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34권, 선조 26년 1월 22일 정축 3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경상우도 감사 김성일이 진주성 싸움 등에 대해 보고한 장계

경상우도 감사 김성일(金誠一)이 치계하였다.

"진주(晉州)의 성이 포위되었을 때에 힘써 장사(將士)들이 죽을 고비에서 벗어나 적을 물리치고 성을 안전하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제서야 비로소 성지(城池)에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공이 지극히 큽니다. 적은 창원(昌原)에 주둔하고 있는데 바야흐로 다시 침범할 계획으로 호남(湖南)으로 향하고 있으니 흉계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공이 있는 장사들에게는 따로 포상하는 은혜를 더 하시어 뭇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여 뒷날의 성과를 바라소서.

중위장(中衛將) 목사(牧使) 김시민(金時敏)은 본래 군사와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었으므로 성을 수호하고 적을 물리친 것이 모두 그의 공로입니다. 곤양 군수(昆陽郡守) 이광악(李光岳)은 고을의 날랜 군사 수백 명을 거느리고 김시민과 함께 군주의 성을 지켰는데, 8일에 김시민이 ‘아마도 성을 온전하게 하기는 어려울 듯하니 몰래 수문(水門)을 열어서 노약자(老弱者)를 내보내야겠다.’고 하자, 이광악이 ‘이와 같이 하면 군사들의 마음이 크게 변하여 성을 수호할 수 없다.’고 하면서 큰소리로 말렸으며, 김시민이 탄환에 맞은 뒤에는 혼자 한 모퉁이를 담당하여 왜적을 쏘아 죽이고 마침내 적을 물리쳐 성을 온전하게 하였습니다. 판관(判官) 성수경(成受慶)은 적이 성에 오를 도구를 많이 준비하여 처음부터 동문(東門)을 오로지 공격하였지만, 밤낮 5일 동안 굳게 지키면서 용맹을 떨치며 혈전(血戰)하여 무수히 적을 살해하여 마침내 적을 물리치고 성을 완전하게 하였습니다. 수성 대장(守城代將) 최덕량(崔德良)은 적이 불의에 옛 북문에 충돌하니, 군사들이 도망하여 흩어지매 적이 개미처럼 달라붙어서 성에 기어올라 성의 함락이 순간에 달려 있었는데, 최덕량이눌(李訥) 등과 함께 도망하는 군졸 몇 사람을 베어 죽이자, 군사들이 그제야 다시 모여 죽기를 각오하고 용맹을 떨치며 힘껏 싸워 마침내 한 성을 온전하게 하였습니다. 영장(領將) 이눌의 공은 최덕량과 다름이 없습니다. 율포 권관(栗浦權管) 이찬종(李纘宗)은, 적이 본 고을을 포위하려 할 때 사람들이 모두 ‘성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죽는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전 우후(虞候) 이협(李浹)은 성문(城門)에 이르렀다가 도망하였지만, 그는 혼자 성으로 들어가 협력하여 남문(南門)을 지켰으니, 난리에 임하여 명령을 받든 것이 매우 가상하며, 거기에다 재주와 국량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 위급할 때 쓸만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11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慶尙右道監司金誠一馳啓曰: "晋州圍城時, 力戰將士等出萬死, 却敵全城, 人始知城池之可守, 其功極大。 賊留屯昌原, 方謀再犯, 仍向湖南, 兇計已成。 有功將士等, 另加褒錄, 聳動群情, 以責後效。 中衛將牧使金時敏, 素得軍民之心, 守城却敵, 都是其功。 昆陽郡守李光岳, 率郡精兵數百, 與金時敏協守州城, 初八日, 時敏 ‘恐難全城, 欲潛開水門, 放出老弱。’ 光岳曰: ‘如此則軍情大變, 城不可守。’ 大言止之, 及時敏中丸後, 獨當一隅, 射殪倭賊, 竟能却敵全城。 判官成受慶, 則賊大備登城之具, 自初專攻東門, 堅守五晝夜, 奮勇血戰, 殺敵無算, 竟能却敵全城。 守城代將崔德良, 則賊不意衝突北門, 軍潰散, 賊蟻附而上, 城陷決在呼吸, 德良李訥等, 斬潰卒數人, 軍乃復集, 殊死奮勇力戰, 竟全一城。 領將李訥之功, 與德良無異。 栗浦權管李纉宗, 賊將圍本州, 人皆謂: ‘入城必死。’ 故前虞候李浹到城門遁去, 而纉宗獨入, 協守南門, 臨亂用命, 極爲可嘉, 加以材器超凡, 緩急可用。"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11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