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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8권, 선조 26년 5월 1일 갑인 3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경략 송응창이 왜적을 추격하는 일에 대해 조선에 보낸 자문

경략 병부 우시랑(經略兵部右侍郞) 송응창(宋應昌)이 우리 나라에 자문을 보내 왔는데, 그 내용의 대략에,

"병가(兵家)의 일은 계책이 많은 자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중요한 관건은 왜선(倭船)을 불태우는 것이 첫째의 일입니다. 그러나 왜선을 불태워버렸다고 해서 왜군이 배수진(背水陣)을 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대군(大軍)이 뒤를 따라 계속하여 전진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군하면 저들도 행군할 것이고 저들이 지치면 우리 군사도 지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혹 저들이 앞의 험한 곳에 복병이 있는 줄을 알고 몸을 돌이켜 돌격해 온다면 ‘궁지에 몰린 적을 추격하지 말라.’는 병법의 금계(禁戒)를 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혹시라도 왜구가 우리들이 앞뒤에서 협공하는 것을 보고 한 요새를 골라 점령해서 산모퉁이를 등지고 방비하면서 각도의 군읍 중 양식을 구할 만한 곳을 살피고 있다가 습격해 탈취하여 거처할 곳을 만든다면 이것 역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왕께서는 빨리 명을 내려 수군(水軍)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행군하여 양산(梁山)·동래(東萊)·부산(釜山)과 낙동강 하류로 미리 가서 모든 왜선을 불태워 파괴시키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왜선에 어찌 왜병이 지키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또한 수군에게 영을 내려 신중히 만전을 기하도록 하십시오. 배를 불태운 뒤에는 곧 수군으로 하여금 해구(海口)를 나누어 점거하여 깃발을 많이 설치해 놓고 기를 흔들면서 일제히 함성을 지르게 하십시오. 저들이 해구로 와서 도전하거든 우리는 군대를 거두어 배안으로 들어가서 싸우지 말 것이며, 저들이 몸을 돌려 추격하는 아군에게 대항할 경우에는 수군이 해안으로 올라가서 뒤로부터 협공하고, 저들이 주둔해 있을 경우에는 밥을 지을 때나 밤중에 조용히 휴식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곧 번갈아가며 출격하는 방법을 쓰십시오. 그리고 해구에다 총포를 설치하여 마치 그들을 공격할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저들을 소란(擾亂)만 시켜, 밥이 목구멍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한 다음 육군이 뒤따라 추격하되, 때때로 적을 방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추격병의 한 부대는 10분의 2정도의 병력으로 유기병(遊騎兵)138) 을 만들고 대군은 중앙에 위치한 다음, 좌군과 우군은 양 날개처럼 벌리고 있다가 왜적이 몸을 돌려 대적하거든 유기병이 먼저 그 선봉을 저지하고 대군이 잇따라 진격하도록 하며, 왜구가 양쪽으로 나누어 횡대로 진격해 오거든 우리의 좌군의 우군이 먼저 진출하여 적을 저지하고 대군이 잇따라 맞아 싸우게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저들이 요새를 점령하고 머무를 경우에는 우리 군사도 역시 험한 요새를 점령하여 대비할 것은 물론 저들이 와서 싸움을 걸더라도 우리는 그들과 굳이 싸울 필요가 없으니, 저들은 양식이 다 떨어지면 형편상 반드시 도주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아군도 전로를 살펴 나누어 배치하여 잇달아 진격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범[虎]을 충동질하여 산을 떠나게 하는 방법입니다. 각 고을의 방로(傍路)에 있는 왜적 가운데 습격해서 잡을 수 있는 경우에도 빨리 궁벽한 각 고을의 군병을 조달하여 요해처로 미리 보내어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오로지 적의 통로를 막기만 해야 할 것이요 왜구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왜구들은 양식이 떨어지면 틀림없이 오래 공격할 수 없어 반드시 어지러이 도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대군이 기회를 보아 섬멸하여 한 사람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 사이의 온갖 변화는 멀리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므로 제대로 제압할 수 있는 것은 군을 영솔하고 있는 각 고을에서 계획대로 행동하여 만전을 기하도록 힘쓰는 데 있는 것입니다."

