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참봉 이이첨이 광묘의 영정을 모셔오다
광릉 참봉(光陵參奉) 이이첨(李爾瞻)이 광묘(光廟)062) 의 영정을 모셔왔는데, 상이 백관을 거느리고 5리쯤 나와서 지영(祗迎)하였다. 변란이 나던 처음에 봉선사(奉先寺)의 중 삼행(三行)이 영정을 봉선전(奉先殿)에 묻어두었었는데, 뒤에 적에게 발굴되어 찢어버리려고 하는 것을 삼행이 애걸하여 보전해서 본사 은밀한 곳에 봉안하였다. 그 뒤 서울의 적이 더욱 독을 부려 날마다 광릉 근처에 불을 지르므로 이첨이 일이 다급함을 듣고 송경(松京)에서 곧장 적로(賊路)를 범하여 가며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서 광릉에 이르렀는데, 이날 서울의 적 7진(陣)이 또 나와서 화염이 하늘을 찌르고 적세가 점점 긴박하여 절의 중들이 다 흩어졌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이첨이 삼행을 보고 영정이 있는 곳을 물어 창황중에 받들고 나오는데, 이때 적의 불길을 벌써 절 앞골목 어구까지 번졌다. 숲속을 헤치고 하룻밤에 90여 리를 걸었으며 적의 진영을 두번 만났으나 간신히 빠져나와 곧바로 행재소로 나아갔다. 이때 조릉사(朝陵使) 원천군(原川君)063) 이 치계하여 이첨이 나라를 위하여 몸을 잊은 의리를 극구 말하였고, 경기 방어사(京畿防禦使)가 그날 밤에 그 절의 본전과 광릉의 재실 2백 간이 모두 불에 탔다는 소식을 행조(行朝)에 치문(馳聞)하였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모두 이첨이 영정을 받들고 온 것을 다행하게 여기었다.
이때 역대 왕의 영정이 다 적의 화를 면치 못하였는데, 유독 집경전 참봉(集慶殿參奉) 홍여율(洪汝栗)이 태조의 영정을 받들었고, 광릉 참봉 이이첨이 세조의 영정을 받들어 끝까지 보존해내었다. 그러나 여율을 집경전 참봉으로서 본전의 영정을 받든 것이고 또 열읍이 호송해주는 도움을 받았지만, 이첨은 광릉 참봉으로서 봉선전의 영정을 받든 것으로 조정의 명령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첨이 변란 처음부터 피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의병을 모아 늘 군막에 있었고 또 이번에 적의 불길 속에서 영정을 받들어 내왔으므로 사람들이 다 의롭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6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65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윤리(倫理)
○光陵參奉李爾瞻, 奉光廟影幀而來, 上率百官, 祗迎于五里程。 變初, 奉先寺僧三行, 埋置影幀于奉先殿, 後爲賊所掘, 將裂毁, 三行哀乞得全, 奉安于本寺隱密處。 厥後京賊益肆毒, 逐日焚蕩于光陵近處, 爾瞻聞事急, 自松京直犯賊路, 晝伏夜行, 得至光陵, 是日京賊七陣又出來, 烟焰漲天, 賊勢漸迫, 寺僧盡散。 日正昏黑, 爾瞻覓得三行, 問影幀所在, 蒼黃奉出, 則賊火已及於寺之洞口矣。 穿越林莾, 一夜行九十餘里, 再遇賊鎭, 僅以得免, 直詣行在所。 朝陵使原川君馳啓, 極言爾瞻爲國忘身之義, 京畿防禦使, 以其夜本寺本殿及光陵齋室二百間, 盡燒賊火事, 馳聞行朝, 諸臣莫不以爾瞻奉出影幀爲幸焉。
"時, 列聖影幀, 皆未免賊禍, 獨集慶殿參奉洪汝栗奉太祖影幀, 光陵參奉李爾瞻奉世祖影幀, 竟得保全。 然汝栗以集慶殿參奉, 奉本殿影幀, 且賴列邑護送之助, 爾瞻以光陵參奉, 奉出奉先殿影幀, 非有朝廷命令也。 爾瞻自亂初, 不爲避亂計, 募聚義兵, 長在戎幕, 又能奉出影幀於賊火之中, 人多義之。"
- 【태백산사고본】 19책 36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65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