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최흥원이 동궁을 모시고 있으면서 명군과 합동 작전을 편 내용을 치계하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 좌찬성 정탁(鄭琢)이 치계하였다.
"신들이 동궁을 모시고 10일부터 영변부(寧邊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평양의 적은 소굴까지 정벌하여 거의 섬멸하게 되었으므로 여러 적들이 그것을 듣고서 반드시 기가 꺾일 것이며, 국가 재조(再造)의 업의 단서가 여기에 달려 있으니 그 기쁨 끝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종묘 각실(各室)의 어보(御寶)와 영숭전(永崇殿)의 영정(影幀)을 관찰사 송언신(宋言愼)으로 하여금 비밀히 평양에다 묻어두게 하였는데 지금 이미 수복하였습니다. 송언신 외에도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으니 속히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이제 비록 회복하였다고는 하나 북방의 적이 오히려 뒤편에 있으니 장래의 환란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나라 장수가 일부의 병마를 나누어서 북방의 적을 토평하도록 허락하였다고 하기에 체찰사 유성룡의 장계를 따라 동궁이 시위하는 날랜 군사 3백 명을 뽑아 군기 판관(軍器判官) 조신도(趙信道)와 조방장(助防將) 박명현(朴名賢)을 차임하여 명나라 군병과 합동으로 먼저 북로(北路)로 떠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명나라 병사가 진군할 때에 응접하고 공급하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되므로 청천군(淸川君) 한준(韓準)을 순찰사로 삼아 그로 하여금 일로를 담당하게 하였다가 양덕(陽德) 지역에 도착하여서는 순찰사 홍세공(洪世恭)에게 대신 넘겨주고 되돌아오게 하였습니다. 홍세공은 북로의 요해처를 지키라는 명을 받았으니 본래의 임무는 아닌 듯합니다만 오래도록 변경에 있었으므로 사세를 자세히 알고 있으며 단지 관령 장졸(管領將卒)만 가졌으므로 부득이 홍세공에게 책임지웠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08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정(軍政)
○領議政崔興源, 左贊成鄭琢馳啓曰: "臣等陪侍東宮, 初十日, 仍留寧邊府。 平壤之賊, 抵巢勦征, 幾至殲滅, 諸賊聞之, 想必尾解。 國家再造之業, 端在於此, 歡抃罔旣。 前者, 宗廟各室之寶及永崇殿影幀, 使觀察使宋言愼, 秘密埋置平壤, 今已收復。 言愼之外, 亦有識認之人, 急速搜出宜當。 今雖克復, 北賊猶在背後, 將來之患, 不可不慮。 天將許以撥出一枝兵, 分勦北賊云, 故因體察使柳成龍狀達, 東宮抄出陪衛精兵三百名, 差軍器判官趙信道, 與助防將朴名賢, 協同上國軍兵, 前去北路。 天兵行師之期, 不可無接應供頓之人, 以淸川君 韓準爲巡察使, 使之句當一路, 到陽德地, 替付巡察使洪世恭, 而使之還來。 世恭受北路把截之命, 似非元任, 而久在境上, 備諳事勢, 只有管領將卒, 不得已責任於世恭。"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08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정(軍政)