하였는데, 상이 정원에 전교하기를,

"경략이 또 자문과 패문(牌文)을 보내어 서두르기를 이와 같이 하니, 아마도 책임이나 때우려는 계책은 아닌 듯하다. 생각건대 중국 조정에서는 반드시 적을 공격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고 하는 의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니, 어쩌면 하늘이 적을 멸하려 하시나 보다. 이것은 우리 나라가 본래부터 소망하던 바였으나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임금과 신하가 마땅히 서로 통곡하고 바삐 서둘러 사력을 다해서 조치하여 기필코 이 왜적을 섬멸해야 할 것이니 어찌 지체할 수 있겠는가. 정원은 근밀(近密)한 곳에 있으니 어찌 또한 계책이 없겠는가. 생각한 바가 있으면 생각나는 대로 아뢰라. 다만 내 생각으로는 중국군이 남하하여 아군과 힘을 합하게 되면 적을 토벌하지 못할 것이 없는데 걱정되는 것은 군량 조달 뿐이다. 전에도 유사(有司)가 제대로 조처하지 못하여 개성부에서 양식이 떨어져 군대를 돌이키는 일을 저지른 적이 있었으니 더욱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99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註 138]
    유기병(遊騎兵) : 기병 유격대.

○經略兵部右侍郞應昌, 移咨于本國。 略曰: "兵家之事, 多筭者勝。 今日機宜, 燒船爲第一着。 然船燒矣, 能保其不爲背水之陣乎? 大兵隨後尾進, 是矣。 然我行彼亦行, 彼固困, 而我軍亦不能不乏。 儻彼知前有阻伏, 飜身突來, 能不犯追窮寇之戒乎? 今或見我前後夾攻, 擇一險要, 負嵎據守, 視各道郡邑, 可以就食之處, 卒然襲取, 而爲棲身之所, 又不可不爲之慮也。 王速出令, 使水兵, 星夜前赴梁山東萊釜山洛東江下流, 凡有船, 盡行燒毁。 然船豈無兵防守? 亦令水兵加嚴謹, 搠務保萬全。 燒船後, 卽令水兵, 分據海口, 多張旗號, 搖旗吶喊。 彼來海口挑戰, 我則斂兵入船, 勿與之戰, 彼若回鬪我追兵, 則水兵登岸, 從後夾擊, 彼若屯住, 俟其埋鍋造飯之時, 夜靜休息之際, 卽用分番迭休法。 於海口, 施放銃砲, 若欲攻彼之狀, 而其實擾之, 使其食不得下咽, 而目不得一合, 陸兵隨後追進, 而不可不時時防敵追兵。 一枝則以十分之二, 爲遊騎, 大衆居中, 左右若爲兩翼, 如倭奴回敵, 則遊騎先抵其鋒, 而大兵繼進, 如兩分橫來, 則我左右先抵之, 大兵繼迎。 如彼據而駐, 則我兵亦據險待之, 彼來挑戰, 我不必與之戰, 彼糧自盡, 勢必走。 而我軍亦照前分布, 聯絡而進。 蓋防其用弔虎離山計也。 至如各邑, 有傍路, 可以襲取者, 速調便僻各邑軍兵, 前來緊要處所, 深溝高壘, 專一把截, 不可與戰。 倭糧盡, 必不能久攻, 勢必亂竄。 然後大兵相機勦殺, 務使其無一生還。 其間千變萬化, 難以遙度, 中制者, 是在領兵各官, 籌畫擧動, 務保萬全。" 云云。 敎于政院曰: "經略又移咨牌文, 令急如此, 恐非塞責之計。 意者, 中朝必有以不擊爲非之論, 或天欲滅賊也。 此我國素所願而不得者。 君臣所當相與痛哭奔走, 盡死力措置, 期滅此賊, 何可緩緩? 政院在近密之地, 亦豈無計? 如有所思, 隨思卽啓。 但予意, 則天兵苟能南下, 與我兵協力, 則不患不能勦賊, 所患者糧飼耳。 前者有司不能措置, 以致開城府糧匱, 旋師之患, 不可不更加心慮也。"


  • 【태백산사고본】 20책 3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99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