사람에게는 양곡이 없고 말에는 꼴[草]이 없어 채소뿐만 아니라 소금과 장마저 떨어져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고 있다 하니 이런 기상(氣象)으로 어떻게 유수병(留守兵)의 마음을 굳게 할 수 있겠습니까. 본부도 이런 상황에서는 그들에게 왕을 위하여 힘을 다하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왕을 위하여 유병하여 수비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가령 천조(天朝)의 공사(公事)를 담당하여 귀국 영토(領土)의 길을 빌려 왜적을 징벌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승전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모두 배신(陪臣)들이 오래도록 안일(安逸)에 젖어 미복(迷復)415) 을 고치지 못하여 전혀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듣건대 왕의 둘째 아들 광해군(光海君)이 영웅의 풍채(風彩)에 위인(偉人)의 기상이 드러나 준수하고 온화하며 어린 나이에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니, 저의 생각에는 나라의 기업을 새로 회복하는 이 때에 광해군으로 하여금 전라·경상·충청도를 차례로 순찰(巡察)하면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두 그의 결재를 받도록 하여 군병(軍兵)을 선발할 때 반드시 친히 검열(檢閱)하게 하면 연약한 자가 감히 끌려와서 섞이지 않을 것이며, 성지(城池)를 수리하거나 설치할 때 반드시 친히 답사(踏査)하게 하면 공인(工人)과 재목(材木)을 모으는 자가 감히 게을리하지 못할 것이며, 군량(軍糧)을 운반할 때 반드시 친히 감독하게 하면 지방(支放)416) 과 공급(供給)에 결핍(缺乏)됨이 없을 것이며, 군기(軍器)를 만들 때 반드시 친히 시험하게 하면 칼날이 견고하여 조악하게 만들어지는 일이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76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법(兵法)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415]
    미복(迷復) : 도(道)를 잃은 것이 이미 멀어 다시 돌아올 곳이 없는 것. 《주역(周易)》 복괘(復卦).
  • [註 416]
    지방(支放) : 늠료(廩料)의 지급.

○經略移咨:

爲照倭奴, 倡亂朝鮮, 徑走三都, 直破八道。 本部回思, 去歲今時, 王之基業, 危且殆矣。 玆幸神威遠赫, 我武維(楊)〔揚〕 , 不數月間, 下平壤開城, 逐咸鏡收王京, 保全羅慶尙, 退釜山 倭奴乞哀遁歸。 王國江山, 完然如昨, 近復撥留兵將居守, 是天朝字小之仁, 厚且深矣。 本部與提督, 贊畫共事, 文武之人拮据擔當, 亦至且盡矣。 顧留兵不能久戍, 援兵恐難再煩, 倭賊不能保其不復來, 修守不可不亟爲之整飭。 今據報, 劉綎等官兵, 駐箚大丘等處, 人無糧、馬無料, 非但葷菜不能沾唇, 卽鹽醬未曾入口, 至皆相向而泣。 似此氣象, 何能固留守者之心, 而本部亦難責其爲王効力也。 今且無論留兵爲王居守, 籍令句當天朝公事, 假路貴疆, 未審亦爲東道主否耶? 此皆陪臣輩, 溺豫已久, 迷復不悛, 以至漫不經心如此。 今聞王之第二胤光海君, 英(恣)〔姿〕 偉發, 妙蘊岐嶷。 鄙意以爲, (棄)〔乘〕 此國基新復之際, 委令巡歷忠淸之間, 事無大小, 聽其裁決。 如排選軍兵, 必親閱, 則巽輭柔脆者, 不敢挽雜矣; 修設險隘, 必親査, 則鳩工聚材者, 不敢怠玩矣; 搬運糧餉, 必親督, 則支放供給, 不敢缺乏矣; 置造軍器, 必親驗, 則鋒銛堅厚, 不敢草率矣。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76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법(兵法)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