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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41권, 선조 26년 8월 13일 갑오 11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승지들과 제독의 접대 문제를 논의하다

3경(三更)에 전교하기를,

"승지를 인견(引見)하겠다."

하였다. 좌승지 홍진(洪進)이 나아가 아뢰기를,

"제독이 1백 50리를 달려오는 동안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말을 전한 것이 잘못되어서이다. 나는 그런 줄을 몰랐다."

하였다. 홍진이 아뢰기를,

"나와 보지 않은 곳 중에 더욱 심한 곳은 동파(東坡)에서 금암(金巖)·안성(安城)까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대개 직로(直路)에 위치한 군현의 수령들이 대가(大駕)의 지대(支待)를 위해 나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황주(黃州)의 경우, 목사(牧使)와 판관(判官)이 모두 대가의 지대를 위해 나오는 등 영접하는 인물(人物)이 매우 많았다. 비록 평상시라 하더라도 어찌 이와 같아서야 되겠는가. 옛날 임금들이 매년 순수(巡狩)할 적에도 어찌 이와 같았겠는가. 풍부하고 사치스런 음식으로 말하면 임금이 평상시 궐내(闕內)에서 받는 공궤(供饋)라 하더라도 어찌 이처럼 괴이(怪異)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 나라는 장차 음식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인데, 평안도에서도 이런 폐단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으면 나도 죽을 먹어야 하는데 어찌 7∼8그릇이나 되는 많은 음식이 나와서야 되겠는가. 물산(物産)도 본도(本道)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어서 임금인 나로서도 일찍이 보지 못했던 것이니 이는 반드시 호풍(胡風)일 것이다.

보통의 중국 장수로서 왕래하는 자들에게도 힘껏 지대(支待)해야 하거늘 이 제독이 어떤 분인데 그 분이 회정(回程)할 때에 후대(厚待)하지 않는단 말인가. 일로(一路)의 수령들을 출참(出站)시키지 않고 다른 곳에 써도 되는 것인가. 전엔 다만 봉산(鳳山) 한 고을뿐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승지의 말을 들으니 극히 해괴하다."

하였다. 장운익(張雲翼)이 아뢰기를,

"이괵(李𥕏)의 말을 들으니, 제독이 자리[茵席]를 구하고자 하였는데 역시 깨끗하지 못한 것을 바쳤다고 합니다."

하고, 심희수(沈喜壽)가 아뢰기를,

"지극히 경악스럽습니다. 이 제독의 마음으로는 자기가 돌아가는 때이기 때문에 대우가 이렇게 태만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본관(本官)은 어디로 갔는가?"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유영경(柳永慶)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듣지 못했습니다."

하고, 희수가 아뢰기를,

"아마도 배장(裴章)의 집에 가서 있을 것입니다."

하고, 홍진이 아뢰기를,

"조인득(趙仁得)도 갔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이덕형(李德馨)도 병이 나서 뒤떨어졌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덕형도 병이 났다고 하니 접반사(接伴使) 한 사람을 대신 차출(差出)했으면 싶다."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이해수(李海壽)의 말을 들으니, 제독이 용천(龍川)에 당도했을 적에 어렵게 호란(糊亂)399) 을 구하여 올리었으나 제독은 선후정과(獮猴正果)400) 한 접시만을 마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용천이 어느 땅인가?"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서흥(瑞興) 땅입니다. 대체로 중국 장수가 외국에 왔다가 개선(凱旋)하게 되면 그 체모(體貌)가 반드시 여유가 있는 법인데 제독은 어찌 이처럼 10여 명만을 거느리고 서둘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희수가 아뢰기를,

"경략과 회의하러 간다고 합니다."

하고, 홍진이 아뢰기를,

"신의 생각에는 왜장(倭將) 소서비(小西飛)척금(戚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왔는데 반드시 이 왜를 처리하기 위하여 오는 것인 듯합니다. 이여백(李如栢)장세작(張世爵)은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하고, 운익이 아뢰기를,

"양원(楊元)도 1백여 명을 거느리고서 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소서비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라면 친신(親信)한 양원 같은 자 한 명만 보내도 될텐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달려왔겠는가. 어쩌면 왜를 공격하기 위하여 와서 상의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황해도에서 다른 장관들이 왕래할 때에도 저와 같이 대접하였는가? 아니면 이번에 제독이 올 때에만 우연히 이렇게 대접한 것인가?"

하니, 희수가 아뢰기를,

"전부터 비록 미관(微官)이라 하더라도 후하게 대우한 경우도 있고, 혹 미처 지대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찌하여 다른 현(縣)으로 하여금 겸하게 하지 않았는가?"

하니, 희수가 아뢰기를,

"궁벽한 군(郡)으로 하여금 지대를 겸하게 하면 궁벽한 군마저 피폐(疲弊)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대신들의 계사(啓辭)를 내어 보이니, 심희수·홍진·장운익이 모두 아뢰기를,

"처치를 잘못한 것은 감사(監司)이니 감사도 가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중국 사신의 눈 앞에 범죄자(犯罪者)가 있을 경우 반드시 구속하여 만났으니, 지금 만약 감사가 간다면 이렇게 하지 않겠는가?"

