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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9권, 선조 26년 6월 13일 병신 5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험한 곳에 관방을 세워 왜적을 방어하라는 경략의 제안

경략이 험준한 곳에 관방(關防)을 세워 나라를 지키면 왜적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 대략에,

"선왕이 국도를 정하고 지방을 구획하는 제도가 옛적부터 기록되고 있습니다. 조선은 밖으로는 큰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안으로는 겹겹이 산으로 막혀 있으니, 본래 형승(形勝)의 땅이며 사색(四塞)의 구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조령(鳥嶺)·화현(火峴)·죽령(竹嶺) 세 곳은 돌길이 가파르고 산봉우리가 치솟아 있으니, 이는 바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마련하여 왕국을 세워준 것입니다. 만일 중심으로 조령을 지킨다면 왕경(王京)이 편안해질 것이요, 서쪽에서 화현을 지킨다면 전라도가 안전할 것이며, 동쪽에서 죽령을 지킨다면 강원도가 편안해질 것인데 어찌하여 천연의 험지를 그대로 방치한 채, 인모(人謀)를 다하지 못하여 지난해에 왜적으로 하여금 기탄없이 종횡 무진하게 하였습니까.

지금 왜적이 비록 도망했다고는 하나, 만일 다시 침략한다면 어떤 계책으로 대응하려 하십니까? 유수(留守)하고 있는 군사만 해도 중과 부적의 염려가 있으니, 오늘날 왕국이 오래 편안을 누리고 후일에도 잘 지낼 수 있는 계책을 도모하려면 험준한 곳에 관방을 설치하여 굳게 지키는 것보다 더한 상책은 없을 것이니, 이것이 제일의 급선무입니다. 왕께서는 속히 유능한 배신에게 맡기시되 모든 공역을 분담시켜 공인을 모으고 재목을 수집하여, 조령·화현·죽령 세 곳에다 각각 높고 좁으며 굴곡이 잘된 곳을 택하여 길 한복판에 중관(重關)을 세우고, 옆에 있는 작은 길에는 모두 담을 쌓아 막아서, 왕래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반드시 관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통행하게 하고, 관 밖에는 모두 참호와 갱도(坑道)를 만들되 모든 수목을 베어버릴 것이며, 관 안에는 덮개 있는 영방(營房)과 혹은 우묵한 토굴을 만들어서 만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게 하십시오. 그리고 관문은 가급적 높고 견고하게 하되 중국의 월성(月城)의 형태와 같게 하고 이중문을 설치하여 돌아서 들어가게 할 것이며, 여장타구(女墻垜口)를 사람 키와 같은 높이로 세우고, 수구(水溝)와 총 쏘는 구멍도 안배하고, 둥근 나무와 많은 돌을 포치하여, 한 사람이 관을 지키면 만 명의 군사라도 올려다 볼 수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본부는 일면으로 남쪽에 있는 군사를 징발하여 왕을 위하여 이 세 곳을 지키게 할 것이니, 왕께서도 속히 도모하시어 만에 하나라도 지체되거나 착오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였다. 회자하였는데 대략에,

"귀부(貴部)는 흉적을 토벌하여 남은 백성을 안정시킴으로써 할 수 있는 임무를 거의 다하고 무기를 거두어들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우리 나라를 위하여 세밀하게 선후책을 강구하시었습니다. 요컨대 본지(本地)에 각각 중관(重關)을 설치하여 밖으로는 침략당하는 화를 방지하고 안으로는 중심지를 호위하게 했으니, 제도가 지극히 세밀하고 또한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것으로 이는 모두 나라를 지키는 양책이며 사나운 적을 방어하는 요무(要務)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가 다시 생업에 안정하여 영원히 후환이 없게 된 것이 모두 귀부가 준 혜택입니다. 돌을 깎고 쇠를 녹여서도 그 공을 다 새길 수 없고, 뼈를 갈고 몸을 바쳐서도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적이 재침할까 염려하여 군대를 나누어 지켜주고 있으니, 당연히 성화같이 관원을 보내어 빠른 시일안에 설관(設關)의 작업을 해야 할 것이지만, 우리 나라는 흉적의 화를 입은 나머지 기근과 역질에 죽은 자가 십중 팔구였고, 군읍이 모두 황폐되어 밥 짓는 연기조차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니, 이같이 인력이 고갈되었는데야 어찌하겠습니까. 불러내어 독촉하기가 어려울 듯한데, 되풀이하여 자문이 이르니 감격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바입니다. 이미 각도에 영을 내려 급속히 인부를 조발, 파견하여 먼저 가서 관을 설치하고, 수목을 베며, 작은 사잇길은 모두 막아버리게 하였으니, 따라서 거기에 소용되는 벽돌과 흙과 나무도 힘껏 마련하여 차관(差官)의 동역(蕫役)을 기다리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39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0면
  • 【분류】
    외교-명(明) / 군사-관방(關防) / 군사-전쟁(戰爭)

○經略爲設險守國, 以杜患事。 略曰:

先王體國、經野之制, 自昔記之。 朝鮮, 外環大海, 內障重山, 本形勝之地, 四塞之區。 卽如鳥嶺火峴竹嶺三處, 石磴巉巖, 峯巒崒嵂, 此正天造地設。 以立王國者, 使中扼鳥嶺, 則王京安; 西扼火峴, 則全羅安; 東扼竹嶺, 則江原安。 奈之何天險徒存, 人謀未盡, 使去歲之, 得以肆無忌憚耶? 今雖遁, 倘若再來, 將何計處? 卽留守之兵, 亦慮寡難敵衆, 今日爲王國, 圖久安善後之策, 無如設險固守, 爲第一要務。 王其速委的當陪臣, 分設幹辦, 鳩工聚材, 將鳥嶺火峴竹嶺三處, 各險峻、(挾)〔狹〕 隘、盤繞、屈曲之間, 當道置立重關, 傍有小徑, 盡皆堵截, 使往來者, 必待啓關而行。 關外皆挑濠塹品坑, 凡有木植, 盡行刊去; 關內置蓋營房或窩鋪, 務足萬人栖止。 關門仍要高厚堅固, 如中國月城之形。 重門旋轉而入; 女墻、垜口, 移與人齊; 安排水溝、銃眼; 布置滾木、累石, 務使一人當關, 萬夫莫能仰視。 本部一面, 分發南兵, 爲王留守此三處矣。 王當速圖之, 萬勿遲誤云云。

回咨略曰:

貴部勦除兇寇, 奠安遺黎, 能事幾畢, 洗兵有期, 猶爲小邦, 曲圖善後。 要於本地, 各設重關, 外防侵軼之禍, 內衛腹心之地, 經營極其周詳, 形勝盡其曲折, 此竝守國之良規, 禦暴之要務。 小邦復安生理, 永無後患者, 皆貴部賜也。 伐石ㆍ冶金, 不足銘功; 粉骨、糜身, 不足酬恩, 而況慮賊再擾, 分兵把守, 所當星火遣官, 尅期興工, 而小邦自被兇禍, 飢饉、疾疫, 死者什八, 郡邑荒殘, 烟火蕭然, 奈此人力殫竭? 恐難拘喚而督倂, 反覆來咨, 感懼交幷。 已令各道, 急調遣下人丁, 前去設關, 刊去木植, 堵塞蹊徑, 仍將該用甎石土木, (儘)〔盡〕 力措辦, 以候差官董役云云。


  • 【태백산사고본】 21책 39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0면
  • 【분류】
    외교-명(明) / 군사-관방(關防)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