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이 벽제에서 패한 이 제독이 개성으로 퇴각하려 한다고 치계하다
도체찰사 풍원 부원군(豐院府院君) 유성룡이 치계하였다.
"어제 제독이 개성부로 돌아가 인마(人馬)를 조금 휴식시키려 하기에 신이 이덕형(李德馨)과 더불어 백방으로 간절히 진술하기를, ‘대군이 한번 물러나게 되면 민심이 흩어진다.’고 하자 이 제독은 노하면서 ‘나는 군사들을 휴식시켰다가 다시 진격하려고 할 뿐이지 어찌 후퇴하여 돌아갈 생각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어찌하여 사세를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번거롭게 말하는가?’ 하고 그대로 정지하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땅거미가 질 때에 통사(通事)를 불러 좌우를 물리치고 은밀하게 전진할 계책을 아주 자세히 말하고는 또 말하기를, ‘정월(正月)은 나의 본명(本命)과 상충(相衝)되어 불길하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말에서 떨어진 것이며, 또 적을 치는 데도 불리하였으니 반드시 다음 달이 되어야 군사를 전진시킬 수 있다. 이 말을 배신(陪臣)에게 전하니 자신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누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전마(戰馬)가 많이 죽은 까닭에 친히 제사를 지내려 하였는데 마침 날씨가 약간 흐리자 제독이 사람을 보내 ‘비가 오면 여기는 가옥이 없어 머물 수가 없다. 반드시 개성으로 되돌아가 군사들을 휴식시켰다가 전진해야 할 것이다.’ 하기에 다시 조금 더 머물기를 청했으나 끝내 듣지 않고 단지 남병(南兵)의 포수(砲手)만 강변에 머물게 하고 군마가 모두 개성부로 돌아갔으니 무슨 생각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대저 제독이 27일에 가정(家丁)만을 거느리고 경솔히 전진하다가 이롭지 못하여 이 때문에 동파(東坡)로 물러나 주둔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장수들 중에서 장세작(張世爵) 같은 사람은 후퇴하여 주둔하자는 의논을 더욱 주장하여 지금 또 후퇴하여 개성에 머물고 있습니다. 비록 ‘군사를 휴식시켰다가 다시 전진한다.’고는 하나 꼭 그렇게 할지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적병이 아직 경성에 머무르고 있는데, 만약 대병이 이로부터 갑자기 물러간다면 대사가 글러질 것입니다. 제독은 성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둘 때는 오로지 남군(南軍)만을 사용하고 공을 논할 때는 북군을 위에 둡니다. 이 때문에 군사들의 인심이 어그러진 듯합니다. 만약 단지 한 차례의 승리를 공으로 삼고 기필코 진격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신들의 구구한 미력으로는 대세를 만회하기가 어려울 것이어서 더욱 가슴아프고 민망스럽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25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都體察使豐原府院君 柳成龍馳啓曰: "昨日, 提督欲還開城府, 少休人馬, 臣與李德馨, 多般懇陳云: ‘大軍一退, 民心解散。’ 李提督怒曰: ‘吾不過欲休兵更進, 豈有退歸之意? 爾等何不曉事, 而煩說如此耶?’ 仍爲停止留在。 初昏, 招通事, 辟左右, 密語進取之計甚悉。 且曰: ‘正月, 吾本命對衝不吉, 故今番落馬, 又不利於擊賊, 必須來月, 可以進兵。 傳語陪臣, 但自知之, 勿泄於人。’ 今日以戰馬多死, 親自設祭, 適天氣微陰, 提督使人言: ‘天雨, 則此處無房屋, 不可住。 必還開城, 休兵以進。’ 更請少駐, 而終不聽, 只留南兵砲手於江邊, 軍馬則盡還開城府, 不知何意。 大抵提督, 於二十七日, 獨引家丁, 輕進不利, 因此退駐東坡。 而諸將中如張世爵, 尤主退駐之議, 今又退駐開城。 雖云休兵更進, 而亦難料其必然。 賊兵尙留京城, 若大兵從此遽退, 則大事將去矣。 提督攻城取勝, 全用南軍, 及其論功, 北軍居上。 以此軍情, 似爲乖張。 若但以一勝爲功, 無必進之意, 則臣等之區區寸力, 勢難挽回, 尤爲痛悶矣。"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25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