하자, 홍진이 아뢰기를,

"나포(拿捕)하여 오는 우리 나라의 법에 대해 당관(唐官)401) 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수령일 경우 대신으로 하여금 벌(罰)을 결정하게 하니, 감사도 대신이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반드시 대략이나마 경동(驚動)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정상을 알리고 또 그간의 곡절을 알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배행(陪行)할 재상(宰相)을 속히 결정하라. 적추(賊酋)가 동성(東城) 근처에 있다고 하는데 어찌 대가(大駕)가 지나는 곳을 그렇게 가까운 곳으로 잡을 수 있는가. 저 적으로 하여금 나의 행색(行色)이 외롭고 위태로운 것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용산(龍山)의 왜도 아직까지 머물고 있으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 접대사(接待使)를 차송(差送)할 일은 속히 말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하니, 희수가 아뢰기를,

"통정(通政) 중에서 뽑는다면 홍섬(洪暹)이 할 만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어찌 통정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72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399]
    호란(糊亂) : 묽은 죽인 듯함.
  • [註 400]
    선후정과(獮猴正果) : 다래로 만든 수정과 종류인 듯함.
  • [註 401]
    당관(唐官) : 중국 관원.

○三更, 傳曰: "承旨引見。" 左承旨洪進曰: "提督馳來一百五十里, 而無人出見云。" 上曰: "然則, 傳語之誤也。 予不知之。" 洪進曰: "尤甚不出見者, 自東坡, 至金巖安城云。 大槪直路守令, 皆出於大駕支待之故也。" 上曰: "如黃州, 牧、判官, 皆出於大駕支待, 人物濔漫。 雖平時, 豈可如是? 古之人君, 每年巡狩之時, 亦豈如此乎? 飮食之豐侈, 雖人君, 平時闕內所供, 豈可如此之怪異乎? 我國, 以飮食將誤, 而平安道亦有此弊。 凡人渴, 則可以飮粥, 而豈至於七八器之多乎? 物産亦非本道之所出, 而雖人君, 有。嘗見者, 此必風。 尋常天將之往來者, 猶當力於支待, 李提督是何如人, 而於其回程時, 不爲厚待乎? 一路守令, 亦豈可不爲出站, 而用於他處乎? 予之所聞, 只謂鳳山, 今聞承旨之言, 極爲可駭。" 張雲翼曰: "聞李𥕏之言, 則提督欲得茵席, 而亦不潔云。" 沈喜壽曰: "至爲駭愕。 天將之心, 以爲回還時, 故如此怠慢也。" 上曰: "本官何去乎?" 雲翼曰: "不見柳永慶, 故不及聞之矣。" 喜壽曰: "意者, 必來裵章家也。" 洪進曰: "趙仁得亦往而未及到, 李德馨亦病落後云。" 上曰: "李德馨亦病云, 接伴使一員欲代出。" 雲翼曰: "聞李海壽之言, 則提督到龍川, 艱得糊亂飮食以進, 則只飮獮猴正果一器云矣。" 上曰: "龍川何地乎?" 雲翼曰: "瑞興。 大槪天將來于外國而凱旋, 則體貌必從容, 而何如是只率十餘人, 兼程進去乎?" 喜壽曰: "與經略會議云云。" 洪進曰: "臣意, 則倭將 小西飛, 令戚金守直而來, 必欲處置此而來。 李汝栢張世爵當還送云。" 雲翼曰: "楊元, 亦率百餘人來矣。" 上曰: "欲議小西飛之事, 則雖送親信一人, 如楊元輩, 亦可爲之, 而何必以此馳往? 亦豈欲攻而來議乎? 黃海一道, 他將官往來, 亦如彼待之乎? 今於提督之來, 偶如是乎?" 喜壽曰: "從前, 雖微官, 或有優待者, 或致不及支待者有之。" 上曰: "然則何不令他縣兼之乎?" 喜壽曰: "以僻郡兼之, 而僻郡亦疲云。" 上以大臣啓辭出示, 喜壽洪進雲翼皆曰: "誤爲處置者, 監司也。 監司亦可去矣。" 上曰: "天使所見處, 如有犯罪者, 必鎖拿以見矣。 今不當如是爲之乎?" 洪進曰: "我國拿來之法, 官皆知之。 守令則令大臣決罰, 監司亦可治罪矣。" 上曰: "必欲使略知我國驚動之情, 且使知此間曲折可也。 陪行宰相, 必速定之。 賊酋置於東城近處云。 大駕所去處, 豈可置之於至近之地乎? 渠賊不可使知行色之孤危。 且龍山, 亦尙留云, 何以爲之? 接待使差送事, 速言而處之。" 喜壽曰: "如通政中, 黃暹可爲矣。" 上曰: "豈可以通政送之乎?"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72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