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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7권, 선조 26년 4월 28일 임자 1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대신이 정릉을 옮기는 일을 아뢰다

대신이 아뢰기를,

"산릉(山陵)은 국가의 대사(大事)입니다. 정릉(靖陵)을 다시 정한 뒤에는 그곳의 지형에 대해서 밖에 있는 사람들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때때로 강물이 불어나면 홍살문까지 침수되어 제물(祭物)을 수송하느라 작은 배로 정자각(亭子閣)까지 왕래 한 경우가 많았으므로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매양 미안하다고 해온 지 오래입니다. 문정 왕후(文定王后)128) 가 돌아가셨을 때에 명종(明宗)께서 ‘능을 옮긴 이후로 국가에 길한 일이 없었다.’고 하시고 별도로 태릉(泰陵)을 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근자에 일어난 참통한 화가 이처럼 망극하니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음이 더욱 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감히 아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도 약간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사(大事)이니 마땅히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라야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7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97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註 128]
    문정 왕후(文定王后) : 조선조 중종(中宗)의 계비(繼妃)인 윤씨(尹氏)를 가리킴.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윤지임(尹之任)의 딸. 1545년에 인종(仁宗)이 승하하고 자기가 낳은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수렴 청정(垂簾聽政)하게 되었는데, 친정 아우인 윤원형(尹元衡)을 시켜 을사 사화(乙巳士禍)를 일으켜 대윤(大尹) 일파를 제거하고 척벌 정치를 하였음.

○壬子/大臣啓曰: "山陵國之大事。 靖陵改卜之後, 其地形勢, 外間之人所不能知。 但有時江漲, 浸及於紅門, 祭物輸轉, 多以小船, 往來於亭子閣, 群議每以爲未安者久之。 文定王后之喪, 明廟敎以: ‘遷陵之後, 國無吉事。’ 至於別卜泰陵。 今者慘痛之禍, 至於此極, 群情未安益甚。 何以爲之? 敢稟。" 上曰: "予亦粗有此意。 然大事宜從群議。"


  • 【태백산사고본】 20책 37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97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