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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5권, 선조 26년 2월 11일 병신 5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국왕이 평양으로 돌아가 머물면서 왕성의 수복을 도모하라는 송응창의 자문

시랑(侍郞) 송응창(宋應昌)이 우리 나라에 이자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병부(兵部)의 주청을 보건대 ‘왜노(倭奴)조선을 점거하고 몰래 내지(內地)를 범하려고 꾀하여 조선의 군신(君臣)이 종묘 사직을 잃고 강변에 파천하였는데 우리 황상께서 공순(恭順)한 속방을 불쌍히 여기어 개연히 장수(將帥)를 명해 군사를 일으켜 국경을 넘어 토벌하라는 황은을 힘입었다. 대병이 평양에 이르자마자 한번 북을 쳐 성을 함락시켰는데, 전후의 보고에 의하면 대략 사로잡거나 죽인 왜노가 1천 6백여 명이 넘고,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죽은 자도 만으로 헤아린다고 하니 중국의 위엄은 이미 크게 떨친 것이다. 다만 평양이 이미 수복되었으니 방수(防守)를 엄하게 해야 할 것인데 조선 군신은 어찌 같이 파천해 있는가. 조선 국왕을 깨우치어 평양에 돌아가 있게 한편으로는 중국 조정이 소방을 애호하는 인덕(仁德)을 보이고 한편으로는 조선 백성의 근왕(勤王)의 뜻을 결속(結束)시키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조선 국왕은 즉시 배신과 군민(軍民)들을 거느리고 평양으로 되돌아가 머물면서 방수하고 파죽의 형세를 틈타 의병(義兵)을 격려하여 힘을 합해 진격하여 소탕을 기약하고, 왕성을 수복한 뒤에는 즉시 나아가 서울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30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행행(行幸)

宋侍郞 應昌移咨本國, 有曰:

據兵部奏請: "倭奴占據朝鮮, 潛圖內犯, 以致該國君臣, 宗祀失守, 播越江干, 仰賴我皇上憐念恭順屬封, 慨然命將興師, 出疆援勦。 而大兵甫至平壤, 遂一鼓而下, 前後節據, 揭報大約, 擒斬倭奴一千六百有餘, 焚溺死者以萬計, 則中國之威, 業已大振矣。 但平壤旣得, 防守宜嚴, 朝鮮君臣, 豈得仍前播越。 諭令朝鮮王, 還居平壤, 一以示天朝字小之仁, 一以繫彼國勤王之志。" 朝鮮國王, 卽日率領陪臣軍民人等, 還赴平壤, 駐箚防守, 垂此破竹之勢, 淬礪義兵, 會合征勦, 期於蕩平, 如旣克王城, 卽聽進守。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30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행행(行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