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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41권, 선조 26년 8월 13일 갑오 2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하삼도의 상번군을 유 총병의 절제를 받아 훈련하게 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쟁은 오래도록 끝나지 않고 있는데 재용(財用)이 먼저 고갈되어 남방의 전사(戰士)들이 계속 무너져 흩어졌으므로 지금에 와서는 적과 대진(對陣)하고 있는 자는 오직 중국 군사들 뿐입니다. 중국 장수가 전후에 간절하게 분부한 것은 오직 병사(兵士)를 모집하여 성세(聲勢)를 도우라는 것이었는데, 병사를 모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있는 군사들마저 거듭 줄어들어 점차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경략의 자문을 보건대, 역시 이 문제부터 말하였습니다. 지금의 사세로서는 군사를 모으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군량을 조달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지금 비록 군사를 끌어 모은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평상시 하삼도(下三道)에서 상번(上番)하는 군사는 충청도가 5백여 명, 전라도가 9백여 명, 경상도가 3백여 명으로 도합 1천 7백여 명이었으니, 전사(戰死)한 자와 도산(逃散)한 자를 제외하더라도 현존 인원(人員)이 매번(每番)에 반드시 1천여 명을 밑돌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두 달마다 휴번(休番)하고 각각 봉족(奉足)이 있습니다. 경기·강원·황해의 숙위(宿衛)도 역시 중요하니, 예(例)에 따라 상번(上番)시켜야 합니다. 충청·전라·경상도의 상번하는 군사는 각각 그 도의 감사로 하여금 예(例)에 비추어 뽑아 서울의 상번하는 예에 따라 날짜를 정해 도원수(都元帥)에게 보내어 한결같이 유 총병(劉總兵)의 절제를 받게 하고, 겸하여 남병(南兵)과 기거(起居)를 같이하면서 의갑(衣甲)과 기계(器械)를 점차 익혀 저들과 같게 되도록 하는 한편, 기복 격척(起伏擊刺)하는 법을 훈련하게 할 일로 3도 감사와 도원수에게 하유(下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71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역(軍役) / 외교-왜(倭)

○備邊司啓曰: "兵久不解, 財用先竭, 南邊戰士, 潰散相繼, 到今對壘, 只有天兵。 天將前後, 丁寧分付, 唯是募兵聚士, 以助聲勢, 而不惟不能募聚, 重以削弱, 漸至於無。 今觀經略咨文, 首以此爲言。 以今事勢, 聚兵非難, 而饋餉最難。 今雖驅聚, 必將旋散。 常時下三道上番軍士, 忠淸道五百餘名, 全羅道九百餘名, 慶尙道三百餘名, 合一千七百餘名, 陣亡逃散外, 今之所存, 每番必不下千餘。 兩朔休番, 各有奉足。 京畿江原黃海, 則宿衛亦重, 自當依例上番矣。 忠淸全羅慶尙道上番軍士, 令各其道監司, 照例抽出, 依京上番例, 定日起送于都元帥處, 一聽劉總兵節制, 兼與南兵, 同其起居, 衣甲器械, 漸習與同。 且令訓練起伏擊刺之法事, 下諭于三道監司、都元帥處, 何如?"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71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역(軍役)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