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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37권, 선조 26년 4월 2일 병술 6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윤근수가 심 경략이 사용재와 서일관을 일본에 보냈다고 치계하다

예조 판서 윤근수(尹根壽)가 치계(馳啓)하였다.

"송 경략이 어제 사용재(謝用梓)서일관(徐一貫)에게 명하면서 그들에게 각각 참장(參將)·유격(遊擊)의 관명을 임시로 주어 왜노를 따라 바로 일본에 가게 하였고 심 유격부산진까지 갔다가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용재일관은 1일에 출발할 것이고 심 유격은 오늘 출발했습니다. 이에 앞서 듣건대, 경략이 제본(題本)을 보낸 뒤에 경력(經歷) 심사현(沈思賢), 수비(守備) 호측(胡則), 지휘(指揮) 오종도(吳宗道)사용재, 서일관을 불러서 매우 오랫동안 분부하였는데 심사현 등이 영기(令旗)와 영패(令牌)를 각각 4개씩 수령하여 가지고 나와서 서로 돌아보며 당황해 하였으며, 사용재서일관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발을 구르며 ‘이 일은 모두 심 유격이 한 것인데 송 경략이 우리들에게 이와 같이 분부하니 우리들은 장차 어쩌면 좋단 말인가. 적정(賊情)의 사실 여부를 우리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고, 다시 경략에게 가서 간절히 고하였으나 모면할 수 없게 되자, 돌아와서 ‘한번 죽기는 마찬가지인데 어쩌겠는가.’라고까지 하였다 합니다. 또 역관 홍수언(洪秀彦) 등이 들은 바에 의하면 ‘송 경략이 심사현이 이하 다섯 관원을 파견하여 서울로 보냈고 제독이 또 심유경주홍모(周弘謨)를 서울에 파견하여 왜적에게 물러가도록 타이르게 하였는데 적이 물러간다면 파견한 관원들을 시켜 왜적들을 압송하여 관백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관백의 항서(降書)를 받아오되, 중국에서 파견한 장수와 같은 수의 왜장을 서울에 머무르게 하여 인질로 삼아 송대빈(宋大斌)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가, 파견한 관원이 돌아온 다음에 놓아보낸다.’ 하였는데, 이것은 현재 왜적과 강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심 유격도 이 점을 매우 어렵게 여긴다고 합니다. 송대빈·주홍모는 26일에 이미 떠났고 심사현·호측·오종도·심유경도 오늘 출발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7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79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禮曹判書尹根壽馳啓曰: "經略, 昨日, 命謝用榟徐一貫, 假用榟一貫參將、遊擊官名, 隨奴直往日本, 沈遊擊, 則往釜山鎭而還。 用榟一貫, 初一日當發, 沈遊擊則今日起身。 先時聞見, 則經略發題本後, 招經歷沈思賢, 守備胡則, 指揮吳宗道謝用榟徐一貫聽分付甚久。 思賢等領令旗、令牌各四而出, 相顧錯愕。 二人, 至於墜淚頓足曰: ‘都是沈遊擊所爲, 而宋爺乃如是分付於俺等, 俺將何爲? 賊情眞不眞, 俺何知之?’ 更入經略前哀告, 不得免, 至曰 ‘死是一死, 奈何?’ 譯官洪秀彦等, 又聞: ‘經略差沈思賢以下五官, 往王京, 提督又當差沈惟敬周弘謨往王京, 諭退去, 如果退去, 則使差官等, 仍押衆, 到關白處, 討其降書, 而留賊將領, 一如差去將官之數, 質之王京, 使宋大斌防守, 待差官之回, 方始放去。’ 云。 此則時未與奴講定, 遊擊甚以爲難云。 宋大斌周弘謨, 則二十六日已爲前去。 沈思賢胡則吳宗道沈惟敬, 則今日亦已發行矣。"


    • 【태백산사고본】 20책 37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79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